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
KBS ‘TV 책을 말하다’, 네이버 ‘오늘의 책’, 부산시교육청 선정도서 《이순신의 두 얼굴》
10년간의 ‘팩트탐사집필’로 새롭게 부활하다!
위기극복의 묘책이 떠오르지 않을 때, 왜 이순신을 찾아야 하는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우리는 위기에서 빛나는 영웅을 찾는다. 그 영웅의 면모를 본보기로 삼아 현재의 고난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최근 우리 국민은 경기 불황과 재난 사고 등으로 눈물 흘릴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사회 지도층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기는커녕 세치 혀로 가뜩이나 아픈 가슴에 못질만 해댄다. 그래서 그들과 달라도 많이 달랐던,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았던 이순신을 찾게 한다.
7년전쟁 당시의 상황은 한마디로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집권층의 안일한 대처로 전쟁이 발발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막상 전쟁이 발발하자 선조를 비롯한 조선의 집권층은 백성을 저버리고 자신들의 안위를 살피는 데만 급급했다. 뒤늦게 명나라가 참전했지만 전시작전권을 잃은 조선은 한없이 초라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 이순신은 연전연패하던 전쟁의 판도를 한산해전 한판으로 일시에 뒤바꾸었고, 둔전을 설치하여 군비를 확충하는 한편 민초의 안전까지 확보했다. 그 와중에 결코 일어나지 않았어야 했을, 3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돌연한 실각이 터졌다. 이순신의 실각은 개인 이순신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고 조선 전체의 비극으로 확대되었다. 이순신의 대역으로 원균이 이끈 수군이 칠천량해전에서 패하자 조선에는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바다로 다시 돌아온 이순신은 단지 13척으로 130여 척의 적선을 상대해야 했던 불가능의 전투 명량해전에서 기적의 승리를 일구어냈다. 이순신은 궤멸당한 조선 수군을 재건했고, 그 저력은 최후의 결전 노량해전에서 도망가는 적을 가로막고 피의 대가를 치르게 했다.
이순신은 죽음으로 조선을 살렸다. 선조는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자신이 살아남은 가치를 증명하지 못했다. 7년전쟁의 여파로 명과 일본의 정권이 바뀌었어도 조선의 집권층은 무사했다. 전쟁 전에도, 전쟁 중에도 조선의 집권층은 그들만의 파워게임만 열심이었다. 수많은 민초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던 그들은 전쟁 후에도 최소한의 자기반성은커녕 그들만의 세상을 더욱 강화시켰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7년전쟁 때보다 더 한심한 작태가 벌어지고 있다. ‘나라의 녹을 먹는 자’는 자신과 윗사람의 입맛에만 몰두하고 있다. 조선의 당쟁보다 못한 ‘정치하는 자’의 이전투구는 극에 달했다. ‘가진 자’는 더 가지려고 도덕성을 땅에 처박았고 ‘나라의 녹을 먹는 자’와 ‘정치하는 자’까지 발밑에 두었다. 그나마 희망이 되어야 할 ‘배운 자’도 ‘가진 자’에게 구애하고 있다. 안으로는 칼날 위에 서 있는 자기 자신, 밖으로는 무능한 조정과 일본을 동시에 봐야 했던 이순신처럼, 지금 우리도 외부의 적은 물론 내부의 적과도 맞서 싸워야 한다.
이 책은 KBS ‘TV 책을 말하다’, 네이버 ‘오늘의 책’, 동아일보 ‘흥미진진한 역사 읽기 30선’, 부산시교육청 선정도서인 《이순신의 두 얼굴》을 10년 만에 새롭게 보완한 것이다. 7년전쟁의 비극적 상황 속에서 이순신이 어떻게 평범한 인물에서 비범한 인물로 나아갈 수 있는가를 다룬 책, 《이순신의 두 얼굴》을 펴낸 지 10년이 지났지만,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은 아직도 초라해 보일 때가 많다.
저자 김태훈은 10년 전처럼 다시 밤잠을 줄이고 휴일도 반납해가며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빠져들었고, 그 과정에서 전작 《이순신의 두 얼굴》에서 미처 밝히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했다. 저자는 이순신도 때때로 잘못을 범한 ‘인간’이라는 가정 아래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솔직담백한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아울러 7년전쟁 전체의 흐름 속에서 이순신이 어떠한 상황에 놓였는지를 객관적으로 짚어내고자 했다. 더 나아가 동서양 고금의 전쟁사를 동원해 이순신의 해전과 비교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이 책은 시작은 평범했지만 비범하게 역사 앞으로 나아간 위인, 이순신의 참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이순신의 두 얼굴》의 저자 김태훈, 10년간의 ‘팩트탐사집필’로 새로운 진실을 밝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김태훈은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러다 시중에 이순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전해주는 책이 별반 없음에 놀랐다. 이순신을 소개한 대부분의 책은 그를 추앙하고 신격화하는 위인전 수준의 책들이 태반이었다. 그 지점에서 저자의 합리적 의심이 시작되었다.
“이순신도 우리와 같은 인간인데 어떻게 이렇듯 완벽할 수 있단 말인가?”
“이순신이 위대한 업적을 이룬 것은 분명하지만, 그 뒤에는 평범한 한 인간의 고뇌와 실수도 있지 않았을까?”
저자 김태훈의 그러한 의심은 이순신과 관련된 《난중일기》, 《선조실록》, 《징비록》 등의 고서를 읽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고서에서 충격을 받았다. 거기에는 진짜 이순신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동료 장군과의 불화에 고통을 느끼고 때로는 실수도 저지르는 인간 이순신이 있었다. 내친김에 그는 이순신의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객관적인 시각의 책을 쓰기로 했다. ‘성웅’이라는 단어에 갇혀 있는 이순신을 우리 곁으로 불러와 함께 숨 쉬고 싶은 바람도 있었다. 그는 이순신도 때때로 잘못을 범한 ‘인간’이라는 가정 아래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솔직담백한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하여 2004년 《이순신의 두 얼굴》을 내놓았다. 이 책으로 그는 세간의 크나큰 관심을 받았다. 그 당시만 해도 역사서는 역사학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역사학자가 아닌 평범한 직장인이 쓴 역사서였지만,《이순신의 두 얼굴》은 “아마추어의 열정과 관심이 때로는 더 큰 성과물을 낼 수도 있다”, “당시 조선 조정·백성·일본이 바라본 이순신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분석했고, ‘있는 그대로의 이순신’에 가장 근접했다”는 등의 평가를 받았다.
저자 김태훈은 《이순신의 두 얼굴》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불편해졌다. 최근에도 이순신과 관련된 책들이 여러 권 출간되고 있지만,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순신의 참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글들이 상당수였던 까닭이다. 그는 다시 이순신을 찾았고, 그 결과는 10년 전에 미처 파헤치지 못했던 사실까지 보완하며 한층 더 객관적인 이순신의 모습을 구현하는 데 이르렀다.
물론 그 작업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10년이 흘러 이제는 전국은행연합회에서 기획조사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저자이기에 직장생활은 더 바빠져 있었다. 게다가 10년 전에 미완으로 남겨놓은 사건까지 이번에는 제대로 다루고자 하는 등 더 욕심을 부렸다. 그렇듯 시작되어 직장생활 틈틈이 《선조실록》, 《난중일기》 등의 한자 원문까지 꼼꼼히 뒤져나간 끝에 《이순신의 두 얼굴》보다 더 두꺼운 책, 736페이지에 달하는 새 책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가 탄생했다.
원균의 행적, 이순신의 실각 이유, 7년전쟁 이후 공신 선정 문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는 전작 《이순신의 두 얼굴》에서 미처 밝히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밝히고 있다. 먼저 이순신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원균의 전쟁 초기 행적을 복원했다. 이 시기 원균의 행적은 유성룡의 《징비록》 등에 짤막하게 언급되어 있을 뿐 기록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속 시원하게 밝힐 수 없었다. 그래서 학자들의 주관에 따라 글이 달라지곤 했는데, 이 책은 원균을 객관적으로 재조명했다.
이번 책에서 그는 원균이 3도수군통제사가 되어 발발한 안골포해전을 더 깊게 파헤쳤다. 한산해전의 여파로 일본군은 바다에서 조선 수군을 만나면 육지로 도망가기에 바빴다. 그런데 안골포해전에서 일본군은 오히려 공세적으로 조선 함대를 공격하는 전혀 다른 형태의 전투를 선보였다. 하지만 원균은 그에 따른 대비책을 고심하지 않았고 그 결과는 칠천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궤멸되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다음으로 이순신이 한산도에 주둔할 때의 전술을 ‘신화’가 아닌 ‘사실’에 근거해 다루었다. 당시 조정은 이순신이 적의 근거지인 부산포를 공격하길 원했다. 하지만 이순신은 부산포 공격을 하게 되면 그 길목에 있는 웅포, 안골포 등의 적에게 포위당할 위험이 있어 먼저 웅포, 안골포 등의 적을 격멸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웅포, 안골포 등의 적은 아무리 공격해도 아군의 피해만 클 뿐 결코 섬멸할 수 없었다. 결국 바다에서 천하무적인 이순신의 조선 수군이 부산포 앞바다에는 가보지도 못하는 묘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 책은 당시 이순신이 그러한 국면을 타개할 수 있는 전술은 정녕 없었는지 짚어 보았다.
이 책은 이순신이 주장한 수륙합동공격에 대해서도 살펴봤다. 일부 학자들은 이순신이 수차례 요청한 수륙합동공격에 응하지 않았던 조선 조정의 무능을 탓한다. 하지만 그전에 이순신의 수륙합동공격이 어떤 형태이며 과연 성공할 수 있는지 등을 짚어봤어야 하는데 그에 대한 검토는 전혀 없었다. 이 점에 아쉬움을 느낀 이 책의 저자는 당시 정황상 이순신의 수륙합동공격은 육군의 전력이 미약해서 현실적으로 펼치기 어려웠다고 분석했다.
이순신이 그토록 많은 전투에서 이기고도 전쟁이 7년 동안이나 이어진 이유에 대해서도 고심해 보았다. 나아가 과연 이순신이 그 전쟁을 초기에 끝낼 수는 없었는지도 따져봤다. 저자는 전쟁 초기에 그러한 절호의 기회가 이순신에게 주어졌다고 하며, 이 책에서 그 근거를 제시했다.
한편 이순신의 장문포전투를 파고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문포전투는 적에게 전혀 타격을 주지 못한 전투였다. 그래도 장문포전투는 조선 수군에게 심각한 전력의 손실이 없이 끝났으니 적어도 무승부로 보이는 전투였다. 하지만 당시 조선의 조정은 장문포전투에서 이순신이 패전했다고 규정했다. 연전연승의 이순신으로 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당혹스럽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그렇게 여겼다. 당시 조정은 장문포전투의 여파로 이순신을 압송하려 했는데, 선조가 그것을 막은 사실과 심지어 이순신의 《난중일기》가 사실과 다르게 적혀 있다는 점도 밝혔다.
그리고 이순신이 3도수군통제사를 그만두겠다고 사임을 자청한 사건도 세세하게 다루었다. 이는 이순신이 내부의 적, 경상우수사 원균을 제거하기 위해 내린 극약처방이었다. 당황한 조정은 우여곡절 끝에 원균을 충청병사로 전출하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이 책은 특히 3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실각과 하옥에 대해서는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아직도 많은 학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적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正)의 군대를 바다에서 차단하라는 조정의 지시를 전하려고 도원수 권율이 1597년 1월 13일 한산도로 출발했다. 하지만 적은 그때 이미 바다를 건넜다. 따라서 한산도의 이순신이 적을 바다에서 차단하는 것은 이미 늦었는데도 선조가 이순신을 실각시키고 하옥했다.’ 하지만 1597년 1월 2일 《선조실록》에는 선조가 적장의 도해를 차단하라는 지시를 한산도의 이순신에게 전달하라고 명한 기록이 있다. 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이순신에게는 선조의 명령을 이행할 수 있는 충분히 시간이 있었다.
또한, 한음 이덕형이 이순신을 모함해서 이순신이 실각하고 하옥됐다는 학자들의 일치된 결론도 터무니없다는 것을 밝혔다. 이 책은 《선조실록》의 번역자가 원문의 ‘상힐相詰(서로 비난함)’을 잘못 번역해 전혀 다른 뜻의 ‘대질’로 둔갑시켰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온 나라 학자들이 이 ‘대질’이라는 단어에 얽매여 이덕형을 믿지 못할 자로 난도질하였고, 나아가 이덕형이 이순신을 모함했다고까지 진도를 나갔는데, 이 책은 그러한 사실을 새롭게 밝혔다.
마지막으로 7년전쟁이 끝난 뒤의 공신 선정과 그에 따른 문제점도 밝혔다. 선조와 함께 피난 갔던 신하들이 전쟁에서 공을 세운 무인들보다 더 많이 공신으로 선정된 사유와 애당초 2등급이었던 패장 원균을 1등급으로 격상하는 과정을 《선조실록》을 통해 추적했다.
팩트에 기반해 재조명한 이순신, 역시 이순신이었다!
이 책은 “이순신은 무조건 위대하다”는 시각을 갖는 대다수의 책들과 달리 “이순신도 때로는 실수도 범하는 인간이었고, ‘평범한 인물’에서 ‘비범한 인물’로 거듭났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순신이면 무조건 옳다는 식의 일부 서적과 달리, 비록 현대의 시각이라는 한계는 있을지라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순신을 보고자 했다.
이 책의 저자 김태훈은 ‘있는 그대로의 이순신’이야말로 우리가 알아야 할 ‘이순신의 참모습’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밝힌 이순신은 단연코 ‘용장’이다. 명량해전의 전투 초기에 부하 장수들이 130여 척에 달하는 적선에 겁먹고 뒤로 물러나 있을 때, 이순신이 지휘하는 함선만이 앞으로 나가 적과 맞섰다. 적선의 숲속에서 홀로 포효하는 카리스마 그 자체인 장군, 이순신의 진정한 면모라고 할 수 있다. 전쟁으로 죽어가던 조선의 역사는 이순신의 카리스마에 기대어 살아났다.
그렇지만 이순신도 인간이었다. 더욱이 그는 전장에서 7년이나 적과 상대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그도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도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가 실수 한 번 없었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다고 봐야 한다. 그래도 이순신이라는 세 글자가 주는 무게감은 변치 않는다. 이 책과 함께하다 보면 그러한 실수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이 왜 이순신인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7년전쟁의 비극적 상황에서 ‘안으로는 칼날 위에 서 있는 자기 자신, 밖으로는 무능한 조정과 일본을 동시에 상대해야 했던’ 이순신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