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아버지니까

아버지니까

저자
송동선
출판사
함께북스
출판일
2015-02-27
등록일
2015-09-23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0
공급사
북큐브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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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세상이라는 전쟁터에서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자식을 위하는 일이라면

섶을 지고 불구덩이라도 뛰어드는 이 땅의 수많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이 글을 썼다!



아버지는 한 가정의 역사다. 참으로 고단하고 외로운 길이다!



나는 오로지 ‘정직과 성실’을 신조로 살았다. 그래선지 하고자 하는 일들이 비교적 무난하게 이루어지곤 했다. 그것은 어쩌면 운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나의 노력’의 결과라고 자부하고 싶다. 나는 사실 ‘부단한 노력파’였으니까. 한편으론 내 나름대로 아내와 아이들을 극진히도 사랑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이들과는 거리낌 없이 소통하며, 그들에게 무한 사랑을 쏟았노라 자부한다.



아이들은 마법사다. 게을러빠진 아버지를 뛰게 하고 춤추게 한다.



자신의 아이를 위해 미친 듯이 달리고 춤추는 순간이 있어 이 세상은 비로소 살 만한 것이 된다.

살다 보면 행복과 불행은 늘 겹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빛과 어둠, 그리고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큰 슬픔으로 비탄에 빠진다 해도, 영원히 그 슬픔이 계속될 것 같아도 슬픔은 언젠가 끝이 나게 마련이다. 또 불행은 한꺼번에 몰려오는 특성을 지녔다. 이제야말로 끝이겠지 하고 한숨 돌리는 순간 또 다른 불행이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아무 일도 없어 보이던 내게 불행이 잇따라 닥쳐온 건 빚을 얻어 시작한 아내의 사업 실패가 신호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30년 가까이 일한 일터의 명예퇴직 강권에 따라 일자리를 잃었다.



내게 남은 것은 지금 아무것도 없다.



퇴사 이후 나는 그런 의미의 진정한 휴식을 한 번도 맛보지 못했다. 나 자신의 삶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물론 아이들을 위해 쉼 없이 일자리를 구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체면을 무릅쓰고 어렵게 구한 일자리들은 늘 실망만 안겨주고 금전적으로 정당한 보상도 해주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사랑하는 아들까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길을 떠났다. 그때 나는 경제적인 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파산자였다. 실낱같은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혼의 충격과 어려운 형편으로 인해 아이들을 강제로 군대에 보냈다는 죄책감에서도 하루빨리 벗어나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을 보는 지혜를 다시 터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새롭게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내를 사랑하는데 너무나 황당하게 헤어짐으로써 겪는 애별리고愛別離苦는 자칫 나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할 뻔했다. 생의 의미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아내에 대한 미움과 원망도 거두었다. 첫째는 내 자신이 어리석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눈을 뜨니 간교하고 사악한 세상이 보였다. 오물덩이처럼 뒹굴고 깨어지고 나서야 뜬 눈이었다.



나를 일으켜 세운 건 남겨진 두 아이였다.



초라한 짐보따리를 푸는데 둘째가 언젠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세상을 보는 지혜』라는 책이었다. 책장을 넘기는데 아이의 카드가 눈에 띄었다.



To. 소중한 사람

메리 크리스마스! 아버지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아무리 어렵다 해도, 선물 하나 없는 싸늘한 크리스마슨 싫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서점에 가, 아버지께 권할 만한 책을 골라봤습니다. 그 결과 『세상을 보는 지혜』를 찾았지요. 얼핏 보기엔 내용이 딱딱하고 재미나 감동도 없을진 모르지만,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말이 많더군요. 아버지께서 혹 벌써 읽으셨는지는 모르지만, 이 책을 읽어 보시고 무언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신다면 그걸로 저는 충분히 만족합니다. 짬이 나면 읽어 주세요.

아버지, 힘내시고 더욱 열심히 생활해 나가세요. 건강관리도 잊지 마시구요. 그럼 이만 줄일게요.

아버지 사랑해요.

12월 24일 크리스마스를 맞아, 둘째 올림



나는 그때 책을 잠시 훑어보고 어린것이 기특하게도 참 좋은 책을 골랐다고 감탄했다. 그러나 책 내용을 숙독하고 가슴속에 새기지는 못했다. 책을 고른 둘째의 마음처럼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보고 세상을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잘못될 게 하나도 없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아이들의 눈과 마음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아직 아버지인 이상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것,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의무가 내게 있다는 것, 더 이상 나 때문에 아이들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하고 싶지 않다는 소망 한 가지를 붙들고 일어섰다.



내게 남은 것은 지금 아무것도 없다. 두 아들은 열심히 공부하며 묵묵히 제 갈 길을 가고 있고, 나는 여전히 빈털터리다. 그런데 제법 마음이 편하다. 나는 이 상태를 법정 스님의 책 제목을 빌려 ‘텅 빈 충만’이라고 여긴다. 둘째 아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에 눈물이 핑 돈다. 이 세상에서 제일 큰 고통을 겪고 나서 세상을 보는 나의 눈도 많이 바뀌었다. 필요에 따라서는 여우 가죽 아니라 더한 것이라도 뒤집어쓰겠다고 결심했지만 나는 아직도 어느 것이 사자 가죽인지 여우 가죽인지 잘 분간을 못 하고 있다.

두 아이를 위한 나의 최선의 방책은 무엇일까?



아버지,

소리 내어 울 수도 없고, 울고 있어도 눈물을 보일 수 없는 고독한 자리!

눈곱만 한 개인적 이로움도 고집할 수 없는 이 땅의 모든 아버지께 이 책을 바친다.



먹고살기 위해 신새벽, 지하철을 세 번이나 갈아타고 노가다 현장으로 가면서 나는 이 세상 아버지들의 진면목을 보았다. 가족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눈썹을 휘날리며 꼭두새벽부터 일터로 달려가는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땅에서는 더 이상 나를 받아주는 곳이 없어 나이 예순이 다 되어 나갔던 바다, 그 시퍼런 바다 위에서 고기잡이배를 타고 인생의 격랑과 사투를 벌이는 무수한 아버지를 만났다.

내가 르포 형식의 이 글을 쓰게 된 건 알게 모르게 잊고 살아가는 아버지의 존재적 가치를 이 세상에 알리고, 일깨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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