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201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파트릭 모디아노
그는 기억의 예술을 통해 불가해한 인간의 운명을 소환하고 독일 점령기 프랑스의 현실을 드러냈다.
_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산다는 것은 하나의 추억을 완성하기 위해 애쓰는 것
파트릭 모디아노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오토픽션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는 2014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초기작으로, 지금까지 발표되어온 모디아노의 소설들 중에서도 자전적 색채가 가장 짙은 것으로 평가받는 소설이다. 1977년 출간된 그의 다섯번째 소설인 작품은 총 열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장은 연속적인 줄거리 없이 독립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 앞에 인용된 “산다는 것은 하나의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집요하게 애쓰는 것이다”라는 르네 샤르의 글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 이 책 전체가 어렴풋한 이미지로, 희미한 윤곽으로밖에 남지 않은 기억을 더듬어가는 지난한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열다섯 개의 파편과도 같은 기억들은 장마다 등장하는 일인칭 화자 ‘나’의 목소리를 통해 통일성을 얻는다. 각각의 장에서 ‘나’는 딸아이를 얻은 아버지고, 아버지와 함께 시골 별장을 찾아 사냥을 하는 아들이고, 이집트에서 실종된 한 쇼맨의 전기를 쓰며 작가가 되고자 하는 젊은이이며, 영화 시나리오 각색을 맡은 작가이기도 하다. 또 ‘나’는 할머니가 살았던 집이 있는 거리에서 회상에 잠기고, 카페에서 낯선 이의 죽음을 목격하고, 우연히 마주친 과거의 망령과도 같은 인물에게서 해명을 들으려 하고, 신문에 실린 부동산 광고를 보고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을 찾아간다.
‘나’가 파트릭 모디아노라고 이름을 밝히면서 소설의 자전적 경향은 더욱 뚜렷해진다. 늘 부재했던 유대계 아버지, 영화배우였던 어머니,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남동생 뤼디 역시 등장한다. 프랑스의 작가가 되는 일만 남아 있다고 서술했던 소설 속 열일곱 살의 ‘나’처럼, 모디아노는 열여덟 살에 『에투알 광장』으로 데뷔하게 된다. 시나리오 각색을 맡아 배우, 제작진들과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는 ‘나’에게서는 여러 편의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모디아노가 겹친다. 소설 첫 장과 마지막에는 갓 태어난 딸아이가 등장하는데, 첫딸을 얻은 모디아노의 실제 경험이 투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근원과 혈통, 정체성을 찾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단단한 전통과 소속감 속에 뿌리를 내리고 싶어하는 욕구는 모디아노의 소설들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점이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책의 원제인 ‘호적부Livret de famille’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프랑스의 호적부는 해당 행정기관에서 신혼부부에게 발급하는 수첩으로 혼인증명서가 포함되며 자녀의 출생시 그 출생신고 내용까지 기록된다. 말하자면 호적부란, 한 인간이 지나온 삶의 여정을 일련의 이름들과 시공간의 좌표에 따라 기록함으로써 그를 사회와 연결시켜주는 공적인 문서인 것이다. 모디아노는 특유의 집요하고도 섬세한 문체를 통해 호적부를 우리 앞에 다시 써 보인다. 그의 호적부는 관청 서류가 무시해버린 온갖 사항을 과거의 어둠 속에서 환한 빛 아래로 끌어내려 한다. 하지만 그 시도가 집요할수록 오히려 그 의미는 망각의 어둠 속에 다시 묻히고 만다.
자명하고 섬세하게 묘사된 개개의 사실이 가진 밝음과 하나의 통일된 숙명의 얼굴을 완성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의미의 어둠이라는 이 명암의 마찰 속에 여운처럼 떠서 감돌고 향기처럼 문득 스쳐왔다 사라지는 박명의 정서, 아마도 여기에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의 감동이 내재하는 듯하다. _해설에서
“그 많은 노력이 다 무슨 소용이 있어요……”
나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나선 여정
소설은 딸의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시청 호적과를 찾는 나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나는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버지의 옛 친구인 장 코로맹데에게 시청까지 함께 동행해달라고 청한다. 십여 년 전 소식이 끊긴 아버지에 대해 물어볼 요량이었다. 호적과가 문을 닫기 직전에 간신히 도착한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딸아이의 출생신고를 마칠 수 있었다(1장). 그다음으로는 내가 스무 살이 되지 않았을 때 만난 앙리 마리냥과 중국 대륙으로 떠나기 위해 부단히, 하지만 부질없이 대사관 직원과의 접촉을 기다리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나는 그곳에 자신의 뿌리와 가정, 보금자리가 있다고 자신을 설득한다(2장). 그다음 레옹 보두아예 가에 살았던 할머니에 대한 짧은 회상에 이어(3장), 젊은 시절 배우였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브뤼셀의 촬영지로 가던 중 나치스의 진군 소식이 전해지고 이를 피해 미국으로 떠나기로 하는 영화 제작자들과 달리 어머니는 이곳에 남는다(4장). 이야기의 무대는 다시 아버지와 열다섯 살인 내가 기차를 타고 도착한 시골 별장으로 옮겨간다. 아버지는 레이놀드에게 모종의 서류에 서명을 받는 데 성공하고, 나는 혼자 남아 그들 무리와 함께 말을 타고 사냥에 나서게 된다(5장).
1973년 10월, 중동 전쟁 소식을 라디오로 전해들은 날, 나는 카페에서 한 남자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진술을 위해 경찰서까지 동행해, 그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앙리 부를라고프임을 알게 된다(6장). 그다음은 작가인 내가 영화를 위해 시나리오 각색을 의뢰받고 촬영이 끝날 때까지 현장에서 함께하는 이야기다(7장). 아내와 함께 세례 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옛 동네를 찾는 나(8장), 중립지대인 스위스 로잔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던 중 한 라디오 방송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가 점령기 파리에서 악명을 떨친 인물임을 깨닫고 그와 대면할 결심을 하는 나의 이야기(9장), 내가 열여덟 살 때 알게 된 이집트의 마지막 왕 르 그로와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10장).
한편, 언제까지나 뿌리 없이 떠돌며 살 수는 없다며 새로이 정착할 곳을 물색중인 알렉스 삼촌과 함께 나는 물방아가 있는 시골 땅을 보러 가는데, 그 끝에는 절망과 서글픔만 남을 뿐이다(11장). 이집트로 떠난 뒤 종적을 감춘 쇼맨 하리 드레셀의 전기를 쓰려는 나(12장), 결혼을 앞두고 장차 아내가 될 여자의 고향인 튀니지에서 몇 달을 보낸 나(13장), 신문 부동산 광고란에 나온 한 아파트 정보를 보고 어린 시절을 보낸 옛집임을 확신하며 그곳을 찾는 나의 이야기(14장)도 각각 이어진다. 그리고 마치 이야기가 처음으로 되돌아간 듯, 나는 딸아이를 품에 안은 채 아내와 함께 택시를 타고 니스 시내를 가로지른다(15장).
‘아직 기억 같은 것이 없는’ 딸과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기억이 존재했던’ 나 사이에는 독일 점령기 프랑스 현실이 놓여 있다. “유독有毒한” 기억으로 대변되며, 자꾸만 뒤로 잡아당기는 무거운 그 시기는 떨쳐내려야 떨쳐낼 수가 없다.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없애버리고픈 기억이고, 프랑스를 떠나 중립지대인 스위스로 떠나오면 잊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럴 수 없는 기억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모디아노는 그 시기에 집요하리만치 천착한다. 2014년 스웨덴 한림원 역시 모디아노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그의 문학을 “기억의 예술”로 명명하고 이를 통해 독일 점령기 프랑스의 현실을 드러냈음을 높이 평가했다.
기억의 뿌리를 내릴 공간 없이 떠도는
우리 시대의 마르셀 프루스트, 파트릭 모디아노
추억을 완성하기 위한 집요한 노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소설에는 호적 등록부와 세례 증명서 등의 서류, 수많은 도시와 길, 인물들의 이름은 물론이고 영화와 책, 라디오 프로그램 제목과 낡은 전화번호부에 실린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등장한다. 객관적인 문서와 고유명사와 숫자를 동원해 과거를 추적하고 잊힌 추억을 복원하는 것은 누군가가 “이 땅 위에 왔다 간 자취의 모든 물적 증거”, 과거의 편린들을 모아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보려는 시도에 다름아니다. 하지만 실제 추억은 부분적으로 사실적이고 정확할지언정, 부분들의 사이는 단절되어 “빈 구멍”으로 존재한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집을 찾아가도, 이제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런 사실은 작품 형식에도 반영되어, 하나의 장은 다음 장과 이어지지 않고 이야기에 대한 기대를 끊임없이 유예한다.
모디아노는 몇 가지 사실에 집중해 자세하게 묘사하고 그 빈틈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힌다. 그러므로 역설적이게도 그의 문학적 상상력은 부재를 중심으로 작동한다 할 수 있다. “우리 시대의 마르셀 프루스트”(페테르 엥글룬드 한림원 사무총장)라는 평가를 받는 모디아노는, 덧붙이자면 대전 후 기억의 뿌리를 내릴 공간인 ‘콩브레’를 가지지 못한 채 떠도는 프루스트인 것이다. 그리고 “그가 되찾는 ‘잃어버린 시간’은 시간의 산산조각난 편린이며 슬픔이 가득 담긴, 그러나 손에 잡히지 않아서 더 아름다운 기억의 어둠”(김화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