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믜리도 괴리도 업시

믜리도 괴리도 업시

저자
성석제
출판사
문학동네
출판일
2016-12-28
등록일
2017-01-13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0
공급사
북큐브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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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스토리텔링 애니멀’성석제 신작 소설집
성석제는 의심할 여지 없는 프로 소설가이고
이야기에 한해서는 맹수에 가깝다.
_노태훈(문학평론가)

“믜리도 괴리도 업시 마자셔 우니노라.”_고려가요 「청산별곡」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
맞아서 우는 자들을 위한 노래

2014년 『투명인간』으로,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숨 돌릴 틈 없는 서사에 담아냈던 이야기꾼 성석제가 신작소설집을 출간하며 돌아왔다. 제목이 묘하다, ‘믜리도 괴리도 업시’.
『믜리도 괴리도 업시』는 고려가요 「청산별곡」에서 인용한 것으로,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라는 뜻이다. 고려시대 때 “믜리도 괴리도 업시 마자셔 우니노라”라고 한탄하며 청산으로 숨어들길 소망했던 어느 가여운 이가 있었다면, 2016년 성석제의 소설 속에는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 그 어떤 대단한 환희나 통렬한 절망도 없이 꾸역꾸역 살아가다가, 어떤 ‘사건’ 혹은 ‘사람’과 맞닥뜨리는 인물들이 있다.
이 책은 2013년 12월부터 2016년까지 성석제가 집필한 여덟 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책이자, 작가가 1996년 첫 단편소설집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출간 당시 제목 『새가 되었네』)를 출간한 지 꼭 20년이 되는 해에 펴내는 새로운 소설집이다. 책의 표제작 「믜리도 괴리도 업시」는 ‘동성애’를 다룬다. 아마 성석제의 애독자라면, 대번에 떠오르는 작품이 있을 것이다. 1996년 이상문학상 추천우수작에 올랐으며 지금까지도 한국 퀴어소설과 성장소설의 캐논(canon)으로 불리는 소설「첫사랑」. 1996년, 한국문학 독자들에게 강렬한 ‘첫사랑’을 각인시켰던 소설가 성석제가 2016년, ‘믜리도 괴리도 업시’ 돌아왔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작가 성석제는 성실한 농부처럼 끊임없이 소설을 써왔다. 문학동네는 성석제 신작 소설집 『믜리도 괴리도 업시』와 더불어 성석제의 초기 단편들을 가려 뽑은 성석제 걸작 단편선집 『첫사랑』을 동시에 출간한다.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하는 그 화려한 입담과 세상만물에 입과 사연을 만들어주는 솜씨는 여전하되, 그의 신작 소설은 동성애, 간첩 조작 사건, 멘토, 스마트폰 중독 등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뜨거운 현실을 끌어안고 더 가까이서 독자들을 매혹한다.

매일 반복되는 혼란과 곤란 속에서 조용히 곪아가던
‘나’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흔들어 깨우는 ‘미친놈들’의 서사

표제작 「믜리도 괴리도 업시」는 제목만큼이나 기묘한 소설이다.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 살아가던 중년의 ‘나’ 앞에 옛 친구가 나타난다. 어린 시절 ‘만인의 똥개’ ‘신데렐라’로 취급받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고 치이던 ‘너’는 내게는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자꾸만 엮이는 존재다. ‘나’는 그런 ‘너’가 거추장스럽지만 어쩐지 ‘너’와의 마지막 끈을 완전히 놓지는 못한다. ‘나’는 은연중에 ‘너’를 무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나’에 대한 ‘너’의 관심과 애정이 싫지 않다.
어느 날, ‘나’는 금발의 동성 애인을 둔 정상급 재불 화가가 되어 돌아온 ‘너’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너’는 화려한 외양과 성공의 표상들로써만이 아니라, ‘나’에게 대놓고 ‘커밍아웃’을 해서 나를 휘청거리게 한다. 고요하고 안온하게 허물어져가던 내 삶에 홀연히 다시 등장해 ‘미친놈’처럼 춤추고 노래하고 사랑하며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이반(異般)’의 삶을 한껏 즐기는 ‘너’. ‘너’와 그 동성애인을 향해 ‘나’는 입을 비죽거리고 비아냥거리다 은근한 질투마저 느끼지만, 그 순간 ‘믜리도 괴리도 업시’ 살아가는 나의 따귀를 후려갈기듯 ‘너’의 일갈이 나를 훅 파고든다.

“너희, 자기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교만한 이성애자들은 꼭 그렇게 묻더라. 언제부터 게이였느냐. 나를 어떻게 생각해온 거냐. 나를 볼 때마다 몰래 흥분한 거 아니냐. 기분 더럽다…… 내 대답은 이래. 나도 눈이 있고 수준이 있거든? 미안하지만 너희들은 내 취향이 아니야.”
_「믜리도 괴리도 업시」 중에서

이 책을 열면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소설 「블랙박스」에도 모래처럼 허물어져가는 일상을 견디다가 돌연 나와는 너무 다른 인물을 만나 전기를 맞는 인물이 있다. 「블랙박스」는 계간 『문학동네』 창간 20주년 기념호에 발표됐을 때부터 ‘미친 소설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폭발하는 에너지로 가득한 작품이다. 언제부턴가 창작의 샘이 말라 도무지 소설을 완성할 수 없게 된 중견 작가인 내 앞에 동명이인인 ‘너’가 나타난다. 내 차에 블랙박스를 설치해준 카센터 직원이었던 ‘너’는 살갑게 다가와 호형호제하는 것은 물론 내가 앓아누운 사이 쓰다 만 소설을 마무리해주기까지 한다. 소설작법을 어디서 배운 적도 없고, 세상에 문명(文名)을 떨쳐보겠다는 거창한 목표도 없이 그저 몸으로 쭉쭉 소설을 써내려가는 동명이인의 ‘너’는 마치 ‘나’의 소설 속에서 튀어나온 인물 같다. 그날 이후 ‘나’는 ‘너’에게 본격적으로 소설 대필을 맡기게 되는데, 이 위험한 거래도 결국 파국을 맞는다.

난 작가라는 것들이 뭐 특별한 줄 알았지. 알고 보니까 별거 아니더구만. 그깟 소설 나부랭이 못 쓰겠네 안 써지네 하면서 살려달라고 남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더니 단물 쪽 빨아먹고 나서는 싸늘하게 배신을 때리네. (…) 이것들 뽕쟁이하고 뭐가 달라. 저 혼자 골방에서 약 빨다가 약발 다 떨어지면 밖으로 벌벌 기어나와가지고는 울고 짜고 훔치고 거짓말하고. 야, 씨발아,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필명으로라도 소설 써가지고 니들 동네 전부 말아먹을 수 있어.
_「블랙박스」 중에서

앞으로 ‘우리’의 공동창작은 어떻게 될 것이며, 그 이전에 ‘너’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작가가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기까지의 자의식과 고뇌와 욕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블랙박스」는 메타소설조차 이야기의 힘으로 돌파하는 작가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강렬한 소설이다.

성석제표 농담과 웃음,
그 속에 깃든 시퍼런 대한민국의 현실

한편, 「먼지의 시간」에서는 성석제표 해학과 웃음을 느낄 수 있다. 대자연 속의 명상가이자 ‘이 시대의 정신적 스승’임을 자처하는 M을 만나러 가는 길에 동행하게 된 ‘나’는 입만 열면 잘난 척 일색에 ‘구세활인염’이라는 만병통치약까지 파는 ‘정신적 스승’이 아니꼽다.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나’와 M은 핑퐁을 하듯 긴장감 넘치는 말씨름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묘한 애증의 감정마저 싹튼다. 이 소설은 멘토링과 명상, 자기계발의 신화를 추앙했다가 이내 손쉽게 짓밟는 세태 속에서 정작 ‘나’의 삶과 주변은 어떠한가를 날카로운 농담에 섞어 되묻는다.
성석제의 최근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들을 소설 속으로 끌어왔다는 점일 것이다. 「매달리다」는 그가 전매특허의 웃음과 농담을 완전히 거두어내고 묵직한 서사로 밀어붙인 작품이다. ‘납북 어부 간첩 사건’으로 불리는 실제 사건을 소설적으로 재구성한 이 소설은 굵은 느티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한 남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집중해서 매달리고” “바다에 매달리고” “생각에 매달리고” “아버지의 강건한 맨몸에 매달리고” “생계에” “침묵에” “사는 데” 매달리는 인물들. 다시 말해 “매달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인물을 보고 있노라면, 이것이 비단 간첩 조작 사건에 휘말린 어느 불운한 남자의 사례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님을 뼈저리게 공감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성석제 소설의 한 축을 차지하는 것은 ‘몰두’와 ‘중독’의 유전자이다. 성석제 소설의 인물들은 무언가에 미치거나 매달리지 않으면 살 수 없다. 「골짜기의 백합」에서는 여동생 ‘선녀’를 위해 자신의 생을 털어 바치는 한 여인을, 「사냥꾼의 지도」는 여행지에서 길을 잘못 접어들며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와 그 세계를 탐험하면서 다른 존재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몰두」에서는 “세상의 모든 이치를 규명하게 해줄” 단 한 권의 궁극의 책 ‘이피터미(Epitome)’를 찾아 떠나는 소년과 그 여정에서 만나는 ‘몰두자들’의 세계가 방대하게 펼쳐진다.

무엇엔가 제대로 미친 사람들에게는 그런 흔해빠진 쓰레기, 공짜를 백안시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부자가 아니고 명성과 이익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자신이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었다. 그들은 인간 뇌 속의 뉴런처럼 스스로의 일생을 인간의 황금기를 담고 기록하는 뉴런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처럼 창조적이거나 창의적인 적이 없었다. 그들을 좋아하고 그들을 만날 수 있었고 만남의 연쇄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뿐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 인류의 신경세포에 미쳤다.
새롭게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알게 되는 것은 책을 접하는 것과 비슷했다. 책을 꺼내들었을 때의 무게와 냄새, 첫 장을 펼 때의 설렘, 페이지가 넘어갈 때의 조바심과 흥분을 사람들에게서 느꼈다. 사람을 만나고 알게 되고 부딪치고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결국 책을 꺼내서 읽고 생각하고 느끼고 책장에 다시 꽂고 기억하는 것과 비슷했다. _「몰두」 중에서

“지금 여기 이 시간 좀처럼 행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저 N분의 1로 살아가고 있는 나와 당신,
그 무수한 N들에게 바치는 송가

이 책의 대미를 이루는 「나는 너다」는 어쩌면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빠져 있는 ‘중독’ 증상일지 모를 ‘스마트폰 중독’에 관한 이야기이다.

넌 잠에서 깬 새벽부터 잠들 때까지 스마트폰을 본다. 아침 먹으면서 보고 점심 먹으면서 보고 간식 먹으면서 보고 저녁 먹고 회식하면서 보고 퇴근하면서도 본다. 너는 보고 또 본다. 스마트폰은 네 시간과 지각과 판단력의 요람이자 무덤이다. _「나는 너다」 중에서

스마트폰 속의 온갖 광고와 영상, SNS의 세계에서 우리는 점점 부스러지고 작아진다. 짧은 분량의 이 소설에서 성석제는 잔인할 정도로 디테일한 자료들을 보여주며, 지금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그리고 그런 우리를 속이고 이용하려드는 한줌의 ‘그들’의 세계는 얼마나 견고한지를 보여준다.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대기업이 무료 검색엔진을 제공하는 건 인류애가 넘쳐서가 아니지. 광고주들이 원하는 수많은 마케팅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해주려는 것. 온라인에 넘치는 돌팔이와 사기꾼, 사이비 종교 지도자, 가짜 전문가들에게 한번 주의를 분산해 업무에 방해를 받았다 다시 집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 (…) 그들은 (…) 남들의 머리 위, ‘수석’에 일단 올라선 뒤로는 그들끼리의 ‘메이저리그’를 형성하고 무법, 탈법, 초법, 비법, 불법을 가리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켜왔다. 마치 자신은 그런 운명을, 유전자를 타고난 듯 당연하게. 연민과 염치의 유전자는 결락된 채. 그런 그들 앞에서 너는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어서 스마트폰을, 스마트폰만을 보고 있는 게 아니냐. _「나는 너다」 중에서

「나는 너다」는 2016년, 지구, 그중에서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바치는 송가이다. 그럼에도 이 세계의 N들이 계속해서 살아가길, 마침내 살아남길 바라는 소설 속 화자의 목소리는 어쩌면 성석제가 소설 너머의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건네고 싶은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실에서, 지금 여기 이 시간 좀처럼 행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저 7,341,896,144명 가운데 1인, N분의 1로 산다는 게 N, 1㎢의 면적 안에 사는 나와 비슷한 508명과 살아간다는 게 N, 누군가를 사랑하고 보살피고 만나고 어울리고 이별하고 다시 만나고 N, 너 스스로를 저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사는 것이 잡은 줄을 탁 놓아버리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귀한 것이다. (…) 부디 오래. 너절하고 거지같은 그들의, 그들끼리의 리그가 무너지고 스러져 바람 속 먼지처럼 흩날리는 것을 보기 위해 더 오래. 아주 오래오래, 살아 ‘영화’를 보려, 깨달음의 드높은 세계로 가는 일은 나중으로 미루고 기대여명 따위 훌쩍 넘어 천년만년 살아남으라.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
N, 너는 나다. 나의 모든 사랑이며 영원한 전부인, N.
N. _「나는 너다」 중에서

이 세계의 N분의 1을 구성하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가.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과 미움이,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것을 찾아 모험하고 몰두하는 일이, 이 지독한 삶 속에서도 우리를 견디게 하고 살게 한다. 성석제의 소설은 가혹한 현실의 문제들을 끌어안고도, 그 속에서도 끝내 살아가고 마침내 사랑하려는 자들을 위한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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