멈춰서서 가만히
“유물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뭐가 좋을까”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 정명희의 나를 물들인 유물 이야기
시간만 나면 답사를 가고,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아 유물 앞에 서 있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왜 유물 앞에 오래 머물며, 계속해서 다시 찾는 걸까?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특별전 ‘영혼의 여정’부터 한국문화재 주제 전시 사상 최다 관람객을 모은 ‘대고려전’까지 굵직한 전시를 담당한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 정명희가 시공간을 넘어 우리를 매혹하고 변화시키는 유물의 세계로 초대한다.
『멈춰서서 가만히』는 유물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기적 같은 순간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한 점의 유물 앞에서 우리의 시간은 과거로 향하기도 하고, 지금 이곳에서 가보지 않은 길로 이어진다. 유물 앞에서 느꼈던 좋은 경험이 모이면 멀리 가지 않고도 여행하는 법을 알게 된다. 오래된 책을 펼쳐보는 기분처럼 잊고 있던 목소리가 내 앞으로 다가온다. 수장고 속 숨어 있는 유물에 숨을 불어넣는 큐레이터의 일과 삶, 유물과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는 관람객들의 사연, 그러한 체험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갈 수 있다는 기대를 담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유물 앞에 오래 머무는 이들에게 눈과 마음이 간다. 누군가 바라본 유물이 그를 물들이고 내게 옮겨오는 느낌이 좋다. 각자에게 닿아 만들어질 이야기는 한 가지 톤이 아니라는 것을 배운다.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 매일 출근하는 곳이지만, 박물관은 큰맘 먹어야 간다거나 어디부터 봐야 할지 막막하다는 말에 크게 공감하는 생활인. 사라진 시간을 기억하는 과묵한 유물을 보고, 상상하고, 글로 쓴다. 유물 앞에 오래 머무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 마음이 설렌다.
박물관은 누군가와 함께 있고도 싶고 혼자 있고도 싶을 때 찾으면 좋은 공간. 지금 당신이 어디쯤 서 있는지 궁금하다면 날카로운 공기에서 빠져나와 이곳으로 오길. 무거운 외투는 벗어두고, 편안한 신발을 신고 힘을 풀고 멍하니 산책길의 감촉을 느끼며 같이 걷고 싶다.
10년 넘게 산 동네에서 길을 잃거나 가끔 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지하철을 탄다. 길 잘 찾는 사람과 한 가지 일을 묵묵히 하는 다정한 사람에게 약하다. 주먹을 꼭 쥐고 다짐하는 결심보다 아늑한 온기에서 나아갈 힘을 얻는다. 같은 것을 바라볼 때 특별한 말을 나누지 않아도 느껴지는 편안함이 좋다.
홍익대학교에서 한국미술사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기념 특별전 [영혼의 여정]을 비롯해 [법당 밖으로 나온 큰 불화], [꽃을 든 부처], [대숲에 부는 바람, 풍죽], [공재 윤두서],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등 크고 작은 국내외 전시를 담당했다.
프롤로그-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는 유물이 있을 것이다
1부 소중한 것을 담자: 유물 앞에 오래 서 있는 사람은 뭐가 좋을까
느낌이 먼저다- 화원별집
소중한 것을 담자- 은제 표주박 모양 병
100권만 꽂을 수 있는 책꽂이- 책가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온도- 모란 넝쿨무늬 청자완
파도 소리, 새의 날갯짓- 지장보살도
다음 생에는 남자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장곡사 불상 발원문
노래하는 사람- 신라 토우
집에 가자, 당나귀야!- 기려도
현자들의 티타임- 월남사지 삼층석탑
함께 걸을까요?- 인도 세밀화
2부 상상의 미술사- 오랜 시간을 건너 힘이 되고 의지가 되는 이름들
타임슬립 영화 좋아하세요?- 윤두서 자화상
사건의 재구성- 녹우당의 일제 거울
17세기 왕실의 한글 편지- 숙명신한첩
오래된 사진의 기억- 유리건판
모든 것의 시작, 서원- 고려 사경
고리타분씨는 죄가 없다- 개성 출토 피규어
영혼의 여정- 시왕도
두 가지 맛 복숭아- 감로도
덧없는 인생이라니요- 청자 베개
3부 귀를 기울이면- 만 명에게는 만 명의 반가사유상이 있다
오월의 숲- 분청사기 자라병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함께하는 명작의 힘- 반가사유상
오랫동안 서로 잊지 말기를- 세한도
우리를 키운 것의 흔적- 어망추
이토록 푸른 유리잔- 천마총 유리잔
두 남자의 수다- 기마인물형 토기
우리가 지나온 길- 복희여와도
백 걸음 밖에서 과녁을 맞히는 일- 갑발
4부 다가오는 것들- 떠나지 않고도 여행하는 법
책상에서 바라본 풍경- 산 모양 그릇
무언가의 풍경이 된다는 것- 고양이
주사위를 던지다- 고려 주사위
조선의 인스타그램- 화원 백은배의 화첩
한때 누군가의 자랑이었을- 백자 무릎 모양 연적
바다를 건너온 동전- 신안선 출토 동전
할아버지의 좌판- 황비창천이 새겨진 거울
백자 한 조각의 비밀- 청화백자 시험 번조편
큐레이터의 소울 푸드- 얼굴무늬 토기
그럴 땐 이 책상- 나무 서안
달을 따라가다- 수태고지
달리는 트랙에서 내려오는 법- 가야 집 모양 토기
에필로그- 당신 차례의 끝말잇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