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만 그 방에
“그래서, 그게 존재합니까?
“저에게는 존재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존재하나요?”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척 합니다.”
“웃긴, 비극적인, 별난, 심오한, 슬픈, 가벼운, 바보 같은,
그리고 분류 불가능한 소설”_〈가디언〉
단 두 권의 책으로 “짧지만 강력한 문장들로 독자를 끌어당기는 작가〈뉴욕타임스〉”, “개인의 목소리를 가장 섬세하게 포착하는 작가〈퍼블리셔스 위클리〉”라는 찬사를 받으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라선 요나스 칼손의 《한 시간만 그 방에》가 푸른숲에서 출간되었다. 《한 시간만 그 방에》는 ‘가능한 빨리 남들이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자 자로 잰 듯한 규칙적인 삶에 매달리는 비에른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방’을 만나 거짓과 진실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는 이야기이다. 비에른이 일하는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 그래서 읽는 내내 모호함 속에서 불안을 느끼게 되는데, 딱 불안한 그만큼 끊임없이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는 미묘한 재미가 있다.
작가 요나스 칼손은 연극 무대와 스크린을 누비는 스웨덴 대표 배우이다. 극작가로서 인정을 받으며 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한 시간만 그 방에》에 담아내며 “스웨덴의 카프카”, “허먼 멜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가”라는 전 세계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이렇게 배우에 대한 평단과 독자들의 선입견을 걷어낸 그의 작품에는 생동감을 불어넣는 대화와 묘사, 인물들의 몸짓, 표정 하나하나가 더욱 선명하게 살아 움직인다. 게다가 소설의 중요한 미덕인 ‘재미’까지 더해져 있다.
“모든 것이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모든 게 세심하게 계획된 것 같아 보였다.
마치 그 방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방을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진실 게임!
55분 근무, 5분 휴식을 철칙으로 삼고 자기 일 말고는 다른 일에 절대 한눈을 팔지 않는 비에른은 동료들과의 불필요한 잡담을 피하며 자신의 우월함을 맹신한다. 이런 비에른의 모습은 동료들에게 사무실의 별난 인간이자 아웃사이더로 인식된다. 어느 날 비에른은 복사용지를 찾아 사무실 곳곳을 헤매다 작은 방을 발견한다. 방 밖에 스위치가 있는 남다른 방. 호기심을 자극하는 묘한 방. 뭔가 특별한 게 있다는 느낌이 드는 방. 우연히 발견한 그 방에서 비에른은 한없이 편안함을 느낀다. 게다가 방 안에 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자신감 넘치고 매력적이라는 점에 커다란 만족감을 느낀다. 방에서 자신감을 얻은 비에른은 점점 더 방을 자주 찾으며 자신에게 몰입한다. 하지만 사무실 동료들은 그의 뒤에서 의심과 불안의 눈빛을 보내는데…….
그 방. 나는 생각했다. 한 시간만 그 방에 가 있어야겠다. 나는 복도로 몰래 빠져나가 커다란 재활용 폐지 수거함을 지나쳐 밖에 붙어 있는 스위치를 켜고 일곱 번째로 그 방의 문을 열었다. _71쪽
비밀의 방이라는 익숙한 소재는 곧 방에서 중요한 사건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예상은 곧 깨어진다. 요나스 칼손은 예상치 못한 전개를 펼치며 사무실이라는 열린 공간과 비밀의 방 사이 그리고 사무실 사람들과 비에른 사이에서 일어나는 긴장감과 갈등을 예리하게 풀어낸다.
“당신은 괴물이야, 그거 알아?”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웃사이더가
순종을 강요하는 세상을 향해 날리는 완벽하고도 침착한 어퍼컷
틈만 나면 딴짓을 하며 쉬려고 하지만 상사가 나타나면 열심히 일하는 척하는 호칸, 잘난 체하며 나서길 좋아하고 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안, 업무와는 관계없는 우스꽝스러운 메모와 엽서들로 책상을 도배한 예르겐, 비에른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한나, 너그러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상사로서 결단력이 부족한 칼…. 비에른의 눈에 비친 동료들의 모습은 하나 같이 실망스러운 모습이다. 비에른은 모두가 친절한 척, 열심히 일하는 척, 서로를 걱정하는 척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동료들을 경멸하고 소통하지 않는다. 대신 방에서 모든 만족을 추구한다.
그런 비에른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지켜보던 동료들은 자신들의 눈에 비친 비에른의 특이한 행동들을 지적하기 시작한다. 비에른이 방이 있다고 가리킨 곳은 동료들이 보기에는 벽 말고는 보이지 않는다. 동료들은 그가 꼼짝도 않은 채 오랜 시간 그 벽 앞에 서 있는 모습이 점점 불편해진다. 급기야 귀 얇은 상사 칼은 회의를 소집해 직원들의 불만을 들으며 비에른과 동료들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비에른은 자신을 향한 동료들의 날선 지적에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에게는 그 방이 중요하다고 끝까지 맞선다.
그 과정에서 비에른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동료들에게 짜증이 나고, 동료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무시하는 비에른 때문에 짜증이 난다. 서로를 불쾌하게 여기는 위태로운 긴장감이 사무실 곳곳을 떠다니고 급기야 사람들은 성난 본성을 드러낸다. “내 말이 옳다. 너는 틀렸다. 당신은 괴물이다.”
요나스 칼손은 우리 주변에 있을법한 인간 유형들을 세밀하게 그려내며 사람을 우둔하게 만드는 순종적인 문화가 개인을 어떻게 끝까지 몰아가는지 보여 준다. 자신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강요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상대를 철저히 소외시키는 세상의 맨얼굴. 이러한 차별적인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비에른의 태도를 보면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겹고 고단한 일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어느새 누구의 말에도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것, 순종과 동조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자신만의 길을 추구하는 일에 집중하는 비에른을 안쓰럽게 생각하며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