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만큼의 눈물로 너를 기다렸다
희진은 사춘기 시절 짝사랑하던 승민에게 성폭행을 당한 트라우마로 남자와 사랑에는 무심해진다. 하지만 법조인 집안의 압력을 견디다 못해 결국 자살해 버린 승민의 삶에 반발하듯 법대에 진학해 판사가 되고, 사법 고시를 준비하면서 크게 도움을 준 선배가 청혼하자 통과의례를 치르듯 결혼해 두 아이를 얻는다. 적당히 예쁜 외모와 판사라는 직업적 어드밴티지, ‘똑똑한 커리어 우먼’이라는 이미지에 남편이 법대 학장이라는 부가적 요인까지 더해져 제1 야당의 스카우트를 받은 그녀는 정치인으로 변모하고 국회의원으로서 당 대변인까지 맡는다. 그러나 고교 시절부터 BFF였던 정미의 제안으로 떠난 휴가 여행에서 재미 교포 2세인 20대의 앤디를 만나고 적도의 바닷가에서 뜨거운 밤들을 보낸 후 삶이 통째로 전복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국화꽃 향기』로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면서 독자들의 가슴에 선명한 화인을 찍은 바 있는 김하인 작가의 신작 『바다만큼의 눈물로 너를 기다렸다』가 자음과모음의 재미있는 이야기책 브랜드 네오픽션을 통해 출간되었다.
머리로만 사는 인생은 무미건조하고
가슴으로만 사는 인생은 파란중첩하고
몸으로만 사는 인생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니까 머리로 살면서 가슴으로 맛을 더하고 몸으로 정리해 가는 것이 보통 사람의 인생이다. 또한 그 세 요소가 얼마큼씩의 비율로 조합되고 어떤 방식으로 쓰이느냐에 따라 인생의 맛이 달라지는데,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맛의 인생이 존재하는 것은 바로 그래서이다.
게다가 인생에는 표준 레시피 같은 것도 없다. 마치 세 가지 원재료만으로 무궁무진한 맛의 요리가 나오는 것처럼, 하늘 아래 무수한 사람들이 존재했고 존재하고 존재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똑같은 맛이 나는 인생은 없는 것이다. 삶의 경이로움은 거기서부터 비롯되고, 우리가 ‘사람 사는 거 다 비슷비슷하지.’라고 말하면서도 끊임없이 타인의 인생에 호기심을 느끼고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런 경이로움에 유혹당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작가가 누군가 타인의 인생으로 만들어 낸 요리이고,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그 누군가의 인생을 맛보는 행위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화꽃 향기』로 백만이 넘는 독자를 배불리 먹였던 김하인 작가는 자기 요리의 가치를 확실하게 입증한 셰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새 요리를 내놓았다. 지금껏 보여 준 적 없는 맛, 낯선 만큼 유혹적인 그 요리가 바로 『바다만큼의 눈물로 너를 기다렸다』이다.
누구의 인생에나 접히는 지점이 있다
어떻게 사느냐와 상관없이 반드시 맞닥뜨리게 되는 지점,
그 지점을 치열하게 겪어 낸 어떤 여자에 관한 이야기
그런 순간이 있다.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 들리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느껴지는 순간, 변화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타고난 바가 다르고 지향하는 방향이 다르니 되밟아 가자면 똑같은 발자취는 찾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이지만, 무릇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인간도 변하기 마련이고, 세상의 우러름을 받는 위인으로 살건 저잣거리의 손가락질을 받는 잡배로 살건 공평하게 찾아오는 것이 변화의 순간이다. 사소한 습관의 시작부터 삶이 뿌리째 흔들리거나 일거에 전복되는 사건까지, 강도와 정도는 다를지언정 누구나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위인이거나 잡배였을 리는 없고 사는 동안 어느 순간 위인이 되거나 잡배가 되게 한 변화가 일어났을 터, 바로 그 지점에 주목할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바다만큼의 눈물로 너를 기다렸다』는 그런 변화의 지점에 이른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몸의 소리에 재갈을 물리고 가슴의 소리는 못 들은 척, 머리의 소리로만 살아온 여자, 희진. 생에 단 한 번 재갈이 풀리고 들려온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그녀가 치러야만 했던 대가와 그녀를 둘러싸고 들끓는 잔인할 만큼 정직한 욕망들에 관한 이야기가, 백만 독자들로부터 인정받았고 그로부터 지나온 세월의 무게만큼 깊이가 더해져 노회한 셰프의 손에서 전혀 새로운 풍미의 요리로 만들어졌다.
한 그릇의 요리를 앞에 두고 이러니저러니 말해 봐야 무슨 소용이랴. 부디 입맛에 맞는 요리를 찾은 독자들께서 맛있게 드시기를 바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