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여행, 혹은 여행처럼

여행, 혹은 여행처럼

저자
정혜윤
출판사
난다
출판일
2017-10-24
등록일
2017-11-16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0
공급사
북큐브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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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여행지에서 나는 길을 잃어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런데 삶 속에선 길을 잃으면 낙담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차창 밖을 지나가는 여인의 뒷모습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삶 속에선 많은 것에 애써 눈감으려 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외로울 때 해나 달이나 한 점 불빛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외로울까봐 자주 타협을 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쉼 없이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곧잘 지루한 답변만 늘어놓는다.

여행지에서 나는 얼마나 자주 설레고 얼마나 자주 탄성을 지르던가?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기쁨에도 슬픔에도 고통에도 얼마나 자주 무감각하던가?
-「왜 인생을 여행이라 하는가」 중에서


여행, 혹은 여행처럼……
인생이 여행에게 배워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여기 묘한 책이 한 권 있습니다. 제목에 ‘여행’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아마도 여행서인가 하기 쉬우실 텐데요, 이어지는 말이 그럽니다. ‘혹은 여행처럼’이라고. 글쎄요, 저는 그만 그 ‘혹은’이라는 단어 앞에서 일순 골똘해져버립니다. 여행은 무엇이고 또한 여행처럼은 어떤 의미일까. 인생을 비유할 때 가장 흔히 덧대는 말이 여행임을 알고 보니 이내 궁금해졌습니다. 아니 알고 싶어졌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왜 모두 여행자로 불리는지, 인생을 왜 ‘관광’이라 하지 않고 ‘여행’이라 말하는지, 나의 여행과 나의 인생이 나의 삶과 어떤 관계인가 하는 것을요. 자, 그에 앞서 여행과 삶은 또 어떻게, 얼마나 다를까요?

여행지에서 나는 길을 잃어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런데 삶 속에선 길을 잃으면 낙담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차창 밖을 지나가는 여인의 뒷모습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삶 속에선 많은 것에 애써 눈감으려 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외로울 때 해나 달이나 한 점 불빛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외로울까봐 자주 타협을 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쉼 없이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곧잘 지루한 답변만 늘어놓는다.
여행지에서 나는 얼마나 자주 설레고 얼마나 자주 탄성을 지르던가?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기쁨에도 슬픔에도 고통에도 얼마나 자주 무감각하던가?
-p16, 「왜 인생을 여행이라 하는가」 중에서

『여행, 혹은 여행처럼』은 이 시대의 탁월한 북 칼럼니스트이자 감각 있는 에세이스트인 CBS 정혜윤 피디의 에세이집이자 여행을 주제로 한 인터뷰집이기도 합니다. 그간 다양한 분야의 숨어 있는 좋은 책을 많은 독자들에게 소개해온 그녀는 이번에 펴내는 다섯번째 책을 필두로 그만의 예민하고 예리한 시선을 사람들에게로 겨누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처음으로 마주한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지요. 내가 누구인지, 나라는 여행자의 여행이 어떻게 촉발되어 어떤 여정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묻고 답하는 데서부터 나를 알 수 있는 까닭에서였지요. 그렇게 나를 진심으로 들여다보는 과정 후에야 비로소 다른 사람들 속으로 깊이 침잠할 수 있는 유연성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그녀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한 번도 고향을 떠나지 못한, 그러나 모두가 잠든 깊은 밤마다 시라는 가늠할 수 없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한충자·정반헌·이명재 할머니, 해마다 캄보디아로 떠나는 사진작가 임종진, 어느 새벽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온 버마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 소모뚜, 말도 다할 수 없는 인생 여력을 품고 시를 쓰러 서울에 올라온 행동하는 시인 송경동, 나무를 세며 나무의 이력을 배우는 나무 박사 강판권, 우리의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는 진딧물을 보러 여행을 다니는 진딧물 박사 김효중, 지도를 매개로 사람들 속으로 여행하는 지도공(工) 송규봉 박사, 가장 오래된 언어인 라틴어로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여행하는 안재원 교수.

“그리고 어찌어찌하다가 나는 시인이 되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올 때 나는 이미 문학이란 걸 하고 싶었습니다. 문학이 뭔지 시가 뭔지 부끄러울 정도로 몰랐어도 뭘 쓰고 싶긴 했습니다.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은 내 가슴을 치는 것, 나를 울게 하는 것, 내 가슴에 너무나 깊숙이 남아 있는 것. 나에게 시와 삶은 통일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만이 내가 살고 내가 해방되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내가 살면서 그나마 배운 것 하나 이야기해드릴까요? 이렇게 힘들게 사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선 누구도 함부로 좌절해서는 안 되고 함부로 미래와 타인을 재단해서도 안 되고 그러니까 아무것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름 없이 정말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봤습니다.”
-p215,「제7의 인간, 높이 오르다」, 송경동 편 중에서

이들과의 울림 깊은 대화로 말미암아 비로소 우리는 알게 됩니다. 이들이야말로 의심할 나위없이 훌륭한 여행자들이란 것을요. 이들의 공통점은 걷는 데서 오는 과오나 성취를 계산하기에 앞서 그저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가는 데에 있다는 것을요. 이들은 “영감으로 가득 찬 신묘한 말을 하는 현인이 아니라 자신의 손과 발과 눈과 머리를,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결정적으로 자신을 계속 걷게 하는 그 무엇인가를 찾아낸 사람들이었습니다.

저자인 정혜윤은 말합니다. 이들의 이러한 삶의 방식은 놀랍게도 우리가 아는, 누구나 떠나본 사람은 다 경험해본 적 있는 여행과 참 닮아 있더라고. 이쯤에서 우리는 힌트를 얻게 됩니다. 인생이 여행에게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지를.

여행과 사랑에는 공통점이 있지.
끝없이 자신을 비워가면서 새로운 세계를 비춘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는 결국 사랑으로 향합니다. 사랑이 모든 것을 극복한다는 말을 상기해봅니다. 여행이 끝날 때마다 우리는 어떤가요. 조금씩 다른 영혼이 되어 돌아오기를 바라지요. “내 사랑하는 사람은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내 기억도 조금씩 다른 기억이 되고, 나도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고, 할 수만 있다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그런 식으로 세상의 일부가 되”는 과정, 그 사랑. 사랑으로 우리는 여행에서 삶을 배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랑으로 우리는 여행자의 태도로 살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내가 네 영혼이 되고, 네가 내 영혼이 되어가는 그것 참 사랑.

이 책을 읽는 데 어쩌면 조금,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순한 삶의 에피소드들의 나열이라면 울고 웃으며 재미로 넘기겠지만 이 책은 뭐랄까, 사람들의 내력을 좇는 거거든요. 그건 눈으로 읽어야 할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온몸으로 배를 밀 듯 밀어야 해서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하염없이 느릴 때도 있고 또한 호기심에 리듬감을 타고 호흡이 가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책장을 덮고 났을 때 우리는 분명 이 책의 저자처럼 자신과 대면하는 우리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저마다 여행지에서 돌아와 저마다 여행자로 저마다 자신들의 여행을 돌아보게 되는 일…… 여행이 인생에게 말없이 어떤 가르침을 주었듯, 인생이 여행에게 말없이 어떤 배움을 얻었듯, 책이 사람에게 혹은 사람에게 책이 주는 가르침과 배움 또한 예서 느끼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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