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
사랑의 민낯, 그 깊숙한 속살의 노출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질 듯 끊어질 듯 펼쳐진다
[폴라로이드 작동법] [조금만 더 가까이]의 김종관 감독,
특유의 섬세하고 감정의 결이 분명한 시선으로
사랑에 관한 서른두 가지 장면을 포착한다
당신은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수많은 책에서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은 그것들과는 조금 다르다. 사랑은 당신의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짧은 이야기 서른두 편과 그 이야기에 덧붙인 작가의 자기고백적 단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편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과 장편영화 [조금만 더 가까이] 등의 작품을 연출했던 김종관 감독이 펴내는 두번째 산문집이다. 평소 세밀하고 정교한 감성을 연출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그의 글은 그의 영화를 닮아 있다.
사 랑 에 관 한 모 든 상 상 그 리 고 그 이 상
여기에는 우리가 사랑에 관해 할 수 있는 모든 상상의 최대치가 들어 있다. 주로 흘러가는 시간의 서사 속에 한 장면을 포착한 것이 대다수다. 영화감독의 글이라서 그럴까. 분명 ‘읽고’ 있는데 ‘보고’ 있는 것 같다. 감정 묘사가 섬세하고, 느낌의 결이 그대로 살아 있다. 그래서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그 이후에 이어질 다음 장면이 자연스레 궁금해진다.
참기 어려운 욕망, 분출하고 싶은 욕구, 가슴이 쿵쾅거리고, 몸에서 열이 나고 땀이 흐르는 순간, 이 책에는 그런 묘한 순간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단순히 야한 섹스 한담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에스프레소처럼 진한 사랑의 페이소스와 짙은 서늘함이 들어 있다. 세상이 무너질 듯 간절했다가 또 어느샌가 세상에 더없이 시시하고 시큰둥해지는,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랑을 나누는 그 시작과 끝이 들어 있다. 물론, 그 중간 어디쯤도 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의 굴곡이 모조리 들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한 권으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가 된다.
이것은 픽션이기도 하고 논픽션이기도 하다. 일부 글쓴이의 경험이 반영되었기도 하고, 또한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그 어떤 이야기보다 현실에 맞닿아 있다. 오히려 너무 적나라해서 똑바로 쳐다보기가 민망하다.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고 찌질한 그 서른두 가지 사랑의 단편 속에 존재하는 서른두 가지 모습의 사랑이 지금도 지구상에서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네 일이 아니고, 내 일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모두 상처를 하나씩 끌어안고 있다. 그것들이 정제되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채, 그저 ‘사랑’의 이름으로 오롯이 드러난다. 그렇게 파헤쳐진 사랑의 속내가 쓰라리고 아리지만, 고장난 마음도 사랑이니까.
하나의 이야기마다 덧붙이는 각각의 산문은 이야기보다 더더욱 짧지만 울림은 강렬하다. 에세이의 자기고백적 성격과 폐부를 찌르는 칼럼의 의미를 동시에 띠면서, 여러 이야기들의 의미를 덧붙이고 있다. 순간의 짜릿함, 영원일 것 같은 달콤함,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너덜너덜해진 관계, 그것들을 한데 끌어안고 한층 더 공고히 다진다. 살뜰히 바라보게 한다.
아 름 답 지 않 으 므 로 결 국 에 는 사 랑 이 다
새삼 김종관 감독의 대표작, 영화 [조금만 더 가까이]의 세번째 에피소드 속 명대사를 떠올린다. “너 때문에 나 연애불구야. 겁나서 사람을 어떻게 만나니?” 이 한마디는 우리의 치열한 사랑을 단편적으로 함축한다. 이것의 시나리오는 새로운 이미지와 재구성되어 이 책에도 고스란히 들어 있다.
맞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모두 연애불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사랑을 하고, 항상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서로 살을 맞대거나 부비는 행위를 넘어서 ‘사랑’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에게 본능에 가깝다 못해 살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두렵다고 말하지만, 그토록 원하고 있는 것이 사랑이고, 사람이다.
그래도, 우리 이 책을 덮고 헤어진 연인에게 전화하는 일은 없도록 하자. 비가 올 듯 오지 않을 듯 이 끈적한 여름밤, 차라리 우리 맥주를 들자! 어떤 인연이 또 어떻게 만나 아우성을 치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