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계승자 2
가니메데의 거인이 돌아왔다!
다시 미궁에 빠진 인류의 기원과 미래
2천5백만 년만에 가니메데의 거인이 돌아왔다
인류 최초의 지적 생명체 거인 종족과의 조우!
지구의 정복자 호모 사피엔스는 월인처럼 폭력으로 자멸할 것인가
게다가 다시 미궁에 빠진 인류 기원의 미스테리!
2천5백만 년 전 태양계에서 사라졌던 거인 종족 가니메데인이 돌아왔다. 인류 최초의 지적 생명체와의 만남, 외계 우주선에서 발사한 물체에 지구 우주선들은 충각함을 보내 맞서는데…. 지구의 정복자 호모 사피엔스와 이미 오래전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온 거인 종족과의 첫 만남은 과연 파국으로 치달을 것인가. 새롭게 밝혀지는 미네르바 생태계 멸종의 숨겨진 진실, 그리고 다시 미궁에 빠진 인류 기원의 미스테리. 전편을 능가하는 거대한 스케일과 압도적 반전, 거인의 전설이 이어진다.
인류의 기원으로 상상하는 인류의 미래
과학자의 마음으로, 인류학자의 눈으로
SF 작가는 필연적으로 작가이자 과학자, 탐험가여야 한다. 그리고 인류학자여야 한다. 직업적인 학자여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새로운 인구 집단과의 최초의 만남이라는, 인류학이 한창 성립되던 시기에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의 우주 버전을 선취해 쓰는 작가로서, SF 작가는 (확장된 의미의) 인류학자일 수밖에 없다. 이 선언에 따른다면 이 책의 저자 제임스 P. 호건은 탁월한 지적 탐험가이자 인류학자로서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데뷔작이자,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별의 계승자》에서 호건은 이미 과학자로서의 능력을 끝까지 보여준 바 있다. 달 탐사 중에 발견된 의문의 시체 하나, 그것을 단서로 삼아 과학자들이 가설을 세우고 토론해 가며 인류 이전의 우주 생명 역사를 새롭게 구성해 가는 과정은 과학자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논쟁 과정과 닮았다. 새로운 발견이 한창 이뤄지는 분야의 학회에 가보면, 크고 작은 연구 성과가 공격적으로 발표되고 거기에 다른 과학자들이 논평을 덧붙이고 질문하는 방식으로 지식이 형성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과정은 호의적일 때도 있지만, 때론 무척 적대적이고 공격적이며 심지어 제3자의 눈에는 무례해 보이기도 한다.
은발 무성한 노과학자의 발표에 티셔츠를 걸친 대학원생이 “제 생각은 다른데요.”라며 덤비는 일쯤은 흔하다. 논리와 증거의 이름으로 엄밀한 과학을 만들고자 모인 이 사람들의 ‘계급장 뗀’ 대화 덕분에 사소한 지식 한 자락이 만들어지는데, 이 지식은 현재 지구 상에서 누구도 가지 못한 미개척의 영역을 한 뼘 밝히는 지식이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과학적 ‘정설’들은, 대중들은 미처 살펴보지 못하는 이런 전문적인 학회에서 이뤄진 숱한 논쟁과 그 결론의 일부가 논문으로 다듬어져서 만들어진다.
호건은 과학자 커뮤니티에서나 관전할 수 있던 이 장면을 과감히 장편 SF에 도입했다. 그냥 흉내만 낸 수준이 아니라 꽤 근사하다. 그가 뛰어난 과학자의 마음을 가졌다고 믿는 이유다. 그뿐만 아니라 인류학자의 눈을 가졌다.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의 생리를 방문자인 연구자의 시선으로 상당히 촘촘히 재구성해 내는데, 이것은 인류학의 연구 방법이기도 하다. 논의에 이용되는 과학 지식과 전개 논리가 상당히 정확한 데다 적절한 맥락에 쓰여 소설은 심지어 수준 높은 과학기사를 읽는 것 같기도 하다. 논쟁으로 구성된 부분의 분량이 상당함에도 한결같이 속도감이 있고 재미있다. 한창 형성되고 있는 지식이나 기술을 그 분야의 대가나 이름난 과학 기자가 한 차례 정리하며 책을 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책들 중 잘 쓰인 책을 읽을 때 받는 것과 비슷한 느낌도 언뜻 든다. 학계에서 논쟁과 토론 과정을 거치며 맞는 반전들이 주는 재미랄까. 그런 걸 저자는 참으로 오롯이 잘 살려냈다.
지구의 정복자, 호모 사피엔스
시리즈의 두 번째 책에서 호건은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전복을 시도했다. 외계 지적 생명체라는 낯선 인구집단과의 만남이 폭력적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점이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약탈로 점철됐다. 경제적, 기술적으로 앞선 문화를 지닌 인구집단이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인구집단이 사는 곳을 역사시대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안타깝게도 상당수는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지역 원주민에게 첫인사를 건넸다. 이것이 제국주의 시대의 철학에 기반했기 때문에 일어난 한시적이고 예외적인 일이라고 믿는다면, 우리가 오래전부터 자연에 행한 파괴적 행적들을 들어 반박할 수 있다. 인류가 어떻게 자연을 파괴하며 자신들에게 이로운 형태로 가공했는지 생각하면, 낯선 존재를 대하는 인류의 첫 번째 자세가 공격적이고 폭력적이지 않다고 믿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현재까지 인류가 만난 가장 가까웠던 지적 존재였던 네안데르탈인과의 첫 만남 역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사이의 짧은 공존은 ‘별의 계승자’ 시리즈에도 큰 영감을 줬을 것이다. 유럽과 시베리아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화석 기록을 통해 우리와 비슷하면서 다른 친척 인류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졌다. 문제는 이들이 약 3만 년 전을 끝으로 지구 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 이 시기는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중동을 거쳐 유라시아 동서로 퍼진 직후다. ‘현생인류는 과연 네안데르탈인과 만나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하는 질문은, 인류학자는 물론 대중의 궁금증을 사로잡았다.
현재 지구 상에는 인간족에 속하는 유인원이 현생인류밖에 없다. 즉 호모 사피엔스라는 단 하나의 대형 포유류가 70억 개체 이상 전 지구에 퍼져 있다. 지구가 맞은 이 초유의 사태 덕분에, 우리는 우리 이외의 다른 지적 존재와 만난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3만~4만 년 전에 일어났을 이 만남에 대해 궁금증을 숨길 수가 없다. 학자들은 역사적 추론을 통해, 초기에 두 인류가 치열하게 싸웠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두 인류 모두 빼어난 사냥 기술이 있었고 도구 사용에 능했다. 네안데르탈인은 빙하기의 추위와 맞설 수 있는 튼튼한 체격이 있었고 두뇌는 현생인류보다 컸다. 짧은 창을 이용한 육탄전에 재능을 발휘했다. 현생인류는 인지능력이 잘 발달해 던지거나 쏘는 무기를 다룰 줄 알았고 부족한 신체 적응력을 문화를 이용해 극복하는 환경 적응력이 뛰어났다. 이 둘 사이의 다툼이 일어났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에 대해, 모두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살아남아 있는 것은 현생인류뿐이니까. 어쨌든 우리가 생존자이자 승리자, 정복자니까.
오늘날 인공지능에 대한 부정적 논의 역시 상당 부분은 이런 역사적 경험에 의한 것이다. 인공지능의 빼어난 성장을 목격한 대중은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을 고백하는 경우가 많다. 인공지능이 직업을 앗아갈 거라는 걱정은 오히려 사소하다. 빼어난 지능을 획득한 인공지능이 인류를 향해 공격을 선언하고 실행에 옮길 거라는 두려움에 비하면 말이다. 우리는 우리보다 지적으로 우월한 존재를 만난 경험이 없고, 이 때문에 많은 작가는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사이의 일 또는 원주민과 공격적 제국주의자 사이의 일을 바탕으로 이 미지의 존재와의 만남을 상상해 왔다. 그리고 마치 우리가 다른 존재에게 했듯이, 이들은 공격적일 거라고 믿어왔다.
친절한 거인, 그리고 인류의 선택
하지만 반전이 있다. 호건이 이미 40여 년 전에 이 소설을 통해 상상했던 인류와 외계종족의 만남처럼, 또한 인간의 지능 이상으로 발전한 인공지능과 인류의 만남처럼, 네안데르탈인과의 현생인류의 만남 역시 결코, 적어도 완전한 의미에서 폭력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최근의 결론이다. 이제 고고학자와 고인류학자들은 두 인간의 만남이 대단히 예외적으로 일어났고, 만남은 무척 탐색적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로의 능력을 자세히 모르는 두 인구 집단 사이의 만남은 그렇게 싱겁게 지나갔을지 모른다. 어쩌면 때로 서로가 다른 존재인지도 모른 채 함께 살았을 수도 있다. 실제로 고게놈학 연구 결과 우리 현생인류의 피 안에도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주장은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요컨대, 인류의 피에는 공격과 파괴, 낯선 존재를 무차별적으로 차별하고 학살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공존을 추구하는 유전자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 피에 남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그 증거다. 이 책에서 거인족 ‘가니메데인’들은 파괴적이고 호전적인 지구 동물의 일종인 인류에게서 다른 방식으로 그 흔적을 발견한다. ‘친절한’ 그들에게 지구인의 친절함은 태생도 아니고 일시적인 변덕일 뿐이었겠지만, 그들은 점점 더 화합으로 나아가는 갱생하는 지적 존재의 그림자를 우리의 자취에서 찾았다. 결국 그들은 떠났고, 우리는 남았다. 이 작품은 물론 픽션이다. 하지만 가없는 친절로 인류를 대한 외계종족 가니메데인과의 우정이나, 인류 자신끼리보다 더 완벽한 소통을 이루어내고 학문적 벗이 되기도 한 인공지능 ‘조락’과의 만남은, 독자들에게 조금은 따뜻한 미래를 상상하게도 한다. 소설을 덮으며, 가니메데인들이 발견해 낸 평화에의 의지를 우리 안에서 키워나가는 일은 결국 독자, 아니 인류 모두의 선택임을 다시 확인한다. 그리고 저자 호건의 말대로 “SF가 그 사실을 상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 역시 분명하다.
?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전문기자, 《인류의 기원》 공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