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나는 오늘도 하드보일드를 읽는다

나는 오늘도 하드보일드를 읽는다

저자
김봉석
출판사
예담
출판일
2015-08-25
등록일
2015-09-23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0
공급사
북큐브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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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이 궁금하다면 범죄소설을 읽어라!
김봉석 평론가의 하드보일드 소설 탐험 그 두 번째 이야기


영화평론가이자 대중문화평론가 김봉석의 하드보일드 소설 서평집 『나는 오늘도 하드보일드를 읽는다』가 출간되었다. 2012년 출간된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을 잇는 두 번째 권으로 북유럽 스릴러와 미국의 첩보물, 일본 미스터리까지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하드보일드 소설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하드보일드는 본래 ‘계란을 완숙하다’라는 뜻의 형용사다. 딱딱하게 완숙한 계란 노른자처럼 목이 메도록 퍽퍽한 이 세계의 일면을 빗댄 표현이다. 하드보일드는 문학으로 넘어와 비정과 냉혹을 의미하는 동시에 수식과 판단을 배제한 헤밍웨이식 문체를 일컬었다. 그리고 지금 하드보일드는 단순히 문체뿐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정서 자체를 포괄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사회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창이자 인간의 깊숙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도구. 저자는 그것이 ‘범죄’라고 말한다. 이 책은 전작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에 이어 범죄와, 범죄를 저지른 인간의 내면을 파헤치는 작품들을 통해 하드보일드적인 세계관을 제시한다.


하드보일드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애티튜드
범죄소설을 읽다 보면 비정한 시대의 생존방식을 깨닫게 된다


요즘 우리 시대의 화두는 ‘살아남기’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사회, 신뢰할 수 없는 권력, 인간성 상실이 빚어낸 폭력 범죄, 무의미한 이데올로기 싸움과 목숨을 위협하는 질병에 맞서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고단한 전투를 계속해나가야 한다. 저자는 이 피로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애티튜드로서의 하드보일드를 말한다. 집단의식이나 이데올로기에 중독되어 달려 나가는 것이 아니라 쉽게 타협하지 않고, 도취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꾸준히 걸어 나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취해야 할 태도라고 말이다.
하드보일드 소설 속 주인공들은 일상의 평범한 악을 쫓는 과정에서 거대한 사회의 부조리와 마주한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거대 악을 물리칠 정도로 초인적인 능력의 소유자는 아니다. 다만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정의롭지 못한 체제를 대하는 주인공의 태도다. 그들은 악한 본질과 맞서 싸우기보다는 그때그때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해결해나간다. 그들은 세계가 희망에 가득 차 있다고 믿지 않으면서도 쓸데없는 감상이나 필요 이상의 절망에 몸을 투신하는 대신 담담하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단숨에 역사를 바꾸고 체제를 전복하는 일은 할 수 없지만 적어도 현실을 직시하고 꾸준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일,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생존방식인 셈이다.


“살아가는 일은 힘들고 고난은 계속해서 닥칠 것이다
그래도 잊지 말자 어쨌든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1장은 사회의 부조리함을 냉정한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들을 소개한다.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벽과 마주한 주인공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혼다 테쓰야의 『감염유희』에서 희생자는 관료다. 그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잘못된 선택을 했고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켰다. 그러나 그들은 처벌받지도, 이름이 공개되지도 않는다. 희생자의 주변인은 그들의 잘못 때문에 영원히 고통 받는데도. 가해자는 책임을 묻지 않는 사회를 대신해 이들을 처단한다. 소네 케이스케의 『침저어』는 경찰 조직이 어떻게 썩어가는지 거침없이 보여준다. 정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경찰의 모습을. 이들의 모습은 결코 선하지 않지만 이들 역시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힘없는 인간일 따름이다.

녀석의 장래를 결정하는 건 자기 자신이 아니다. 하물며 이 나라 국민도 아니다. 이용 가치가 없다면 아쿠타가와는 바로 정치 일선에서 사라질 것이다 (…) 역시 일개 부품. 쓰고 버리는 부속에 지나지 않는다.
- 소네 케이스케, 『침저어』 중

2장은 꼬여만 가는 운명의 사슬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몸부림을 그린 작품들을 소개한다. 존 하트의 『아이언 하우스』의 주인공 마이클은 피도 눈물도 없는 킬러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고 생존하기 위해 강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럭저럭 받아들일 만한 삶이었지만,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마이클은 숙명과도 같던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다. 배리 리가의 『나는 살인자를 사냥한다』의 주인공 재스퍼는 사이코패스의 아들로 태어나 살인마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그도 마이클처럼 어린 시절에 이미 결정된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안에 내재된 악마와 필사적으로 싸운다.
반대로 스스로 잘못된 선택을 해서 꼬인 운명을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도 있다. 숙명과도 같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범죄자가 된 사람들을 표현해 낸 옌스 라피두스의 『이지 머니』와 소네 케이스케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 그렇다. 우연이 빚어낸 비극을 그린 우타노 쇼고의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프랑크 틸리에의 『죽은 자들의 방』은 비극의 시작을 우연이 만들어 냈을 지라도 운명은 우연과 마주한 인간의 애티튜드로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히라타는 평범하게 나이를 먹어갔다. 그런데 딸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아내는 자살했다. 자신은 암 선고를 받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평범과는 무관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 우타노 쇼고,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중

3장은 범죄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사회가 사이코패스로 규정한 사람들이 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3장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에는 흉악한 범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자가 등장한다. 이들의 행동은 어떤 방식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사회는 이들을 사이코패스라고 간단히 규정해버린다. 그러나 정말 그뿐일까? 이들과 얽힌 모두는 정말 아무 잘못도 책임도 없을까? 범죄자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소상히 설명하는 폴 클리브의 『쿠퍼 수집하기』나 사이코패스라 불리는 살인마 주변의 인간들이 과연 살인마와 무엇이 다른지 질문을 던지는 조이스 캐럴 오츠의 『좀비』 등을 소개한다.
혼다 테쓰야의 『히토리 시즈카』에 등장하는 시즈카는 살인도 서슴지 않는 악녀다. 그녀는 어린 시절 당했던 폭력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복수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한다. 저자는 결코 옹호할 수 없는 그녀의 악행 뒤에 가려진 동기에는 그러나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괴물도 이유 없이 탄생하지는 않는 것이다.

나는 폭력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아요. 단지 이용할 뿐이죠. 내 나름의 방식대로 폭력을 다루는 거예요.
- 혼타 테쓰야, 『히토리 시즈카』 중

4장은 매력적인 탐정과 형사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단한 신념을 지니지도, 아주 특별한 능력을 지닌 영웅도 아니다. 단지 눈앞에 던져진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 그때그때 노력할 뿐이다. 4장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주인공의 매력을 드러낸다. 고전적인 추리 소설에 등장하는 밀실 살인이나 안락의자 탐정 등을 이용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기시 유스케의 『자물쇠가 잠긴 방』, 노리즈키 린타로의 『킹을 찾아라』를 비롯해서 잔혹하고 비정한 사건을 성실한 태도로 풀어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 새러 패러츠키의 『제한 보상』이나 요 네스뵈의 『레오파드』가 그렇다. 이들은 다른 하드보일드 소설 속 주인공이 그렇듯 주변의 작고 사소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그 사건과 얽힌 거대한 악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그 거대악과 마주한 주인공들의 태도는 꼭 비관적이지는 않다. 다만 그런 부조리를 인정하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이렇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말고는 더는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한 방법으로 실마리를 찾아내야 한다.
- 새러 패러츠키, 『제한 보상』 중

5장에서는 하드보일드의 애티튜드를 제시하는 작품 소개가 주를 이룬다. 하드보일드의 세계관이 암시하듯 사회는 참혹하고 비정한 곳이다.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일어나거나 부당한 운명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주저앉기도 한다. 행성 충돌이 예고되어 지구 종말을 목전에 둔 벤 H. 윈터스의 『모두의 종말』 속 세계관에서 인간의 잔혹함은 더욱 두드러진다. 미래가 없다고 여겨지자 지구인들은 순식간에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종말을 핑계로 타락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묵묵히 살인사건을 수사해 나가는 경찰관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남편의 폭력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두 여성의 이야기인 오쿠다 히데오의 『나오미와 가나코』도 마찬가지다. 하드보일드 소설은 우리에게 세계가 희망찬 곳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도 없다. 눈앞에 닥친 현실을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다보면 세상이 조금 더 나은 곳이 되기도 하는 법이니까.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너무 많이 생각하면 안 되는 법이다. 정말 그래서는 안 된다.
- 벤 H. 윈터스, 『모두의 종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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