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너벨
“누군가 무리를 떠나 혼자가 된다면, 그건 길을 잃었기 때문일 거야”
억압과 금기에 의해 빗금 쳐진 이름, 애너벨
남성과 여성을 잇는 가느다란 실에 관한 이야기
눈부시게 아름다운, 존재의 내밀한 초상
1968년 캐나다 래브라도 해안의 크로이든 하버에서 한 아이가 태어난다. 그날, 어머니 ‘재신타’와 그녀의 친구 ‘토마시나’는 아이의 몸이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것은 아기의 몸에 남성과 여성의 신체 부위가 함께 있다는 사실. 결국 아이의 아버지인 ‘트레드웨이’에게 이 사실을 간파당해 작은 소요가 지나고, 남성이자 동시에 여성인 자식을 트레드웨이는 ‘아들’로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기 시작한다. ‘웨인 블레이크’는 그렇게 태어났다, 아니 만들어졌다.
웨인이 태어났을 무렵, 토마시나는 사고로 남편 그레이엄과 딸 ‘애너벨’을 한꺼번에 잃는다. 하지만 이 혹독한 상실에 대해 슬퍼하는 대신, 토마시나는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웨인이 살아가는 억압된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토마시나는 웨인이 남자/여자라는 양자택일(either/or)의 삶이 아닌 태어난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실제로 단 둘이 있을 때 그녀는 웨인을 죽은 딸의 이름, 애너벨이라고 부른다. 토마시나의 우려와는 달리, 웨인은 이 새롭고도 친숙한 이름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자신이 얼마나 눈부시고 아름다운 존재인지에 대해, 그러나 그 때문에 가장 내밀한 것이 되고 마는 진실 속으로 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그렇게 웨인에게 애너벨이라는 이름은 억압적인 남성으로서의 삶이 아닌, 숨겨진 여성성을 상징하게 된다.
이렇듯 탄생에서부터 웨인-애너벨은, 그 자체로 남성/여성이라는 도식, 즉 사회적 억압과 금기에 의해 빗금 쳐진 다른 이름들을 폭로한다. ‘남성도 여성도 아니면서, 동시에 남성이기도 하고 여성이기도 한’ 어떤 존재양식이 애너벨을 통해 새롭게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그 탄생과 삶의 부조리함을 통해, 애너벨은 남성/여성의 이분법적 젠더 시스템에 균열을 일으키며, 그 균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견고한 젠더 시스템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해체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많은 이들이 회전 교차로처럼 정신없이 웨인의 주변을 맴돌고, 할퀴고 지나가며, ‘아름답지 않은’ 것들을 만들어 낸다. 그토록 견고한 세계, 남성과 여성으로 이름 붙여지고 나뉜, 적막하고 외로운 세계. 웨인이 앞으로 살아갈 모습은 이 같은 세계를 빗금 치면서, 동시에 자유로워지기 위한 새로운 무늬를 만들어가는 일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