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영원히 빌리의 것

영원히 빌리의 것

저자
강태식
출판사
한겨레출판
출판일
2021-09-01
등록일
2022-01-27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0
공급사
북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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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강태식 작가가 10년 동안 여과해온
이 소설들은 삶의 흰 뼈를 드러낸다.”_정세랑(소설가)

소설가 정세랑, 서유미 추천!
한겨레문학상,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 작가
강태식 데뷔 10년 만에 첫 소설집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제4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하며 고독한 현대인의 자화상을 희극적인 문법으로 날카롭게 그려낸 강태식 작가가 등단 10년 만에 첫 소설집 《영원히 빌리의 것》을 선보인다. 첫 장편 《굿바이 동물원》에서 처절한 경쟁에 밀려난 현대인의 씁쓸함을, 다른 장편 《리의 별》에서 버려진 행성에 홀로 남은 존재의 고독을 독보적인 상상력과 농익은 유쾌함으로 승화해낸 작가는, 이번 첫 소설집에서 인생과 존재에 깊이 천착하면서도 우리 삶의 모습을 어떤 흐트러짐 없이 담백하게 간추리며, 인생의 불확실함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사람들 곁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간다. 또한, 산업혁명부터 28세기까지, 작품들의 다양한 시대적 배경이 한 장면 안에 머물며 인물의 정서에 주목한 작가 특유의 감각적 시선과 만나 “어떤 세부가 의도적으로 배제되고 누락되는 영문학적” 깊이로써 작품의 매력을 더한다.
수록된 일곱 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나이가 지긋하고 인생 경험이 쌓일 대로 쌓인 사람들이다. 예순다섯 살의 어느 날 행성을 상속받게 된 빌리 발렌타인(〈영원히 빌리의 것〉), 12년 전 잃어버린 아이를 찾게 된 술주정뱅이 제리 맥킨(〈우리에게 가능한 순간〉), 50년 전 우주미아가 된 남편이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일흔여섯 살의 캐럴(〈우주비행사의 밤〉), 아이의 생일 전날 밤, 동료의 죽음을 복기하는 척과 메리(〈생일 전야〉), 19세기 러다이트 운동의 전설적 인물인 러드 장군의 일기를 얻은 하버 박사(〈반대편으로 걸어간 사람〉), 전자 제품을 수리하다가 문득 온몸이 마비돼버린 병두(〈회로의 죽음〉), 사라진 사장의 권총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직장인 김 과장(〈탕!〉)까지. 소설 속 초로의 사람들을 가만 들여다보면 그 오래되고 지난한 삶 “안쪽 깊은 구역”에는 불확실한 인생의 시간이 지나가고 남은 흠집 같은 것, 기억, 상실, 소망, 고독, 찬란함, 서글픔 같은 것이 알알이 맺혀 있다.
《영원히 빌리의 것》을 읽으면 “쓸쓸함이나 회한에 젖어 있는 인물의 표정이나 뒷모습”이 그려져 먹먹해지면서도,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나?”라는 고질적인 마음 앓이에 진실한 위로를 받게 되는데, 이는 소설들이 무너져내림을 견뎌내거나 상실의 기억들을 훌훌 털어버리거나, 혹은 황홀한 순간에 기대어 살아가라고 채근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은 그저 자신의 “흰 뼈를 드러내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닥쳐올지 모르는 불가피한 순간을 “지나가는 나날들 그 자체”가 인생일 뿐이라고 말해준다.

“일상은 손때 묻은 동전처럼 단단했다.”

회복을 강요하지 않는 일상과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순간에 관하여

인생의 불확실함과 예기치 못한 사건에 주저앉는 사람들의 모습은 표제작 〈영원히 빌리의 것〉과 〈우리에게 가능한 순간〉에서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먼저, 〈영원히 빌리의 것〉의 주인공 빌리 발렌타인은 28세기 LA 사막, 중고 자동차 매장을 운영하며 자신의 삶이 사무실에 쌓이는 “모래를 쓸어 담다가 끝장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빌리를 찾아온 변호사 팀 추이는, 그를 ‘돌연’ 지구에서 법적으로 행성을 소유한 다섯 명 중 한 명으로 만든다. 이름 모를 먼 친척에게 상속받은 행성 발렌타인-96419d는 시간이 흐르며 빌리의 마음속에서 점점 ‘진짜’가 되어가지만, ‘돌연’ 빌리의 인생을 헤집고 들어온 행성에 또다시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어떤 것은 사라졌지만 오히려 사라졌다는 사실 때문에 더 생생하게 존재하게 된다.”_발문 중에서

한 남자가 주저앉게 되는 순간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우리에게 가능한 순간〉의 제리 맥킨으로 옮겨간다.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로 인해 삶의 모든 관계가 “실처럼 한순간에 끊겨”버리는 것보다 두려운 일이 있을까. 주인공 제리 맥킨은 12년 전 아이를 잃고 이혼 후 동정 술을 얻어먹고 다니는, 딱 인생 종 치기 직전의 모습을 한 늙고 지친 남자다. 그러던 와중, 그는 탐정사무소로부터 아이를 찾았다는 전화를 받는다. 그가 그토록 바랐던 ‘순간’이 바로 ‘내일’ 일어날 거라는 소리였다. 고통의 불가피함은 기를 쓰고 지나가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그 자리를 맴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상실의 고통을 품은 채 오랫동안 현재를 지나왔던 제리 맥킨에게 과연 ‘내일이 올까?’라는 질문 속으로 우리를 이끌고 들어간다.

“아주 특별한 순간이 그곳을 지나쳐 갔고
다시는 그런 순간이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단층처럼 쌓인 상실의 시간들,
찬란하고 무례한 인생에 관한 이야기

불가피한 순간들에 반복해서 무너져내릴 때 우리 안쪽 깊숙한 곳에 쌓인 상흔들은 소설 〈우주비행사의 밤〉과 〈생일 전야〉로 변주되어 우리 앞에 드러난다.
〈우주비행사의 밤〉은 찬란했던 한순간, 인생의 내밀한 구석에 응어리진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 캐럴 테일러는 50년 전 우주미아가 된 우주비행사 마크 어셔의 아내이자 일흔여섯 살의 노인이다. 어느 날, 캐럴은 마크의 우주선이 지구로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50년 전, 캐럴이 그의 동료 다섯 명과 보냈던 하룻밤은 “지금 보고 있는 모든 것을 아주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은 예감”이 들게 하는 순간이었고, 50년의 인생이란 “어떤 사람은 떠나고, 어떤 사람은 돌아오고, 아이를 낳아 키우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지켜”볼 수 있는 오랜 시간이기도 했다. 그 찬란하고 무례한 시간을 통과한 캐럴은 마크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서지만 어쩐지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를 계속해서 돌려보낸다.
누군가 예기치 않은 만남을 시작할 때 누군가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인생의 성질은 이어지는 소설 〈생일 전야〉를 통해 대비된다. 여덟 살 아이의 생일 전날 밤, 척과 메리는 즐거운 이야기로 가득해야 할 날에 불현듯 “빌리가 죽었다”라는 사실을 상기한다. 빌리에 관해 이야기하는 동안 척은 “거실 벽에 난 흠집”을 바라보았고, 이제는 그 흠집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떤 양가적 순간과 순간의 엇갈림 속에 우리는 무엇을 자각하고 살아갈까. 이 소설의 제목 ‘생일 전야’에서 ‘생일’의 설렘과 ‘전야’의 긴장, 고조, 숨죽임은, 인생의 찬란함과 그러므로 우리가 짊어질 수밖에 없는 어떤 상실감과 다름없다.

“척과 메리가 있는 거실은 조용했다. 그것은 아무도 없는 곳이 조용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더 적막했고 더 많은 것을 내포했고…… 척과 메리는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그런 것들이 가만히 지나가기를 말없이 기다렸다.” _본문 중에서

“미안합니다. 우리도 살아야 합니다.”
자본과 권력, 고독과 소외에 대한 통렬한 시선과 해학

“산업혁명을 다른 말로 하면 뭔지 아나? 괴물의 탄생이야.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말일세.”_본문 중에서

수록된 소설 중 초기 작품인 〈반대편으로 걸어간 사람〉과 〈회로의 죽음〉, 〈탕!〉은 발전과 소외, 타성에 젖은 현대인에 대해 작가가 고수해온 통렬한 시선이 짙게 묻어난다.
〈반대편으로 걸어간 사람〉에서는 19세기 초 런던, 러다이트 운동의 지도자로 알려진 네드 러드의 일기장을 통해 지독한 발전이 어떻게 괴물을 탄생시키는가를, 〈회로의 죽음〉에서는 전자 제품 수리기사인 병두가 제품의 회로를 들여다보다가 스스로 마비되어간다는 이야기를 통해 예기치 못한 순간 타성에 빠져드는 현대인의 모습을, 〈탕!〉에서는 사라진 권총을 찾기 위해 벌어지는 상사와 부하 직원의 소동극을 통해 권력에 대한 절대적이고 맹목적 믿음을 비판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결코 훈화적이지 않으면서도 독자에게 일상을 복기할 ‘방아쇠’가 되는데, 이는 소설의 주제의식이 작가의 해학과 만나 웃음과 공감을 끌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의 일, 우리의 일

불확실한 인생의 파도가 한풀 꺾이고 우리에게 남는 것은 결국, 그동안 보지 못한 삶의 다른 측면이 아닐까. 〈영원히 빌리의 것〉에서 빌리 발렌타인에게 남은 것은 여전히 모래뿐일 테지만, 그 모래를 바라보는 마음은 행성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져 영원히 빌리의 것으로 남게 될 것이다. 작가의 소설들은 “삶의 이면을 엿보고 인생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 뒤 우리의 시간은 이전과 다른 리듬으로 흘러가게 된다”(서유미 발문)고 말한다. 그 반사면이 되는 것이 소설의 일이고, 그가 힘껏 써 내려간 이 작품들이 우리에게 가닿는 그 순간, 그것은 곧 영원히 우리의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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