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독의 제주일기
올드독의 이야기다. 더구나 제주도에 관한 이야기다.
김중혁 작가는 말했다. 이 책은 "사람들이 뚜렷한 성공을 향해 앞으로 달려가는 그 순간, 멈칫거리며 뒤로 물러나다가 결국 제주도에서 개와 함께 스노클링 따위나 하며 조금씩 도태되어 스스로 멸종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라고. 또 이효리와 결혼해 제주도로 이주한 뮤지션 이상순은 이렇게 말했다. "제주에 사는 것처럼 제주를 만끽하고 싶은 분들에게 매우 재밌고 유익한 책입니다. 게다가 그림도 귀여워요."
'느린 삶'의 대표명사가 된 제주도의 삶. 대안적인 삶의 공간으로 제주도가 떠오르는 요즘,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올드독 역시 약 이 년 전 제주도로 이주해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다. 근래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제주도에 사니까 좋아요?"라고.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까칠한 도시 남자의 제주 생활 적응기는 제주도 역시 서울과 다름없는 생활의 터전임을 말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잊지 않는다.
올드독의 손에 담긴 가장 현실적인 제주도의 모습
“제주를 통해 서울 보는 법을 배운다”
사는 장소가 바뀌었을 뿐 올드독의 감성은 여전하다. 제주도라고 해서 바닷가에 오두막 짓고 사는 건 아니다. 제주‘시’에서 도시의 혜택을 누리며 바닷가에서 개들과 헤엄을 치면서 살아간다. 여전히 유니클로, 자라 같은 옷가게가 없어서 아쉬워하는 도시 남자, 해녀가 되고 싶었던 남자가 느낀 제주는 어떤 모습일까.
시작은 그랬다. 평생을 서울에서만 살다 막연하게 다른 곳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하와이 같은. 현실적인 조건을 셈하다 제주도라면 가능하리란 생각에 집을 구경했고 마음에 드는 집을 만나 덜컥 계약을 했다. 그렇게 시작된 제주생활은 기대했던 것만큼 좋기도 했고, 나쁘기도 했다. 그러나 개들, 소리와 풋코와 함께 바다에서 헤엄칠 수 있다는 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매력으로 작용했다.
그렇게 집 마당에 핀 꽃들의 이름도 모른 채 시간이 흘렀고 개들과 오름으로, 바닷가로 산책을 다녔다. ‘맛집’이 아닌 ‘맛있는 집’을 찾아다녔고(“나는 이른바 맛집 추천이라는 행위에 대한 믿음이 없는 쪽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맛집이라는 과녁에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제논의 화살 같은 존재가 아닐까, 의심해본다.”_67쪽에서) 마음에 드는 해변도 발견했다. 물론 힘든 점도 있었다. 거센 바람에다 생전처음 보는 벌레들, 더구나 원하는 영화도, 공연도 놓치기 일쑤인 생활. 멋모르고 개들과 오름에 올라갔다가 진드기에게 공격을 받기도 했고, 한여름엔 종일 에어컨을 돌리느라 전기요금 폭탄을 맞았다.
하지만 이것들 역시 내 것이 아니었던 즐거움을 얻은 불편이라 말한다. 개들과 함께 헤엄치는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서울에 살 때보다 제주도에서 일 년 넘게 지내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집에 다녀갔다.(“안녕하세요, 저 ○○예요. 제주도에 왔는데 시간 되면 차라도 한잔……?”_204쪽에서) 마당엔 사계절 내내 갖가지 꽃이 피어 꽃을 좋아하는 개에게 기쁨을 주었고, 피해할 것투성이였던 도시 산책과 달리 이곳에선 개들이 참게나 감 같은 건강간식을 주워 먹으며 마음껏 뛰놀 수 있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마흔 편의 글, 그림과 더불어 후일담 카툰과 사진들에 담겨 있다. 올드독의 글을 긴 호흡으로 맛볼 수 있는 첫 산문집일 터이다.
웬일인지, 내려온 지 여섯 달이 되도록 나는 한 번도 올라가지 못했다. 실은 무언가 아직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목덜미를 스친다. 말하자면 지금 내가 겪는 불편은 이곳에서의 나의 삶,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 것이 아니었던 즐거움에 대한 대가로 지불해야 할 비용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글쎄, 이게 말이 되는 얘긴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토끼를 보려면 얼마간 쥐를 각오해야 하는 게 인생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_46쪽에서
하지만 이것은 누구나의 이야기
“잘 지내나요, 나는 잘 지냅니다”
그렇게 약 일 년의 시간이 흐르고 개, 소리가 세상을 떠났다. “제주도에서 보낸 마지막 일 년간 소리는 행복했을까?”(123쪽에서) 때로 상념에 잠기기도 하지만 그는 소리의 빈자리를 견디며 여전히 제주도에서 남은 개, 풋코와 지내고 있다. 어쩌면 특별해 보이는, 제주도에 정착해가는 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이야기지만 결국 일상을 살아가는 누구나의 이야기인 셈이다.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이 책은 사회 전반에 만연한 제주도에 대한 환상을 깨뜨림으로써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제주도 땅값을 끌어내릴 목적으로 쓰였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올드독의 제주일기』는 제주도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현실적인 경험담을, 자신의 상황이 불만족스러워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리만족을 안겨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