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999년 『일식』으로 제120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이래 일본 현대문학의 기수로 자리매김한 히라노 게이치로의 세번째 소설집 『당신이, 없었다, 당신』. 소설로 만든 삽화, 문자로 그린 그림, 동시 진행 소설 등, 기존의 어떤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형식적 실험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당분간 단편 창작에 전념하기로 하고 5년여 동안 총 25편의 작품을 집필하였는데, 주로 현대사회의 병폐와 개인의 고독을 다루면서 파격적인 형식상의 실험을 시도해왔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들 역시 일반적인 상식을 깨뜨리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본문의 하단에 짤막한 시구를 곁들여 마치 소설의 삽화 같은 효과를 노린 「이윽고 광원이 없는 맑은 난반사의 표면에서……/TSUNAMI를 위한 32점의 그림 없는 삽화」, 등장인물과 대화의 흐름은 같지만 각기 다른 배경과 상황을 지닌 다섯 가지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동시에 진행되는 「어머니의 아들」, 양쪽 페이지에 가득한 글자들을 불규칙하게 잘라내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방의 모습을 그려낸 「여자의 방」, 한 문장으로만 구성된 「거울」 등이 그 예다.
문학 외적인 영역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히라노 게이치로는 올 9월 30일부터 대산문학재단 주최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제1회 한중일 동아시아문학포럼에 일본 측 조직위원으로 방한한다. 10월 1일 ‘고향, 국가, 지역 공동체, 세계-1’ 세션에서 황석영, 천운영, 쑤퉁, 아오야마 신지 등과 함께, ‘문학의 미래-2’ 세션에서 나희덕, 은희경, 히라이데 다카시 등과 함께 발제와 토론에 참가할 예정이다.
저자소개
명문 교토 대학 법학부에 재학중이던 1998년 문예지 『신조』에 투고한 소설 『일식』이 권두소설로 전재되고, 다음해 같은 작품으로 제120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 당시 최연소 수상 기록으로, '미시마 유키오의 재림'이라는 파격적인 평과 함께 예리한 시각과 전위적 기법으로 차세대 일본문학의 기수로 자리매김했다. 아쿠타가와 상의 대학 재학생의 수상은 무라카미 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이후 23년 만의 일이었다.
섬세하고도 날카로운 시각으로 현대사회의 문제점들을 바라보는 신세대 작가인 그는 1998년 스물셋의 나이에 '일식'으로 아쿠타카와상을 수상할 당시 화려한 한문투 문체와 장대한 문학적 스케일로 주목을 받았다. 일본소설하면 흔히 떠올리는 '가벼움'과는 거리가 있는 작품으로 많은 국내 고정팬을 확보하고 있다. 밝은 문장으로 죽음을, 무거운 문체로 연애를 그릴 순 없냐는 그의 말에서 순문학 작가로의 포부와 자부심이 묻어난다.
1975년 6월 22일 아이치 현에서 태어났다. 중학생 시절 '금각사'라는 명작을 남긴 미시마 유키오(1925~1970)에 푹 빠져 지내면서 미시마가 책에서 조금이라도 언급한 작가는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때 접한 작가가 도스토예프스키, 토마스만, 괴테 등이다. 어린 시절의 독서가 오늘날 그를 소설가로 성장하게 한 든든한 자양분이 되었다. 교토 대학 법학부 입학하여 소크라테스에서 자크 데리다에 이르는 정치사상사를 공부했다. 문예창작과의 제도적인 문인교육을 받은 적은 없으며, 정치사상사를 문학 공부와 병행하는 것이 작가적 성찰을 얻는데도 도움이 됐다고 한다.
문학 교육이 아닌 다른 경험으로부터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흥미가 많은 그는 재즈 대담집을 발간하고 건축잡지의 책임편집을 맡는 등 문학 외적인 방면에서도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2008년에는 모델 겸 디자이너인 하루나와 결혼했다. 이제는 등단 10년이 넘는 중견작가로, 1993년과 비교해 70% 정도로 규모가 줄어든 일본 순문학 시장에서 소설의 힘을 믿고 소설을 통해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하며, '공감'을 통해 독자와 만나고자 한다.
해박한 지식과 화려한 의고체 문장으로 중세 유럽의 한 수도사가 겪는 신비한 체험을 그린 『일식』 작품은 '미시마 유키오의 재래(再來)'라는 파격적인 평과 함께 일본 열도를 히라노 열풍에 휩싸이게 하며 일본 내에서 40만 부 이상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99년 메이지 시대를 무대로 젊은 시인의 탐미적인 환상을 그려낸 두번째 소설 『달』을 발표한 이후 매스컴과 문단에서 쏟아지는 주목과 찬사에도 불구하고 3년여 동안 침묵을 지키며 집필을 계속해, 2002년 19세기 중엽의 파리를 배경으로 낭만주의 예술가들의 삶을 그린 대작 『장송』을 완성한다. 같은 해 특유의 섬세하고도 날카로운 시각으로 현대사회의 문제점들을 바라본 산문집 『문명의 우울』을, 2003년에는 이윽고 현대 일본으로 작품의 배경을 옮겨 젊은 남녀의 성을 세심한 심리주의적 기법으로 추구하는 등 실험적인 형식의 단편 네 편을 수록한 『센티멘털』(원제:다카세가와)을 발표한다.
2004년에는 더욱 심화된 의식으로 전쟁, 가족, 죽음, 근대화, 테크놀로지 등 현대사회의 여러 테마를 아홉 편의 단편으로 그려낸 『방울져 떨어지는 시계들의 파문』을, 2006년에는 인터넷 성인 사이트를 소재로 삼아 현대인의 정체성을 파헤친 『얼굴 없는 나체들』을 연달아 발표하여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