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모션증후군을 가진 남자
존재의 불안과 상처의 근원을 어루만지는
명민하고 조숙한 소녀 작가의 뭉클한 시선.
16세에 써낸 첫 장편소설 《A씨에 관하여》로 문단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소녀 작가 안현서의 두 번째 장편소설 《민모션증후군을 가진 남자》.
2016년에 18세가 된 저자는 현재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글쓰기는 물론 회화 예술의 영역까지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이번 작품의 표지와 본문은 작가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로 제작되었다. 작가는 투명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지금의 세태에 대해 이렇게 진단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솔직해질 수 없는 일에조차 익숙해졌다고. 외로운 사람들끼리 서로의 마음을 속고 속이며, 몰래 애달파하면서도 끝내 모른 척 살아가고 있다고. 그렇게 상처 입고 망가진 영혼이 구원에 다다르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이 소설은 충격적인 반전과 끝까지 인물에 몰입하게 만드는 면밀한 내면 묘사로 구성되어 있다.
부모의 이혼과 아끼던 고양이의 죽음으로 감정 장애를 겪는 서윤은 별다른 열의 없이 미술대학에 진학했지만, 졸업 후 처음으로 열었던 전시회에서 “그림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혹평을 받는다. 심지어 자신이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조차 확신이 없는 서윤의 앞에 전시회의 마지막 날, 마지막 관객으로 유안이 나타난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유안은 서윤의 그림을 온전히 이해하고, 제목을 붙여줌으로써 작품에 생명을 불어 넣어준다.
더 이상 유안이라는 뮤즈가 없이는 살아갈 자신이 없는 서윤에게, 어느 날 유안은 갑작스런 작별을 고하는데…. 인생이 던지는 지독한 농담과 그 비극에 맞서는 인간형을 소녀 작가의 명민한 시선으로 그려낸 가슴 뭉클한 소설.
* 민모션증후군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심리 현상.
슬플 때 우는 대신 입술을 깨물거나 손으로 입을 막는다면, 당신도 민모션증후군일 확률이 높다.
여기, 울지 않는 한 소년이 당신의 마음을 울린다!
지독한 생의 아이러니 속에서도
끝내 인간의 선한 의지를 회복하는 가슴 먹먹한 사람 이야기
불과 16세의 나이에 펴낸 첫 소설 《A씨에 관하여》로 한국 문학계에 유례없는 충격을 안겼던 소녀 작가 안현서가 두 번째 장편소설을 선보인다. 저자의 첫 번째 장편소설 《A씨에 관하여》가 “여기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라는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후속작에 대한 기대를 한몸에 받은 후로 18개월여의 시간이 흘렀다. 저자는 일찍이 인터뷰를 통해 다음 작품은 지독하게 질긴 연으로 이어져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예고한 바 있다. 이야기의 어느 조각하나도 뺄 것 없는 촘촘하고 영리한 구도는 여전하다. 거기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 부침을 반복하는 미묘한 인간 심리와 현대 사회 문제를 읽어내는 눈까지 깊어져서 돌아왔다. 한국 문학에 충격적인 하나의 사건을 넘어서, 이제 우리는 안현서라는 특출한 젊은 소설가의 존재에 주목해야만 한다.
감정 장애를 앓고 있는 그림 그리는 남자 서윤과 그의 신비로운 뮤즈 유안.
서로에게 구원과도 같았던 만남은 섬뜩한 악연이 되어 돌아온다.
누군가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상대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이 이해해주리라는 믿음 없이는 온전히 욕망을 충족할 수 없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은 때로 예술이라는 형태로 발현되며, 예술가는 예술을 통해 욕망의 추구를 정교화하려는 자들이다. 욕망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데 실패한 그림 그리는 남자, 서윤은 유년 시절의 불운한 과거로 인해 감정 장애를 앓는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보았자 배신당하고 말 거라는 심리적 억압 때문에 자기 표현이 불가능한 서윤은 그림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일에도 실패한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서윤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그루누이를 언급한다. 스스로 아무런 향을 발산하지 못했던 그르누이처럼, 서윤 역시 타인에게 어떤 감정도 표현하지 못하는 민모션증후군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그런 서윤에게 자신의 감정을 읽어내 그림에 제목을 달아주는 유안은 구원과도 같은 존재다.
유안의 고백으로 서윤은 그의 뮤즈 또한 잇따른 불행한 가정사로 인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임을 알게 된다. 사랑 받지 못하는 것보다 사랑할 수 없는 고통이 더 크다는 그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하고, 그 모습을 목격한 서윤은 돌이킬 수 없는 결심을 하게 되는데….
투명한 시선으로 생의 단면을 도려내는 눈물겹고 아름다운 위로
저자는 타인의 온전한 애정을 통해 자기애를 회복하고, 끝내 증오하던 대상마저 용서하기에 이르는 가슴 따뜻한 인물의 여정을 그린다. 사랑에 배반당해 민모션증후군을 앓는 서윤은 유안의 인물화를 포기하지 못한다. 미완성된 유안의 그림은 서윤이 마음의 상흔을 지워가며 덧입히는 지속적인 치유의 과정에 놓여 있다. 예술가로서 서윤이 느끼는 감정과 표현 기법에 대한 묘사가 서윤의 삶의 궤적과 절묘하게 합치되며 묵직한 감동을 전한다. 충격적인 반전을 넘어서 마침내 눈물겨운 구원에 이르는 서사는 독자의 마음을 잔잔하게 울린다.
소설은 형형색색의 씨줄과 날줄로 직조된 다층의 장치를 통해서 자신에 대한 사랑을 회복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문학평론가 방민호가 “순수하다는 것은 근본적인 것, 완전한 것에 가까움을 의미한다. 그것은 어린 것, 미숙한 것으로 설명될 수 없다. 순수하기에 근원에 가닿는 시선을 여기서 발견한다.”라고 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가의 말
당신은 마음을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인가요
사람들은 얘길 하죠.
힘들면 울어도 괜찮아, 라고.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내보이면 곧바로 부담스러워 합니다.
외로운 사람들 사이에서도
우린 서로의 마음을 속고 속이며, 몰래 애달파하면서
끝내 모른 척 살아가고 있습니다.
솔직해지지 못한다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겠지만
우린 이미 솔직하지 못한 것에 익숙해져버렸으니까요.
사회적 문제를 다룰 만큼 연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삶을 알 만큼 많은 책을 읽은 것도 아니지만
이혼과 자살 등 무겁고 진중한 얘기들을
감히 다루어보았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가슴이 먹먹해져 오시는 분들은
틀림없이 마음이 따뜻한 분이실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이 제 책을 읽어주신다는 것은 제겐 무엇보다 큰 행운입니다.
언젠가는 저의 책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과
서로 솔직한 마음을 내보일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려보려 합니다.
- 여름이 오고 있는 길목에서. 안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