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맑스
2018년 5월 5일 맑스 탄생 200주년, 소설로 읽는 칼 맑스의 일대기
맑스*의 일대기를 엥겔스가 맑스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구성한 평전이자 팩션이다. 역사적 사실에 허구성을 더한 것이 팩션이라지만, 이 책은 팩션을 넘어선 ‘한국인’ 작가 손석춘의 기념비적 기록이다. 소설적 허구성마저 역사적 사실에 정제한 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요소로 작용하는 까닭이다.
이 책은 작가가 마치 엥겔스의 영문 편지 원고를 어떤 경로를 통해 입수한 뒤 한국어로 번역한 듯 구성됐다. 작품 표면적으로는 엥겔스가 저자이고 한국어판 번역자가 따로 있는 듯하다. 이는 역사의 진실성을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의 진실성을 담보한다. 물론 이 작품은 사실에 근거해 있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맑스의 생애와 사상은 물론, 그의 대표 저작들의 내용과 위상에 쉽게 이를 수 있다.
작가는 맑스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그의 삶과 사상을 깊이 탐구해왔다. 그리고 기어이 2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맑스를 21세기 한국 독자들 앞에 불러냈다. 19세기 인물을, 그것도 ‘하필’ 맑스를 21세기에 불러내는 까닭은 당연히 ‘유효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로봇 사회주의’가 거론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맑스는 자본주의가 최고조에 달한 순간 다음 체제로의 전환이 혁명적으로 시작된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자본이 횡횡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하에 착취와 피착취의 경계선마저 모호해지고 있다. 이 시점에 작가는 맑스의 생애를 통해 시대와 체제를 초월한 ‘변증법적’ 울림을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 외래어표기법에 따르면 Karl Marx는 ‘카를 마르크스’로 표기해야 하나, 작가의 의견을 존중해 ‘칼 맑스’로 표기했습니다.
절친 엥겔스, 그가 그린 수염 없는 맑스의 ‘생얼’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대리석으로 조각한 듯한 얼굴, 이들이들한 피부, 맑고 밝은 눈동자와 콧날 아래 엷은 콧수염, 183센티미터의 훤칠한 키, 수영과 승마로 다진 군살 없이 날렵한 몸에, 성격이 산뜻하고 베토벤 음악을 좋아하며 취미는 여우 사냥인, 나날이 번창하는 기업을 소유한 부잣집 아들이자 사상가다. 무엇보다 맑스의 후원자이자 ‘절친’이다.
《라인신문》 편집국에서 맑스를 처음 만난 엥겔스는 그의 첫인상을 “텁수룩하고 시커먼 머리칼과 그 못지않은 검은 수염 사이로 까무잡잡한 옆얼굴”을 하고는 “허리도 곧게 펴지 않은 채 마치 두꺼비처럼 의자에 착 달라붙은 듯이 앉아서 편집할 기사를 손질하고” 있다고 말한다. 선망하던 존재를 만났지만 맑스의 경멸 어린 시선에 불쾌감을 느낀 엥겔스는, 맑스의 콧대를 꺾어놓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엥겔스는 애초에 자신과 맑스는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함을 절감한다. 그래서일까 엥겔스가 맑스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그리움과 선망, 그리고 질투의 감정이 엇갈려 있다.
“(맑스 자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본 대학의 법대에 등록했지만 정작 강의는 문과대로 들으러 가서 철학과 문학에 심취했더군. (…) 독서 못지않게 술독에 빠졌다며? (…) 문학 동아리와 함께 가입한 ‘술 동아리’에선 당차게도 회장까지 맡았더군. (…) 자네, 그 시절부터 돈 개념이 없었더군. 불후의 저작 《자본》을 쓴 작가에게 할 소리는 아니겠지만 말이야.”
다소 삐딱한 시선으로 맑스를 그린 듯하지만, 엥겔스의 시선에는 기본적으로 맑스에 대한 사랑이 깔려 있다. 그는 맑스가 술에 취해 소란을 피워 구금되고 불법 무기를 소지한 혐의로 기소된 일에서부터,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말을 만들어낸 ‘사건’과 변증법적 사유가 깊어져 역사 유물론에 이르러 저 유명한 《자본》을 출간하기까지, 장점과 단점 모두 가감 없이 그려내면서도, 친구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또렷하게 보일 뿐이다. 엥겔스가 사업을 했던 20년간 맑스에게 보낸 돈의 액수는 3,000~4,000파운드라고 한다. 오늘날의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45만~60만 달러 수준으로 우리나라 돈으로 5억 4,000만~7억 2,000만 원이다. 맑스를 논하면서 ‘돈’을 거론하는 건 불경스러운 일일까?
무엇보다 불후의 명작 《자본》이 당시 언론의 완전 무관심 속에 아무 반응이 없자, 맑스는 불면증에 시달렸고 부스럼이 재발할 정도로 고통에 시달렸다. 하지만 엥겔스는 누구보다 《자본》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맑스 사후에 엥겔스는 《자본》 2권과 3권을 정리해 출판한다. 엥겔스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맑스가 있었을까? 《자본》은 탄생할 수 있었을까? 맑스는 정말 행운아였던 셈이다.
사실, 맑스의 삶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둘 있다. 귀족 가문 출신으로 평생을 맑스에게 헌신한 ‘예니’와 이름이 겸손이라는 뜻인 가사 노동인 ‘데무트’다. 이 책은 엥겔스를 통해 두 여인의 삶을 보다 직접적이고 객관적으로 서술한다. 작가의 애정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맑스를 비난하는 숱한 풍문을 엥겔스의 입을 통해 진실한 사랑의 장면으로 돌려놓는다.
이 책은 엥겔스의 시선으로 맑스의 삶을 조망하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사상가를 친구로 둔 엥겔스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 우리 자신을 다시 놓아야 한다. 엥겔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작품의 마지막 구절을 빌리자면,
“학습하라, 토론하라, 사랑하라.”
책의 줄거리
엥겔스는 군 복무 시절 ‘청년헤겔학파’를 통해 맑스의 존재를 알게 되고, 〈라인신문〉에서 일하는 맑스를 찾아가 만난다. 엥겔스는 자신의 첫인상을 탐탐치 않게 여긴 맑스를 꼬집으며, 맑스의 고교생 시절부터 대학생 시절 그리고 맑스의 여인 예니에 관해 이야기한다. 맑스가 고교 시절 성적이 중하위권이었다는 사실, 대학 새내기 시절 술과 시에 몰입하다가 이윽고 헤겔에 빠진 일, 그리고 예니와의 약혼과 예니의 절절한 사랑의 이야기들을.
엥겔스는 자본가의 아들로 유복하게 자랐지만, 경건함을 강조하는 기독교 가풍은 그를 반항하게 했다. 엥겔스는 가업을 물려받게 하려는 아버지 탓에 공장 수습 직원으로 일하지만, 오히려 엥겔스는 자신에게서 가업을 뒤엎을 혁명가로서의 모습을 발견한다. 한편 맑스는 대학 교수를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자 언론인의 길을 걷는다. 〈라인신문〉의 편집장으로 이름을 얻을 무렵 예니와 결혼하지만 정부의 탄압으로 신문은 폐간되고 만다.
맑스는 예니와 함께 프랑스로 건너간다. 프랑스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기쁨도 맛보지만, 야심차게 준비한 《독프연감》은 재정 문제 등으로 창간 직후 바로 폐간했고 《전진》 또한 정부의 탄압을 받는다. 결국 맑스는 프랑스에서 추방돼 벨기에로 넘어간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맑스는 엥겔스와 재회하고 예니의 하인이자 운명의 여인인 헬레네 데무트를 만난다. 예니가 둘째를 임신해 친정으로 간 동안 맑스는 엥겔스와 영국을 여행한다. 영국 여행을 통해 맑스는 현실에 대한 사유를 날카롭게 벼리게 된다.
맑스는 브뤼셀에서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와 《독일 이데올로기》 《철학의 빈곤》 등을 쓰며, 여러 단체 활동을 한다. 그리고 엥겔스가 기초한 22개의 문답으로 《공산당선언》을 쓴다. 맑스는 이후에도 생활고와 정치적 압력에 시달리며 예니와 데무트 그리고 엥겔스의 도움으로 자신의 이론을 정립해갔고, 《자본》을 출간하기에 이른다. 영국 런던의 월간지에 실린, 찬사로 가득한 책의 서평을 맑스는 예니에게 읽어주고, 예니는 이틀 뒤 눈을 감는다. 맑스는 《자본》 2권을 집필하는 중이었으나 홀연 북아프리카 여행길에 오른다. 그곳에서 맑스는 삭발을 하고 수염을 깎는다. 예니의 죽음 탓이었을까, 맑스는 여행에서 돌아온 뒤 지병이 악화된다. 그런데 맏딸이 먼저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맑스는 그 충격으로 병이 깊어졌고, 1883년 3월 14일 조용히 숨을 거둔다. 맑스는 예니가 묻힌 하이게이트에 잠든다.
엥겔스는 맑스가 마치지 못한 《자본》 2권을 정리 편집해 출간하고 《자본》 3권을 준비한다. 그사이 데무트 또한 세상을 떠나게 되고, 엥겔스는 그녀를 맑스와 예니 무덤에 함께 묻는다. 엥겔스는 데무트의 방에서 발견한 원고(맑스와 데무트의 내밀한 관계를 기록한 문서)를 정리해, 데무트와 맑스 사이에서 태어난 프레디에게 건넨다. 《자본》 3권을 정리한 엥겔스는 원고를 인쇄업자에게 넘기고, 곧 다가올 죽음을 예감한다.
작가와 7문 7답
Q 책 소개를 간단하게 해주세요.
A 칼 맑스의 삶과 사상을 친구 엥겔스의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했습니다. 기본 콘셉트는 ‘수염 없는 맑스’입니다. 맑스의 사상과 더불어 그의 우정과 사랑을 담고 싶었습니다.
Q 맑스와는 어떤 인연이 있나요?
A 중학1학년 때 도덕책에서 ‘맑스는 가난한 사람과 부자 사이의 불평등을 없애겠다고 선동했다’라는 대목에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반공의 프레임에서 쓴 교과서 글이었지만, 어떻게 불평등을 없애겠다고 선동했는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서 비교적 가까웠던 아현도서관을 찾아 맑스와 관련한 책을 찾아 읽었습니다. 책을 내주던 사서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6년 뒤 철학과에 입학하고 곧바로 대학도서관을 찾아 시드니 훅이 쓴 맑스 책을 찾아 읽으며 본격적으로 그의 사상을 탐색해갔습니다.
Q 왜 지금 시기에 ‘맑스’를 쓰셨나요?
A 영국 공영방송 BBC의 설문조사에서 지난 1천 년(1000~1999) 동안 인류에 영향을 끼친 사상가 1위로 꼽힌 철학자가 맑스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 사회에선 여전히 ‘악마의 얼굴’을 한 듯 여겨집니다. 분단과 독재 체제로 덧칠된 ‘악마의 얼굴’에 묻힌 ‘생얼’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촛불혁명을 이룬 우리 네티즌들 사이에 맑스에 대한 이해가 절실하다고 보았습니다. 물론 맑스의 사상이 오늘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줄 수는 없습니다. 맑스의 사상은 오늘 우리에게 길이 아니라 길라잡이일 따름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맑스에 대한 이해는 너무 낮습니다. 일부 진보 교수와 연구자 사이에서 학문적으로만 논의되고 있을 뿐입니다. 네티즌들이 맑스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Q 전작 〈유령의 사랑〉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A 〈유령의 사랑〉이 데무트의 시각에서 본 맑스라면, 〈디어 맑스〉는 엥겔스의 시각에서 본 맑스로 그의 사상을 더 깊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전작이 맑스의 사랑을 기조에 깔고 있다면, 〈디어 맑스〉는 우정과 현재적 의미가 기조로 흐르고 있습니다.
Q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고 싶었나요?
A 인류에게 노동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노동하는 사람이 얼마나 존엄한가를 촛불을 들었던 동시대인들과 이 책을 통해 나누고 싶습니다.
Q 이 작품을 누가 읽으면 좋을까요?
A 촛불을 든 네티즌들, 특히 대학생과 ‘신입사원’들이 읽으면 좋을 교양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Q 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A 아무런 고려 없이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언론노동에 몸담은 기자들이 이 책을 외면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기자들 스스로 ‘언론계 대선배’인 칼 맑스를 만나보라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 시대에 맑스 사상이 네티즌들에게 소통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