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연애
스페인 산티아고에서 쿠바 산티아고까지,
길 위에서의 인연, 그리고 사랑 이야기가
한 편의 소설처럼 펼쳐지다
그녀, 떠나야만 했던 이유
19살 때부터 여행자로, 취재원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다 파리에 안착한 지 10여 년. 남들 다 부러워하는 아름다운 곳에 살고 있지만 정작 그녀는 공허함과 외로움에 허덕이는 중이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떠날 생각은 아니었다. 아마도 ‘혹독한 아홉수’를 맞지 않았다면 어릴 적 꿈이었던 ‘서른 맞이’ 여행을 떠올리지 못했을 테니까. 그 끔찍했던 아홉수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양배추 죽도 겨우 넘길 정도로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
사랑하는 남자에게 ‘사랑한다’는 이유로 뻥 차이고,
집은 거짓말처럼 몽땅 털리고, 계약직까지 만료되다.
어떻게 이 모든 일이 한꺼번에 일어날 수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짐을 챙겼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딱 3개월만이라도 살다 와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정리할 집도, 애인도, 직장도 남아 있지 않아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이상하리만큼 두렵고 무서웠다. 그동안 잘만 돌아다니던 그녀는 자신의 마음이 왜 이렇게 졸아드는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라는 질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 ‘서른의 나를 위한 긴 여행.’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고, 열정의 나라 쿠바에서 마음껏 몸을 흔들며 서른을 맞이한다면 마음의 대 지각변동을 끝내고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불안과 두려움, 시련이 인생 전반에 스며들고 있는 지금이 바로 떠나야 할 때야!’
그녀는 다시 한 번 ‘두려움이 도대체 뭐야?’라고 묻는 사람처럼 용감하게 떠나보기로 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시선과 언어, 문화를 전하다
[여행은 연애]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과 쿠바라는, 그동안의 여행 에세이가 보여준 적 없던, 그리고 보통의 여행자들도 조합하지 못했던 두 곳의 이야기를 아주 매력적이고 달콤하게 들려준다.
길에서 처음 만났지만 영혼을 나눈 친구가 된 제시카, 6년 전 사고로 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결국 길 위에 선 마리아, 젊은데 무얼 못하겠냐며 무조건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용기를 준 비엔베니도 아저씨, 애가 둘 있지만 저자와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고 싶다는 쿠바 인력거 청년, 묘한 매력으로 아련한 사랑전선을 오가게 하는 라파엘….
[여행은 연애]가 들려주는 에피소드들은 눈앞에서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생생하다. 특히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저자의 현지 밀착형 시선과 언어, 생각들은 기존 여행 에세이에서 보지 못했던 장면과 대화, 문화를 포착해 읽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때문에 한 편의 소설처럼 부지불식간에 눈물짓게 하고, 박장대소하게 만든다.
여행과 연애,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일상
이 책에서 ‘보는 것’ 혹은 ‘보았던 것’은 그리 중요치 않다. 물론 가없이 펼쳐진 산티아고 순례길과 흑백영화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쿠바의 모습은 글로 묘사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하지만 이 책이 여느 여행 에세이와 차별화되는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해외 생활로 영어와 프랑스어, 스페인어까지 구사하는 저자는 혼자 있고 싶어 떠난 여행에서 필연적으로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만난다. 게다가 의도치 않게 그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며 때로는 위로를 받고 때로는 위로를 건넨다.
이러한 사람 여행을 통해 저자는 마음에 담고 있던 질문,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에 대한 답을 찾아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차갑기만 했던 가슴을 뜨겁게 덥혀주는 ‘연애’ 혹은 ‘사랑’의 과정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