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이웃
[나의 아름다운 이웃]은 우리의 평범한 삶 속에 숨어 있는 기막힌 인생의 낌새들을 포착해낸 꽁트집이다. 총 48편의 짧은 소설로 이루어진 [나의 아름다운 이웃]은 70년대 한국사회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창 산업화가 진행 중이던 70년대는 현대적 자본주의 질서가 갖춰지는 한편으로 심각한 사회적 문제점들이 양산된 시기이기도 했다. 아파트 건설, 부동산 투기 등의 개발 열풍이 불어닥치고 금전만능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인간관계 또한 차츰 그 순수성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겪는 소소한 해프닝들 속에 도사리고 있는 사회적 병리 현상들을 매스처럼 예리하게 들춰낸다. 그를 통해 인생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 사랑과 결혼 그리고 성공의 진정한 기준은 무엇인지를 다시금 되묻게 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 에피소드들을 자연스럽게 인간 본연의 도리에 대한 깨우침으로 연결시키는 이야기 솜씨는 역시 대가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박완서 꽁트는 인생의 순간적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꽁트 장르의 묘미를 확실하게 전해준다. 추억에 젖어 찾아 나선 처녀 시절의 옛 남자들이 이제는 현실에 찌든 속물들로 변해 있음을 발견하고 '과연 이 시대에 낭만이란 있는가' 자문하게 되는 이야기의 「마른 꽃잎의 추억」 연작, 아파트를 선호하는 젊은 여자들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고생 끝에 아파트를 장만하고 신부를 맞아들였으나 막상 그녀는 땅집(단독주택)에 살고 싶어 병이 난다는 내용의 「땅집에서 살아요」, 천정부지로 땅값을 올려놓는 부동산 투기 열풍 속에서 집 한 칸 마련하고자 아둥바둥하는 소시민의 비애를 그린 「완성된 그림」, 모든 면에서 완벽한 조건을 갖춘 남자를 선보러 나갔다가 인생의 쓴맛이 뭔지 모르겠다는 그의 말 한마디에 서슴없이 퇴짜 놓고 마는 에피소드의 「그대에게 쓴 잔을」, 아파트 생활의 삭막한 인간관계를 꼬집은 '아파트' 연작(「열쇠 소년」「열쇠 가장」「아파트 열쇠」「할머니는 우리편」), 외국어에 주눅들어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돌이켜보게 하는 「외래어 노이로제」 등은 장편이나 단편소설에서는 맛보기 힘든 기지, 풍자, 유머의 기법이 유감없이 발휘된 꽁트들이다.
박완서 꽁트는 단지 현실 비판이나 풍자에만 머물지 않는다. 정신박약아 아들을 수치심 때문에집 안에 꽁꽁 숨겨놓은 채 살아가는 이웃집 아줌마의 닫힌 마음을 이웃간의 정으로 따뜻하게 녹여준다는 내용의 「달나라의 꿈」이나 「어떤 청혼」「어떤 화해」「나의 아름다운 이웃」 등은 그렇듯 삭막한 사회 현실 속에서도 인간과 인간 사이에 흐르는 훈훈한 정과 미담을 들려준다. 이것 역시 꽁트만이 갖는 인간적인 매력일 것이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은 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지금 이 시대와 비슷한 일상의 풍경들을 담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인생살이란 어쩌면 그리도 변한 게 없는지 새삼 확인케 한다. 작가는 이 개정판을 위해 특별히 새로 쓴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70년대에 썼다는 걸 누구나 알아주기 바란 것은, 바늘 구멍으로 내다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멀리, 적어도 이삼십 년은 앞을 내다보았다고 으스대고 싶은 치기 때문이라는 걸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내가 보기에도 신기할 정도로 그때는 약간은 겁을 먹고 짚어낸 변화의 조짐이 지금 현실화된 것을 느끼게 됩니다." ―<책머리에> 중에서
이 책이 첫 출간 후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세월의 흐름에 개의치 않는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도, 작가가 자칫 부끄럽게 생각할 수도 있을 젊은 시절의 꽁트들에 여전히 큰 애착을 갖고 계속 독자들이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것도 아마 이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