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힘
천하무도天下無道의 시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대가 온다
2015년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昏庸無道’다. 혼용무도는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이다. 혼용은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을 일컫고, 무도는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음을 묘사한 『論語』 “天下無道”에서 유래했다. 저자는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시대를 이끄는 정신이 없는 시대이자 도리가 행해지지 않는 무도無道의 시대라고 진단한다. 공자가 살던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시대와 지금 시대가 결코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프랑스의 지성 자크 아탈리는 최근작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은 이미 끔찍하고 지독하지만 앞으로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기적적인 해법을 무작정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이제 각자가 자기 자신을 책임져야 할 때다.”
아무도 답을 알려주지 않고, 사회에 공유되는 시대정신이 부재한 사회, 그리하여 각자 살아남아야만 하는 지금이 곧 ‘천하무도’의 시대다. 이런 혼란함은 민주주의의 위기, 인공지능의 대두, 경제적 성장의 한계로 현실에 반영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저자는 극한 상황에서 인간은 다시 스스로를 성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남고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인문학으로부터 나왔다며, 그 실천적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인문학적으로 버틴다는 건 단순한 기다림 이상을 의미한다. 살아남아 떨쳐 일어나고 스스로가 희망이 되는 걸 뜻한다. 다시 말해 ‘인문학은 생존의 도구’라는 것이다.
생존의 인문학이란 책장 먼지 속에 꽂혀 있는 책을 꺼내는 것이다. 인문학적 시선으로 고전을 다시 읽어내어, 삶의 버팀목이 되고 생존의 무기가 되는 살아 있는 도구로 만든다는 뜻이다. 저자는 꼭 1년 전 출간한 『목수의 인문학』을 통해 공방에서 목수로 일하면서 ‘몸 쓰는 일’에 ‘머리 쓰는 일’을 접목시킨 생활밀착형 인문학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독자들이 스스로 자기 도구를 결정하고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생존의 인문학을 선보인다.
생각과 고전 사용설명서
생존의 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인문학이 생존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인문학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미증유의 시대를 버티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 원리는 아주 간단하지만 동시에 명확하다. 보통 인문학은 곧 문사철이라고 한다. 문학, 역사, 철학을 기본으로 하는 인문학의 범위는 자연과학과의 교집합까지 고려했을 때 매우 넓고 광범위하다. 다시 말해 우리 삶 어디에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뜻이다. ‘일상이 곧 문사철이요, 인문학이다.’ 저자의 생활밀착형 생존의 인문학은 이런 간단한 원리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매일하는 일상적인 표현 그것이 곧 문학이다. 문학은 일종의 예술적인 표현일 뿐이다. 또한 인간은 모두 표현하며 산다. 사소한 일기, 한 장의 사진으로 항상 인간은 기록하며 산다. 이러한 기록이 바로 역사다. 표현하고 기록할 수 있는 힘은 생각에서 나온다. 생각은 바로 철학이다. 근원, 삶, 존재, 정치, 인간 등은 철학이 아니라 철학의 대상이다. 대상에 대한 ‘생각’ 그 자체가 철학이라는 말이다. 결국, 생각하고 표현하고 기록하는 우리의 일상이 곧 인문학이다.
일상 속 생존의 무기를 다듬는 방법은 아주 쉽다. 저자는 그 방법을 구체적인 4개의 단계로 만들어 정리했는데, 그 발상이 여느 인문학자와 다르다. 공방에서 나무를 만지며 터득한 기술이 생각에도 미친 것이다. 저자는 이런 가정을 했다. ‘만약 생각도 가구처럼 직접 짓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도면을 볼 수 있고, 적절한 재료와 도구만 사용할 줄 알면 누구나 완성된 어떤 생각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짓기 위한 ‘생각 도면’과 삶에서 뽑아낸 재료 그리고 그것을 다듬을 도구만 있으면 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삶에서 재료를 찾아내고, 도구를 구하고 생각 도면을 보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버티는 힘』이다.
이 책은 단순한 고전해설서 이상의 독특한 부분이 있다. 책을 읽다보면 고전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그 고전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는 점이다. 생각(혹은 고전) 사용설명서라고 할 수 있는 4단계는 매우 간단하다. (1)마음의 버팀목을 세우고, (2)내가 누구인지를 알며, (3)무엇이 필요한 것인가를 생각한 다음, (4)생각과 생각 사이에 다리를 놓으면 된다. 저자는 충분한 연습을 위해 15권의 고전을 엄선했다. 저자가 15권의 고전을 어떻게 생존 도구로 만들었는지 참고하여, 독자들이 각자 본인만의 인문학 도구를 만들어나가면 천하무도의 시대를 버티는 것을 넘어 스스로가 길이 되고,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목수 인문학자, 임병희
저자는 한양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했다(「판타지소설과 온라인게임의 신화 구조 분석」으로 석사학위 취득). 그 후 중국으로 유학을 가서 7년간 베이징의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예슈셴(?舒憲) 교수를 사사했다. 예슈셴 교수는 동북아시아 신화 전문가로 신화뿐만 아니라 고전과 역사에 정통한 중국 최고의 석학 중 한 명이다. 저자는 예슈셴 교수의 지도로 동북아 신화와 한국 신화의 상관관계를 밝힌 「한국신화역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 학문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영출판사인 중국남방일보 출판사에서 『韓國神話歷史』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촉망받는 인문학자였던 저자가 긴 공부를 마치고 귀국해 향한 곳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강단도, 연구실도 아닌 공방工房이었다. 그는 1년여 공방에서 목공 수업을 받은 후 ‘나무와 늘보’라는 공방에서 가구를 만드는 삶을 선택해 살아가고 있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사람들의 예상과 한참 벗어난 선택을 했을까. 그것은 10여 년간 공부를 하면서 느꼈던 무기력과 무언가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생각뿐인 공부에서 벗어나 몸으로 그것을 버텨보고자 했던 것이다. 애초부터 무엇이 되기 위해 한 공부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회 통념에서 벗어나기도 쉬웠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했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과감히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공방에서 목수로 살면서 저자는 그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었던 살아있는 인문학을 만났다. 조선 정조 때의 문장가 유한준이 남긴 명언을 토대로 유홍준 교수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고 했다. 공부만 하던 저자는 몸을 움직여 공방에서 목수 일을 하고 나니 그때까지 배운 인문학적 지식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일상 속에서 늘 하는 생각이 곧 철학임을 알게 되었고, 사소한 모든 기록들이 나의 역사였고, 삶의 모든 표현이 곧 문학이자 예술로 다가왔다. 어렵게 중국까지 건너가 배우고 돌아온 인문학이 다른 어떤 곳도 아닌 바로 삶과 몸에 녹아 있음을 깨달았다. 문사철文史哲이 오래된 책 속에서 튀어나와 생생한 삶을 이루는 경험이었다. 그는 다시 자신의 길을 되짚어보니, 중국 유학 시절 고전을 읽으며 배운 것들이 지금의 삶을 버티는 힘이 되었음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공부가 있었기에 지금 남들의 시선과 상관없이 오롯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생존의 인문학 추천 고전 15선
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_ 왜 그리고 무엇을 기다리는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일상이 반복될 뿐임을 보여준다. 목적 없이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던지는 일침과 같은 메시지.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_ 이 시대 니체에게서 읽어야 할 정신은 절대 가치에 억눌려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는 인간은 노예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사마천, 『사기』_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절망도 이겨내며 결국 나의 길을 찾는 힘,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지 일깨워주는 책.
루쉰, 『아큐정전』_ 희망을 부정하는, 모든 좌절한 이들을 위한 책. 누구에게나 있는 열등감에서 다시 시작하는 법을 보여준다.
『상서』_ 공포와 불안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나만의 무기를 원한다면 『상서』를 통해 먼저 자아의 능동적 변환을 경험해야 한다.
맹자, 『맹자』_ 시대에 눌리고 당장의 배고픔 때문에 무엇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 것인가, 아니면 나를 믿고 용기로 두려움을 떨치고 나갈 것인가? 올바른 선택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고전 필독서.
양주의 위아주의_ 나를 사랑하고, 내가 가진 것들을 사랑하는 법 그리하여 스스로 존귀해지는 방법을 일깨워준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_ 산다는 게 감옥살이 같다면, 자유로운 세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든 영혼들을 위한 조르바의 외침을 들어보는 것이 좋다.
공자, 『논어』_ 방황하는 것이 사람이다. 삶의 무수한 행보에 뒤따르는 확신과 회의, 그 끝나지 않는 줄다리기에 중심을 찾고 싶을 때 일독할 만한 고전.
플루타르코스, 『영웅전』_ 스스로가 길을 찾지 못할 때는 다른 사람의 길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은 자신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준다.
홉스, 로크, 루소의 사회계약설_ 때로는 리셋이 절실하다. 세팅 값을 바꾸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방법.
장자, 『장자』_ 내가 아는 것보다 더 큰 세상을 상상하려면 장자의 무無를 이해해야 한다. 무를 이해하면 본질이 보일 것이고, 그러면 결국 그것을 초월하게 될 것이다.
마빈 해리스의 문화유물론_ 무엇이든 작동법을 알아야 움직이는 법이다. 마빈 해리스의 문화유물론은 남들과는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_ 예전처럼 살 수 없음을 알게 될 때 사람은 다르게 사는 방법을 찾는다. 그 누구도 아닌 나만의 패러다임을 정립하는 방법.
한비자, 『한비자』_ 천하무도의 시대에 타인이 아니라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 길을 보여주는 최고의 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