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와 춤을
나이듦에 뒤따르는 소외와 우울과 고독에 맞서며
죽음을 살기 위해 분투하는 노인의 내밀한 자화상
한국 문단의 거목이자 한국 작가들의 스승 한승원의 신작 장편소설 『도깨비와 춤을』은 시간의 불가항력적 흐름에 따라 죽음과 더욱 가까워진 인간이 결국에는 순응하더라도 그 순간까지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아름답게 버티기 위해 분투하는 숭고한 이야기이다. ‘자기 참모습’을 찾는 문학적 여정으로, 50년이 넘도록 치열하게 쓰면서 인생을 성찰해온 여든 노작가의 삶과 문학이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어 더욱 뜻깊다.
한국 문학의 살아 있는 전설,
한승원이 연륜의 에너지로 써내려간
삶과 문학에 대한 자전적 고백이자 문학적 결산
한국 문단의 거목이자 한국 작가들의 스승 한승원의 신작 장편소설 『도깨비와 춤을』이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됐다. 이 소설에는 “나는 살아 있는 한 글을 쓰고, 글을 쓰는 한 살아 있을 것이다”를 화두로 50년이 넘도록 치열하게 쓰면서 인생을 성찰해온 여든 노작가의 삶과 문학이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어 더욱 뜻깊다.
한승원은 『도깨비와 춤을』에 자신의 정체성을 나누어 가진 쌍둥이 분신을 두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똑같이 79세로, 장흥에 사는 프로 작가 한승원과 남해에 사는 아마추어 음유시인 한승원이 그들이다. 한승원은 ‘장흥의 한승원’을 통해 밝힌 것처럼 이 소설이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 “공작새 수컷이 암컷들과 세상을 향해 꼬리와 날개를 활짝 펴서 찬란한 무지갯빛 어린 문양을 과시할 때 치부인 항문도 노출하듯이” 스스로를 결산하고 치부까지 고백하면서 ‘자기 참모습’을 찾는 문학적 여정에 나선다.
이 여정은 아직도 몸속에는 열일곱 소년의 피가 흐르지만 이제 노년에 이른 인간이 ‘노인은 죽음을 피동적으로 기다리는 존재인가, 아니면 죽음을 살기 위해 분투하는 존재인가?’에 답하기 위해 인생의 의미를 통찰하고, 삶과 죽음을 관조하며, 결국에는 죽음을 아름다운 생의 의지와 분투의 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장흥의 소설가 한승원과 그의 삶을 훔치는 남해의 음유시인 한승원,
도깨비가 두 여든 노인의 핏속에서 열일곱 소년의 뜨거운 피를 깨운다
작가 자신의 사회적 분신인 ‘장흥의 한승원’과 이름도 나이도 생일도 같은 ‘남해의 한승원’은 그가 발표한 소설, 시, 에세이, 칼럼 등을 모조리 섭렵하고, 특히 본인도 외우지 못하는 시를 외워 줄줄이 낭송하면서 그 삶의 패턴을 거울처럼 모방한다. 외모와 옷차림과 버릇은 물론 도깨비와 계약 동거를 하는 점,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집에 살면서 그 집을 ‘해산토굴’이라 명명한 점, 집 앞에 삼층 석탑을 세우고 가묘로 삼아 죽음을 가까이 둔 점 등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은꼴이다. 그들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남해의 한승원에게는 아내가 없고, 장흥의 한승원에게는 아내가 있다는 것이다.
‘도깨비’는 두 한승원에게 “광기의 화신”으로, 광기는 곧 “생명력의 또 다른 얼굴”이다. 장흥의 한승원에게는 “자존심, 저항 의식, 보호 본능, 정체성”을, 아내가 먼저 죽어 절망과 고독 속에 홀로 남은 남해의 한승원에게는 “아직 남아 있는 시간”을 일깨우면서 그들의 노화한 혈관에서 열일곱 소년의 뜨거운 피를 각성시킨다. ‘바다’는 “모든 것을 평화롭게 품어서 수많은 해산물로써 육지에 사는 것들을 치유하고 양생하는 화엄의 바다”로, 두 한승원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치유하고 안식하게 해주는 “구원의 원초적 시공” 혹은 “우주적인 자궁”이다. 바다에서 태어난 두 한승원은 그곳으로 돌아갈 때까지 “날마다 해산海山/解産하며” “자유자재의 걸림 없는 산인散人”으로서의 삶을 꿈꾼다. 두 한승원에게 아내는 바다 같은 존재이자 탄생과 죽음을 관장하는 “곡신谷神”으로, 모성성과 여성성을 통해 그들을 거듭나게 해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않고 극복하는 방법은 죽음을 가까이 두고 친밀해져 거침없이 죽음을 사는 것인데, 남해의 한승원은 ‘도깨비’와 ‘바다’와 ‘아내’가 꼭짓점을 이루는 그 토대 중에서 아내를 상실하고 말았다. 아내를 추억하며 되찾으려는 남해 한승원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된다.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춤추는 신화적 상상력의 세계에서
나이듦에 뒤따르는 소외와 우울과 고독에 맞서며
죽음을 살기 위해 분투하는 노인의 내밀한 자화상
작가는 “노인은 건조하게 살다가 막판에 고려장이 되듯 어두운 곳에 유폐됐다가 폐기처분돼야 하고, 다만 죽음을 피동적으로 기다리는 존재여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그 물음에 남해 한승원의 도깨비는 “너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그 시간 동안 작가는 광기 어린 의지로 나이듦에 뒤따르는 소외와 우울과 고독에 맞서며 미완의 삶을 완성하기 위해 지금의 삶을 즐기려 부단히 애쓴다. 자신의 참모습을 아는 것은 육체를 스쳐 지나가는 시간에 휘둘리지 않는 길이기도 하다. 서로를 거울처럼 되비추는 ‘남해의 한승원’과 ‘장흥의 한승원’은 두 사람이지만 둘 다 참모습을 지니고 ‘한승원’으로 수렴된다. 어쩌면 “남해의 한승원이 도깨비일 수 있다”고 작가가 말했지만, 사실 그들의 무의식 세계를 지배하는 ‘도깨비’는 ‘한승원’ 자신이기도 하다. 『도깨비와 춤을』은 시간의 불가항력적 흐름에 따라 죽음과 더욱 가까워진 인간이 결국에는 순응하더라도 그 순간까지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아름답게 버티기 위해 분투하는 숭고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