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의 심장
『줄리의 심장』은 제2회 자음과모음 신인상 수상작가 김하서의 첫 소설집이다. 「앨리스의 도시」「버드」「유령 버니」「줄리의 심장」「아메리칸 빌리지」「파인애플 도둑」「디스코의 나날」등 총 7편의 단편소설을 담은 이 책은 김하서 작가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각각의 작품들은 다른 지적 성취와 스토리를 보여주면서도 결국 작가가 천착하고 있는 현실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김하서 작가가 2017년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작가임을 알려준다. 그녀는 이미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과 죄의식, 잔인성을 드러내는 데 특이한 개성과 성취’를 보여주면서, ‘서로 어긋나 있는 시간의 차원을 겹쳐 보임으로써 일상을 위협하고 있는 불가해한 힘을 드러내는 데 재능’이 있다는 평을 받았다. 이 작품집에서 작가는 “우리가 느끼는 ‘죄의식’이 어떻게 현실을 왜곡하여 보게 하는가. 마음 깊이 있는 욕망을 표현하지 못했을 때, 그 욕망이 좌절되었을 때, 우리의 의식은 어떻게 현실을 미끄러지며 살게 하는지”에 대해서 보여준다.
이 작품집에서 주인공들은 최선을 다해 사랑했으나 결국 바람난 아내에게 이혼당한 남편(「앨리스의 도시」, 갑자기 찾아온 질병에 아픈 아이를 어찌할 바 모르는 아빠(「버드」), 돈을 벌지 못해 아내로부터 외면당해 외롭고 힘든 일상을 사는 남편(「파인애플 도시」)과 같은 평범한 현대인들이다. 이 시대를 사는 평범한 상처 입은 사람들 말이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욕망의 속도에 따라 사는 사람들의 세계, 그리고 그들에게 빨리빨리 일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계는 어떻게 보일 것인가. 뒤틀리고 낯선 공간으로 보일 것이다. 김하서 작가는 이런 현실을 현실인지 아닌지 고민하게 쓰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현실이 분홍 토끼 가면을 쓴 누군가가 초대한 파티 같기도(「앨리스의 도시」), 그리고 치킨을 뜯어 먹는 이상한 아이가 존재하는 놀이터 같기도(「버드」), 파인애플이 도둑맞은 세상(「파인애플 도둑」) 같기도 할 것이다. 사실 세계를 둘러보면 우리의 세상은 누구에게는 안락하고 따듯한 가정, 또 다른 누구에게는 안정적인 회사, 그리고 즐거운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공간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아무도 말 걸어주지 않는 가정, 그래서 외롭고 불안하고, 누군가에게 준 상처로 인해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런 현실이다. 작가는 그래서 현실을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형태로 그려낸다. 너무 잔인한 사건들이 일어나서 비현실 같지도 하고, 오히려 그게 현실 같아서 잔인한 그런 현실로 안내하는 것이다. 이 책의 작품에서 ‘현실’이란 판타지 속 공간과도 같고, 그 ‘환상’은 그로테스크해서 ‘현실’ 같기도 하다.
나는 질주한다, 불안을 껴안고, 결핍의 세상에서.
왜 나의 현실과 너의 현실은 다른가, 우리 모두 결핍되어 있기 때문인가
우리 모두가 보는 세상이 다르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작품들
그녀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불안으로 인해 질주한다. 그러면서 타인의 결핍에 귀 기울인다. 「유령 버니」에 나오는 빈 아파트로 이사 온 주인공은 자신보다 더 외로워 보이는 버니에게 관심을 가져준다. 그녀는 허물어진 아파트 옆집에서 고래울음 소리 같은 소리를 내면서 운다. 그 울음소리에 주인공은 그녀에게 말을 걸지만 그녀는 텅 빈, 차가운 눈빛만을 보여줄 뿐이다. 건물이 무너진다는 소리에 그가 생각난 것은 다름 아닌 고래 울음소리를 내며 울던 ‘버니’였다. 7년간의 결혼 생활을 끝낸 그가 관심을 가진 다른 결핍으로 가득한 버니였다. 「아메리칸 빌리지」에서 소통할 수 없는 부인 때문에 괴로웠던 외로운 남편은 수족관 안에 갇힌 고래를 풀어주려고 총을 꺼내든다. 결국 다른 듯 보이는 이 단편들의 주인공들은 외로운 영혼을 알아보면서 소통을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사는 인간들의 고독과 외로움은 이 작품에서는 영혼의 떨림을 알아보는 구체적인 징후들로 빛난다. 직장을 관두고 떡볶이 집을 하는 걸로 여겨지는 김대리 떡볶이 집의 사장과 자신의 일을 위해 잘나가는 직장을 때려치운 주인공은 서로를 위로하며 과거를 공유한다.(「파인애플 도둑」) 뱃속 아이의 중절 수술을 막지 못해 상실감에 젖은 남자와 친구의 자살을 막지 못해 괴로운 여고생, 이 둘은 과연 무엇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무엇을 위로받고 싶었을까. 결국 이 둘은 사고로 동료를 잃은 다른 학생들을 만나 자신의 괴로움만을 토로한다. 결국 같은 처지의 누군가도 서로를 이해할 끈은 없는 게 아니냐고 작가가 말하는 듯하다. (「디스코의 나날」)
결핍의 세상, 안정적인 삶 따위는 없는 우리들에게 작가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을까.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같은 것인지, 우리가 만나는 세상의 영혼들은 이 세상에는 없는 나만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불안한 영혼, 흔들리는 영혼, 해소되지 않는 영혼의 갈등 속에서 우리는 그저 현실을 살아내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언제나 기대를 배반하는 결론이 있다는 주인공의 말처럼 이 소설들은 우리에게 희망찬 결론만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저 당신만 괴로운 것이 아니라 나도 괴롭다는 한 가지 이해만 결국 우리들은 같이 살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닌지. 이 작품은 불안한 영혼들에게 답을 주지는 않지만, 가끔 심장이 사라진 개를 만나더라도, 새를 먹는 어린아이를 보더라도, 토끼 탈을 쓴 이상한 여자를 보더라도 그 모든 것은 나의 영혼을 위로해주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것이 비록 환상일 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