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쁜 쪽으로
관성을 거스르며 실패한 세계를 야유하는 소설가,
김사과 7년 만의 소설집
과감한 형식실험을 통해 사회비판적인 목소리를 강렬하게 표출해온 김사과의 두번째 소설집 『더 나쁜 쪽으로』가 출간되었다. 2010년 첫 소설집 『02』를 세상에 내놓으며 그녀가 보여준 극렬한 광기와 폭력성은 한국문단에 낯선 충격을 던진 바 있다. 그후 7년, 김사과가 그리는 세계는 여전히 암담하지만, 격정적으로 내달리던 김사과의 서술은 이제 그 호흡을 고르고 냉철하게 이 세계를 진단하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예민하게 현대사회의 흐름을 읽는 김사과의 날카로운 시선은 그녀가 그간 발표해온 다양한 장르의 글들에서 이미 그 탁월함이 입증된바, 이러한 냉정한 전망 끝에 이 세계를 향한 그녀의 미약한 애정마저 차갑게 식어버린 것일까.
그렇지만 ‘더 나쁜 쪽으로’라는 이 소설집의 제목이 말해주듯, 김사과의 전망은 단순한 절망도 희망도 아니다. 사뮈엘 베케트의 「가장 나쁜 쪽으로」를 최상급 대신 비교급 표현으로 바꾼 이 제목은 이 세계가 완전히 끝장난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질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아직 더 나쁜 쪽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그 비교급의 희망을 김사과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번 소설집의 값진 발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