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서재
중국 고전과 인문서를 꾸준히 읽어 착실한 인문 소양을 갖춘 중국의 과학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장샤오위안 독서 편력기다.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듯 늘어놓는 그의 이야기에는 학문, 독서, 번역, 편집, 서재, 서평 등을 아우르는 책 생태계에서 살아온 그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굳이 장르를 고른다면 수필이나 에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표정훈 도서평론가의 말대로 “일정한 형식이나 체계 없이 느끼거나 생각나는 대로 쓰는 글, 만필”이란 표현이 딱 어울린다.
그러나 이 책이 한가로운 소일거리로서의 독서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과 인문학이라는 두 문화를 넘나들어야 하는 과학사학자 장샤오위안의 학문적 문제의식이 곳곳에 묻어날뿐더러, 한 사람이 학자로 성장하는 과정이 잔잔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는 문화대혁명 시기였던 청소년기에 금지된 책을 탐독하며 친구들 사이에서 책을 유포시키는 허브 역할을 하기도 했고, 전기 기사로 일하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을 정도의 독서광이었다.
과학사를 중심으로 장샤오위안이 읽은 광범위한 책들의 내용에 더하여 중국 출판계의 속내, 중국 학술계의 풍토와 흐름과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이 주는 넉넉한 덤이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중국의 책벌레가 털어놓는 책 이야기
이 책은 어려서부터 중국 고전과 인문서를 꾸준히 읽어 착실한 인문 소양을 갖춘 중국의 과학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장샤오위안 독서 편력기다.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듯 늘어놓는 그의 이야기에는 학문, 독서, 번역, 편집, 서재, 서평 등을 아우르는 책 생태계에서 살아온 그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굳이 장르를 고른다면 수필이나 에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표정훈 도서평론가의 말대로 “일정한 형식이나 체계 없이 느끼거나 생각나는 대로 쓰는 글, 만필漫筆”이란 표현이 딱 어울린다. 그러나 이 책이 한가로운 소일거리로서의 독서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과 인문학이라는 두 문화를 넘나들어야 하는 과학사학자 장샤오위안의 학문적 문제의식이 곳곳에 묻어날뿐더러, 한 사람이 학자로 성장하는 과정이 잔잔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는 문화대혁명 시기였던 청소년기에 금지된 책을 탐독하며 친구들 사이에서 책을 유포시키는 허브 역할을 하기도 했고, 전기 기사로 일하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을 정도의 독서광이었다. 과학사를 중심으로 장샤오위안이 읽은 광범위한 책들의 내용에 더하여 중국 출판계의 속내, 중국 학술계의 풍토와 흐름과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이 주는 넉넉한 덤이다.
중국에서 책벌레가 사는 법
이 책은 그간 한국에 출간된 여러 중국 관련서에서 판에 박힌 듯 빤하게 다뤄졌던 중국 현대사의 큰 맥락이 아닌 개인의 소소한 독서사를 다룬다. 말하자면 어린 시절에 문화대혁명 시기를 보내고 개혁개방을 거쳐 지금의 중국을 살고 있는 책벌레의 이야기인 셈이다.
요즘은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 여럿 나오고 있지만 문혁의 존재를 아는 외국인에게 문혁은 여전히 어둡고 두려운 때다. 그러나 저자 장샤오위안의 추억은 조금 다르다. 그 힘든 시절에 그는 금지된 책을 탐독하며 친구들 사이에서 책을 공급하는 허브 역할을 하면서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이어서 그는 중국과 소련의 관계에 따라 변하는 중국 내 소련 소설의 위상이라든지, 중국어권 문화계를 풍미한 니쾅의 ‘웨슬리 시리즈’와 진융의 무협 소설 이야기, 중국의 과학 소설 상황 같은 중국 독서 풍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 장샤오위안은 천문학과를 나와 중국 최초로 과학사학과를 만들었을 정도로 자기 전공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룬 사람이지만 성학性學을 자기의 두 번째 전공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괴짜이며 취미 삼아 하던 과학 소설 서평과 영화평을 매체에 연재하기까지 하는 능력자다. 과학사라는 그의 전공 특성상 그는 이과와 문과의 경계선에서 살고 있다. 또한 그런 만큼 잡식성이다. 게다가 그 잡식성의 관심사를 확장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 어릴 때는 장기에 미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장기를 두기도 하고, 스스로 중국 고전 시에 빠져 격률과 평측까지 맞추어 가며 작품을 짓기도 하고, 사내만 가득한 대학원에서 비밀스럽게 오가던 성 이야기에 눈을 뜨더니 그대로 성학性學을 연구하여 책으로 펴내기도 하고, 사스를 핑계로 집 안에서 과학 영화를 보기 시작하더니 과학 소설로까지 넘어가 아예 그 분야에서 서평과 영화평을 써서 매체에 연재하는 지경에 이르고, 열심히 책을 읽더니 심지어는 신문 서평란 편집까지 한다. 말하자면 한번 호기심이 생기면 끝까지 파고들어 취미를 업으로 삼는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이런 그는 학회 일로 오게 된 한국에서 『삼국유사』를 찾아 서울 시내를 누비기도 하고, 포르투갈의 작고 초라한 서점에서 에로티크 박물관의 도록을 발견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
이런 그의 바람은 고양이가 되는 것이다. 서재 가득 꽂힌 책과 디브이디 사이를 나른하게 오가며 자다가 깨다가 읽다가 보다가 상상에 빠지는 고양이. 이건 아마도 모든 책벌레의 꿈일지 모른다. 저자는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은 하루 종일 바쁘게 바깥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날이며, 하루 종일 서재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이라 공공연히 말하며, “책 있으면 부자, 일 없으면 신선”, “안온한 상태를 얻기가 가장 어려운 법”이라는 말을 심상하게 읊조린다. 책벌레 장샤오위안에게 독서란 삶을 풍요롭게, 충만하게 해 주는 반려伴侶다. 독서의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한국의 독서인들에게 이 책은 중국의 책벌레에 대한 진귀한 이야기를 제공할 것이며, 한국의 책벌레들은 저자와 처한 시공간은 다르지만 같은 독서가로서 진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