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수련
시간의 화폭을 수놓은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예술 미스터리!
모네에게 헌정한 인상주의 소설!
섬세하고 지적이며 차원이 다른 추리문학의 백미!
수련 가득한 모네의 정원에 잔혹한 시간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 프랑스 베스트셀러 1위
- 2014년 프랑스 베스트셀러 작가 Top 5
- 7개 추리문학상 석권 (2011년 귀스타브 플로베르 대상, 지중해 추리문학상, 코냑 추리문학 독자상, 상당크르 페스티벌 독자상, 미셸 르브룅 상, 2014년 자유비평닷컴상, 도미티 상)
- ‘비평가 추리문학상’ 등 7개 문학상 노미네이트
모네의 정원으로 유명한 지베르니 마을. 한적한 어느 새벽, 엡트 강에서 발견된 시신으로 예술의 신이 그려낸 듯한 아름다운 마을에 핏빛 균열이 생긴다. 피해자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는 엡트 강을 장밋빛으로 물들이며 흘러가고, 포플러 장막이 둘러싼 개양귀비 흐드러진 붉고 푸른 초원에는 신성한 침묵이 감돈다.
이 마을에 세 여인이 살고 있다.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열한 살 소녀, 매혹적인 서른여섯 살의 여교사, 마녀처럼 모든 걸 알고 몰래 숨어 지켜보는 노파. 이들에게는 비밀스러운 공통분모가 있다. 그건 마을을 벗어나는 것이다. 지베르니는 인상주의 성지이자 꿈의 정원이지만 이들에게는 액자 속 그림 같은 감옥이자 운명을 얽어매는 덫일 뿐이다.
살인사건을 계기로 세 여인의 필사적인 탈출이 시작된다. 하지만 이들 중 탈출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뿐! 그곳을 빠져나갈 자는 누구인가?
《검은 수련》은 미셸 뷔시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이다. 출간 후 귀스타브 플로베르 대상을 비롯한 7개 문학상을 받으며 뛰어난 문학성과 함께 추리소설로서의 확실한 재미까지 인정받았다. 노르망디 출신의 루앙 대학교 지리학과 교수인 저자를 프랑스 최고의 추리작가로 만든 소설 《그림자 소녀》이후, 전작이었던 《검은 수련》은 그 진가를 드러냈다.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한 이 작품은 결국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면서 평단과 독자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출간한 여러 책들 중에서도《검은 수련》을 쓰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밝힌 미셸 뷔시는 오랫동안 구상하고 집필한 이 작품에 특별한 애정을 드러낸다.
예술이란 소재를 수수께끼 같은 인물들로 엮어낸 몽환적인 분위기의 《검은 수련》은 퍼즐 조각을 처음부터 여기저기 던져놓지만 끝까지 읽어야만 비로소 모든 조각이 하나로 완결되고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치밀하고 탄탄한 구조, 아름다운 문체, 마음을 두근대게 하는 서스펜스와 긴장감은 책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손에 땀을 쥐게 하며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결말로 급박하게 몰고 간다. 눈을 의심케 하는 놀라운 반전은 강렬하고 짙은 ‘인상’을 오래도록 마음에 새긴다. 미셸 뷔시는 이 소설로 프랑스 추리문학의 격을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았다.
인상주의 회화가 미스터리 문학을 만나다
모네가 그린 〈루앙 대성당〉 연작이 시간과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대상으로 탄생하는 것처럼 미셸 뷔시도 순간의 빛이 자아낸 인상으로 소설 속 인물들을 세밀하게 스케치하고 채색한다. 모네가 반평생을 보내며 〈수련〉 그림에 매달렸던 지베르니 마을과 인상파의 대가 클로드 모네는 책의 중심에 있다. 저자는 사건을 빌미로 모네의 생애와 그와 교우했던 화가들의 일화, 모네의 유족들에 관한 심도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모네의 〈수련〉 그림과 작업 방식, 인상주의 회화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도 소설 속 인물들의 입을 통해 긴장감과 함께 밀도 있게 다뤄진다.
소설은 인상주의와 관련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허구와 사실을 아우른다. 1985년 11월 27일 파리의 마르모탕 미술관에서 도난당했던 모네의 〈인상, 해돋이〉작품을 포함한 여러 점의 명화들은 1991년에 다시 미술관으로 돌아왔다. 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소설 인물이 동원되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모네의 집이나 루앙 미술관, 혹은 베르농 미술관 등 인상파와 연관된 장소를 매혹적으로 묘사하며 한층 더 예술적인 분위기에 젖게 만든다. 소설 제목인 ‘검은 수련’ 또한 자신의 죽음에서 영감을 얻고 그린 작품이라는 모네의 전설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미셸 뷔시는 이렇게 클로드 모네의 삶과 지베르니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뒤섞고, 주인공들 위로 떨어져 내리는 색채와 빛과 풍경을 추가해 한 폭의 거대한 인상파 회화 같은 추리소설을 완성했다.
꽃의 성소, 지베르니 마을
《검은 수련》의 책장을 넘기며 아름다운 지베르니 마을을 발견하는 기쁨 또한 쏠쏠하다. 지베르니는 나란히 뻗은 클로드 모네 거리와 루아 국도, 그 둘을 잇는 골목들이 전부인 작은 마을이다. 글 첫머리에 지베르니를 있는 그대로 그리고 싶었다고 말하는 미셸 뷔시는 마을의 건물과 풍경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모네 시대에 인상파 화가들이 자주 드나들었던 보디 호텔, 시어도어 로빈슨의 그림에 자주 등장했던 셴비에르 방앗간, 유서 깊은 생트 라드공드 성당과 클로드 모네가 잠들어 있는 공원묘지, 시청과 마을 학교, 모네가 그림을 그렸던 넓은 초원과 오르티 섬과 엡트 강, 그가 43년간 거주했던 장밋빛 저택, 꽃이 만발한 정원, 수련 연못······. 지리학 연구자다운 꼼꼼함과 정확성으로 묘사한 지형지물은 작가의 유려하고 시적인 문체를 덧입어 그림처럼 그려진다. 이 덕분에 책을 읽다보면 마치 지베르니 한복판에 들어온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모네가 수련 연못을 만들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과 마을의 역사, 한 세기 전 이곳에 찾아왔던 시어도어 로빈슨, 스탠튼 영 같은 미국 화가들과 르누아르, 시슬레, 부댕 등 유명한 인상파 화가들의 발자취,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린 인상주의 회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작품 전면에 등장하는 루이 아라공의 문학을 만나는 일도 흥미롭다. 초현실주의를 주도했던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아라공도 한때는 지베르니 주민이었다.
《검은 수련》에서 실제 역사와 작가의 상상력이 동원된 지베르니는 생동감이 넘치고 소설 속 인물들은 실존하는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마을은 모네가 죽은 이래 옛날 모습 그대로 멈춰 있다. 모네 시대에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던 아름다운 자연과 마을은 인상주의를 테마로 잡은 놀이공원처럼 관광객들에게 옛날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불변하는 공간이 됐다. 지베르니에선 집을 고치고 정원을 손보는 일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이를 규제하는 법들이 수없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지베르니를 액자 속에 갇힌 그림이자 감옥으로 여긴다. 주민들조차 그림의 일부이기에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소설에서 여주인공은 ‘이곳에선 돌과 꽃만 여행을 떠나요. 참 이상하죠? 여기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라고 말하며 그림처럼 죽어 있는 마을의 모습을 암시한다. 그들에게 지베르니는 덫이기도 하다. 낭만적인 겉모습과 달리 그 속에선 음모가 난무하며 각 개인의 비밀스러운 운명이 정밀한 톱니바퀴처럼 째깍째깍 돌아갈 뿐이다.
뫼비우스 띠처럼 끝나지 않는 시간의 굴레
동서양에서 시간에 대한 인식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서양에서는 기독교 사상에 근거해 시간이 직선으로 펼쳐져 있으며 앞을 향해 달려간다고 생각하는 반면, 동양에서는 불교의 윤회 사상을 바탕으로 모든 것이 돌고 돈다고 보았다. 《검은 수련》의 시간은 복합적이다. 주인공들은 대단원을 향해 숨 가쁘게 나아가는 선적인 시간 속에 있지만 그 시간은 뫼비우스 띠처럼 뒤틀려 있다. 안팎이 없고 처음과 끝이 없으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그 틈새로 겹겹이 스며든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셰르의 말처럼 강물은 한 방향으로 흐르는 듯 보이나 그 밑의 물길은 역류하기도 하고 소용돌이치며 서로 부딪치기도 한다. 외면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검은 수련》 속의 시간도 과거의 기억과 상처들이 표면으로 떠올라 현재가 되고 미래는 다시 과거와 연결된다. 모네가 죽은 1926년부터 2010년까지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13일이라는 닫힌 시간 속에서 때로는 잔혹하게 때로는 처연하게 마음을 옥죄며 긴박하게 맞물린다. 하지만 닫힌 시간은 견고하지 않고 살아 꿈틀거리며 다시 새로운 시간을 잉태한다. 언젠가 열리기 위해 존재하는 닫힌 문처럼 영원히 봉인되는 시간이란 없다. ‘절망에 사로잡힌 화가의 붓이 떨어뜨린 애도의 색조. 그 틈으로 노란 꽃부리들이 빛나고 있다.’라는 책 속 문장처럼 희망만 있다면 시간의 빗장이 다시 열리길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광기와 운명, 사랑과 휴머니즘
미셸 뷔시는 인간에게 내재한 악마적인 광기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철저히 파헤친다. 광기는 보통 부정적인 측면이 더 부각되지만 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광인들은 후대에 높은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며 500년에 걸쳐 완공한 루앙 대성당의 설계자, 말년에 노쇠한 육체로〈수련〉그림에 매달린 클로드 모네, 시신의 잘린 팔다리나 참수당한 목을 수거해 그림을 그린 테오도르 제리코 등이 그 예이다. 작가는 소설에서 이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왜 사람들은 미치광이에게 열광하는 걸까?’라고.
광기에 대한 물음은 사랑과 운명이라는 주제로 확산된다. 각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광기는 자기 몫의 운명으로 예정된 것인가? 광기 어린 집착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한 사람을 얼마만큼이나 사랑해야 완벽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듯한 자신의 운명을 깨뜨리는 건 가능한 일인가? 차가운 물이 머리 꼭대기까지 차오를 때 과연 또 다른 운명을 기대할 수 있는가? 애써 살아온 날들이 복제만 거듭한 인생에 불과하다면?
사랑이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여교사와 자신의 재능으로 세상 전부를 가질 수 있을 거라 확신하는 어린 소녀, 그들에게 불길한 앞날을 예언하는 노파. 이들의 들끓는 삶은 작가가 의도한 교묘한 길을 따라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
《검은 수련》은 엇물린 사랑과 운명의 이면을 보여주지만 반짝이는 유머와 인간에 대한 따스함을 잃지 않는다. 애도와 고통의 순간 속에서도 휴머니즘은 빛을 발하고 책장을 덮는 순간 놀라운 감동이 뒤따른다. 그건 선한 본성과 사랑의 힘을 믿는 긍정에서 비롯된다. 깊은 절망이라 할지라도 한줄기 빛이 내리쬘 거라는 믿음은 어둠을 헤쳐 갈 힘이 되는 것이다. 작가는 주인공의 말을 빌려 이를 강변한다. ‘이상한 나라로 떨어지는 동화 속 앨리스처럼 추락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두 눈 질끈 감고 환상의 나라를 믿어야 한다.’라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미셸 뷔시가 만들어낸 세상은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진정한 판타지로, 가슴 벅찬 한 편의 극화로 거듭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