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연대기
좀비, 죽음을 허락받지 못한 ‘죽은 자’
언데드의 은밀하고 서늘한 공포가 당신의 숨결을 얼어붙게 한다
로버트 E. 하워드, 잭 런던, 윌리엄 B. 시브룩…
세계적인 작가들이 대가의 숨결로 빚어낸 12편의 좀비 호러 컬렉션
『지옥에서 온 비둘기』 『마법의 섬』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등
낯설지만 매혹적인 좀비 소설의 원형을 만나다
‘좀비’는 오늘날 대중문화의 강력한 아이콘이다. 오랫동안 문화의 변방을 비척거리던 좀비가 뱀파이어, 늑대인간 같은 언데드계의 강자들을 물리치고 문학, 영화, 게임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장악하고 있다.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존재가 불러일으키는 원초적 공포가 두려우면서도 매력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을 허락받지 못한 죽은 자, 변종, 인류의 종말을 가속화할 괴물, 가해자이자 피해자…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는 좀비는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자화상이자 현대의 악몽으로서 은밀하게 우리를 매혹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다양한 호러 컬렉션을 선보여온 책세상의 신간 『좀비 연대기』는 ‘좀비’를 소재로 한 세계적인 작가들의 단편 12편을 엮은 앤솔로지다. 독립된 장르로 자리 잡은 방대한 좀비물이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국내 현실에서, 문학사적으로 좀비의 탄생과 자취를 맛볼 수 있는 클래식들을 발굴했다.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에 쓰여 그 이후의 좀비 소설, 영화 등에 영감을 주고 결정적 영향을 미친 보석 같은 ‘원형’들이다. 윌리엄 B. 시브룩의 『마법의 섬』(1929)은 아이티의 부두교에 기원을 둔 ‘좀비’라는 존재를 서구권에 처음 본격적으로 알린 작품이며, 이네즈 월리스의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1943)는 좀비 영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동명의 영화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코난’ 시리즈로 유명한 호러와 판타지의 거장 로버트 E. 하워드의 『지옥에서 온 비둘기』(1934)는 스티븐 킹으로부터 “미국 최고의 호러 단편 중 하나”로 극찬받은 작품이다.
오늘날 스크린을 누비는 좀비는 흔히 무시무시한 흡혈 괴물로 그려지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초창기 좀비들은 대부분 독자적인 의식 없이 주술사의 지배를 받는 존재다. 그 자체로 섬뜩한 공포의 대상이지만,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고 초점 없는 눈으로 흔들리는, 연약하고 쓸쓸한 존재에 가깝다. 현대 좀비물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낯설고 어쩌면 덜 자극적일 수 있는 이런 좀비의 모습은 오히려 그래서 더 참신하고 매력적인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잔인한 살육자라기보다 주술사에게 조종당하는 가엾은 좀비의 존재는, 사악하면서도 나약한 인간의 이중성과 그로 인해 빚어지는 미묘한 공포와 두려움을 ‘더 은밀하게, 더 서늘하게’ 드러내고 있다. 세계적인 작가들이 대가의 숨결로 빚어낸, 좀비 연대기의 새벽을 여는 초기 작품들을 통해 낯설지만 매혹적인, 섬뜩하고 우아한 클래식 호러의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