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병사와 함께한 여름
미국도서관협회 선정 우수도서
뉴욕 타임스 선정 주목할 책
골든 카이트 상 수상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
사랑과 인정을 갈구하는 소녀의 혹독한 성장기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읽히는 청소년문학의 ‘클래식’
유대계 미국 작가 베티 그린의 1973년 작품 『독일 병사와 함께한 여름』은 1940년대 미국 남부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유대인 소녀와 독일군 전쟁포로가 나눈 아주 특별한 우정에 대한 이야기이자, 진심으로 마음을 이해해주는 이와의 교감을 통해 불행했던 시간을 지나 나 자신으로 살아갈 힘을 깨닫는 소녀에 대한 이야기다. 무엇보다, 마음을 터놓을 변변한 또래 친구 하나 없고 가족들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하는,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끊임없이 사랑과 인정을 갈구하는 외로운 열두 살 소녀의 고통스럽고도 혹독한 성장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미국 아칸소 주는 작가 베티 그린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이곳에서 잡화점을 운영한 부모님과 부모님을 대신해 그녀를 보살펴준 루스라는 이름의 가정부, 마을의 유일한 유대인 가족이라는 점 등 작가의 실제 배경을 설정에 담은 이 책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동안 기독교 전통의 미국 남부에서 유대인으로 고립된 채 살아가야 했던 어린 시절이 그대로 투영된 베티 그린의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 스스로 오랫동안 떨쳐버릴 수 없었던 유년기의 한 사건을 바탕으로 쓰였음을 말한 바 있는 이 책은 오 년이라는 집필 기간과 그후 이 년간 수차례의 출간 거절 끝에, 1973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작가가 되리라는 베티 그린의 오랜 꿈을 실현시켜준 이 데뷔소설은 그해 전미도서상 후보에 올랐고 미국 어린이책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 협회가 수여하는 골든 카이트 상을 수상했으며 미국도서관협회와 뉴욕 타임스의 우수도서로 선정되었고 지금까지 전 세계 22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당시 독일인을 호의적으로 그리는 데 비해 주요 유대인 캐릭터를 악역으로 묘사하고 있어 반유대적이다, 편견의 사례나 잔인한 가정폭력과 비극적인 결말 등이 주요 독자층인 청소년들이 읽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부정적 시각 또한 존재했다. 하지만 주요 언론과 평단은 이 소설의 도덕적 통찰력, 이야기가 일깨우는 진실된 감동을 상찬했으며 대부분의 리뷰가 작품에 호의적이었고, 우려와 달리 유대인 학교에서도 널리 읽히며 홀로코스트 문학의 일부로 인정받았고, 세대와 시대를 초월해 꾸준히 읽히는 청소년소설의 ‘클래식’으로 자리매김했다.
누가 믿겠어요? 유대인 소녀가 독일 병사를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릅쓰다니!
외롭고 고립된 두 사람의 아주 특별한 우정
2차 세계대전중이던 어느 여름, 아칸소의 작은 마을 젠킨스빌 역으로 독일 포로들을 태운 기차가 도착한다. 이들을 지켜보기 위해 나온 인파 사이에는 유대인 소녀 패티 버건도 끼어 있다. 패티는 또래 아이들처럼 외모 가꾸기에는 관심이 없는 대신 책 읽기와 공상하기를 좋아하고 아지트에서 사전의 단어를 외우는 취미를 가진 호기심 많은 소녀다. 또한 패티는 외로운 소녀다. 돈밖에 모르는 괴팍한 아빠는 질문이 많은 패티가 건방지다고 나무라고 귀찮아하며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며 무자비한 폭력까지 행사하고, 아름답지만 속물적인 엄마는 귀엽고 애교 많은 여동생 샤론과 패티를 사사건건 비교하며 무시하기 일쑤다. 패티는 없는 이야기까지 지어내가며 부모님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애써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관심과 냉대와 경멸뿐이다. 집안에서 패티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존재는 흑인 가정부 루스가 유일하다. 그런데 어느 날 부모님이 운영하는 잡화점으로 독인 포로들이 목화밭에서 쓸 밀짚모자를 사러 오고, 가게에서 부모님을 돕고 있던 패티가 그중 통역을 맡은 젊은 독일 병사를 상대하게 된다. 괴팅겐 의대생이었다는 안톤 프리드리히 라이커와 이야기를 나누며 패티는 지적이고 예의바르고 다정하고 재미있는 그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막연한 호감을 품게 된다. 그 순간 패티에게만은 ‘잔인한 나치’나 ‘우리의 적’이자 ‘악마’, 검둥이만큼이나 나쁜 사람이 아닌 그저 친구일 뿐이었다.
유대인이라 여름 성경캠프에 가지 못하고 혼자 외롭게 지내던 패티는 우연히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해 몰래 기차에 오르려는 안톤을 발견하고 소리쳐 부르고, 자기 때문에 기차를 놓친 안톤을 아지트로 데려와 숨겨준다. 독일 U보트 상륙 사건, 나치 공작원 체포 소식과 함께 전시에 스파이 행위를 한 자에게는 반역죄를 적용해 사형에 처한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두려움과 갈등을 느끼면서도 패티는 안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이야기를 나누며 우정을 키워나간다. 패티와 그의 존재를 알게 된 루스까지 위험해지는 걸 원치 않는 안톤은 아지트를 떠난다. 늘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패티에게 그 자체로 아름답고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임을 잊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서. 하지만 안톤이 선물한 반지 때문에 소동이 벌어지고, 얼마 후 FBI가 패티를 찾아오는데……
온갖 편견과 고정관념을 거부하는 소녀의 용기
그리고 ‘나 자신으로 살기’!
소설의 시대적 배경인 2차 세계대전 기간, 유럽 대륙에서는 홀로코스트가 자행되었고 미국에서는 그런 나치 독일에 대한 반발이 극에 달해 애국심 고취와 반역자 처단을 부르짖고 있었다. 그런 시대에 미국으로 호송된 독일인 전쟁포로를 돕는 유대인 소녀라는 아이러니한 운명을 그리는 이 책은 작중인물들을 통해 여러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념과 인종과 종교를 뛰어넘는 우정과 사랑이 가능한가. 법이 정한 대로가 아닌 개인의 양심에 따른 선한 행동은 불가능한가. 악한 지도자가 지배하는 국가의 모든 국민은 나쁜가. 독일군 전쟁포로를 도움으로써 아버지와 민족과 국가를 배신했지만 그러면서도 자유의지로 그 일을 한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유대인 소녀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면서, 외모와 부를 중시하며 종교적이고 인종적인 편견과 전시의 적대적인 이분법으로 가득찬 환경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고정관념 너머 인간을 볼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준다. 전쟁과 히틀러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독일 병사를 통해서는 모든 독일인이 기꺼이 나치가 되어 유대인 박해를 저지르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흑인공민권 이전 시대의 차별에 대해서도 환기시킨다. 젠킨스빌 사람들은 흑인들을 그 노동력을 부리며 버르장머리를 가르쳐야 할 ‘검둥이’로 취급하고 아이들에게 그들과 어울리는 것은 나쁜 짓이라 가르친다. 이런 소외의 현실에서도 흑인 가정부 루스는 자기 존엄을 지켜나가려 애쓰며 안톤과 더불어 패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음을 주고받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와 같은 묵직한 주제들과 함께 이 책이 오늘날까지 꾸준히 읽히는 것은 무엇보다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어린 소녀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보잘것없다고 느끼지만 그럼에도 사랑받고 싶어하고 타인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고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임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구명보트”와도 같은 존재들을 통해 힘겨운 시기를 이겨내고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내면의 용기를 발견하는 외톨이 소녀의 성장기는 지금도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