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투덜 뉴욕, 뚜벅뚜벅 뉴욕
뉴욕 이민 17년차 한국 아저씨, 이제 뉴욕에서 먹고사는 건 무섭지 않다!
“뉴욕은 사람 정떨어지게 하는 구석이 많은 곳이다. 다만 1주일을 여행하건, 수십 년을 살건 뉴욕은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자극을 주는 장소임은 분명하다. ‘도대체 여기가 뭐가 좋다고 이렇게들 몰려오는 거야?’라고 늘 불평하는, 뉴욕에 대해서는 만성 투덜이에 가까운 나를 끝내 부추겨 이렇게 책까지 쓰게 한 것도 결국 뉴욕의 저력(?)이 아닌가 싶다.”
뉴욕은 미국 경제·문화·예술의 중심지를 넘어 이제는 전 세계 경제·문화·예술의 수도라고 할 수 있다. 맨해튼, 브루클린, 브롱스, 퀸스, 스태튼 아일랜드의 5개 구(Borough)로 이루어진 인구 800만의 도시 뉴욕을 생각하면서 누구나 센트럴파크를 내 집 정원처럼 드나들며 조깅하는 뉴요커, 브로드웨이 연극과 메트 오페라를 정기적으로 관람하는 뉴요커, 그리니치빌리지의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여유 있는 주말 오후를 보내는 뉴요커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만이 뉴욕의 전부일까. 실제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맨해튼을 여행하며 뉴욕을 겪었다고 생각하지만, 5개의 구 중 가장 작은 섬에 불과한 맨해튼은 정작 너무 비싸서 혹은 학군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뉴욕 사람들이 살 수 없는 곳이다. 우리가 아는 뉴욕 사람들은 뉴욕의 화려함을 그저 ‘배경’으로만 두고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뉴욕에서 17년째 살고 있는 저자는 그동안 광고회사 PD, 홍보영화 감독, 이벤트 기획, 신문사 기자, 대학 강사, 라디오방송국 기자, 도매상 점원, 리테일 매니저, 다큐멘터리 감독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하지만 뉴욕에서 생활하는 동안, 처음 뉴욕으로 떠나온 이유인 영화에 대한 꿈은 놓지 않았다. 연극 한 편, 공연 한 편 못보고 몇 달이 지나가고, 술을 질펀하게 마실 친구도 별로 없고, 월세와 보험료는 끔찍하게 비싸고, 누가 물어보면 자신 있게 행복하다고 대답할 수 없는 일상이 지속되었지만, 적응이 되고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런 전환의 과정을 겪었다. 새롭게 보이는 뉴욕의 장점도 늘어났고 아는 만큼 보이고 관심 갖는 만큼 보이기 시작했다.
뉴욕은 길의 문화다. 스트리트(Street)와 애비뉴(Avenue)의 문화이며 걸어야 제대로 된 맛을 알 수 있는 도시다. 그렇게 새롭게 발견한 뉴욕의 모습, 자신과 가족의 모습, 고국의 모습을 기록한 글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두 가지 점에서 남다르다. 하나는 뉴욕을 방문한 사람과 뉴욕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시선이 균형을 이뤘다는 것이다. 원래 뉴욕에 관한 글은 뉴욕과 연애하는 시점에서 써야 하고, 실제로 많은 책들이 그 시점에서 나온다. 하지만 뉴욕과 결혼하고 나면 그 마음이 없어진다. 20~30년 이상 살아온 현지 문인들의 글에 관조는 있지만 생기가 없는 이유다. 현재를 이야기하면서도 결국은 모두가 회고담인 경우가 많은 이유다. 저자의 지점은 딱 그 중간 정도, 즉 지금, 이곳에서 땅을 딛고 살고 있는 사람의 꾸미지 않은 생활 이야기다.
또 하나는 남자의 이야기란 점이다. 뉴욕에 관한 책은 여성 작가들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뉴욕이란 도시 자체가 워낙 여성들에게 로망의 장소이며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감수성이 이 도시를 더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남자들만 할 수 있는 혹은 남자들이 더 잘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는 법이다.
꿈꾸는 사람에게 찬란한 도시에서 ‘노바디가 될 순 없다(I can’t be nobody)’
살면서 불편하고 힘든 일은 있어도 지루할 일은 없는 곳이 뉴욕이다. 저자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뉴욕으로 떠나왔다. 뉴욕의 영화학도로 지낼 때 그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며 뉴욕에서 살고 있음에 뿌듯해했고, 냄새 나고 좁은 지하철을 타면서도 불편함을 느끼기는커녕 즐거워했다. 가난함도 불편함도 낭만이 되던 시절이었다. 그 후 그는 유학생에서 이민자로, 방문자에서 거주자로 신세가 바뀌었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지금은 방송 코디네이터와 부동산 브로커로 일하면서 아직도 영화감독의 꿈을 꾼다.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해 성공을 꿈꾸기는 늦었지만, 죽기 전에 뉴욕이건 한국에서건 저예산 장편영화를 하나 만드는 것이 못 꿀 꿈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다양한 예술가, 감독들을 소개하며 ‘꿈을 현실로 이룬 사람, 계속 꿈꾸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은 것도 영화감독의 꿈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래서 어느 날 문득, 어떤 때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그냥 되뇐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행복을 가장한 적도 없고, 내가 가진 것들을 하찮게 여긴 적도 없다. 나름대로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잘살고 있다. 하지만 ‘I can’t be nobody.’ 세상엔 겨뤄보고 싶은 멋진 사람들이 너무 많고, 이상하게 아직 난 자신이 있다. 그리고 ‘I can’t be nobody.’”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저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한국과 미국, 서울과 뉴욕, 어느 화려하고 복잡한 도시 아니면 시골 작은 마을 어딘가에서 꿈을 간직하며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뉴욕 생존기는 꿈꾸는 자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는 일상을 담은, 거칠지만 현실적인 이야기로 다가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