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이 점잖게 피를 마실 때
끔찍하고 기괴한 이야기를 통해 현실의 본질을 꿰뚫다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과감하게 선보이는 기묘한 이야기들
호러, 미스터리, SF, 판타지를 넘나드는 일곱 개의 세상
눈을 뜨니, 안방 침대에 온몸이 꽁꽁 묶여 있었고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정신이 점점 선명해지는 가운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가 누구든 놀라지 않을 각오로 눈을 부릅 뜨고 있던 찰나,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만다. 눈앞에 서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또 다른 ‘나’였다.
“안녕? 놀라게 해서 미안해. 보시다시피 내가 너고 네가 나야.”
또 다른 나는 나를 협박하여 각종 통장의 비밀번호를 캐려고 했다. 거부하니 돌아오는 것은 전기 충격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저 사람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나 뜬금없이 금융 정보를 캐묻는 걸까?
표제작 「나의 집이 점잖게 피를 마실 때」는 갑작스러운 도플갱어와의 조우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간을 역행하여 서술하며 과거에 있었던 일을 파헤치는 흥미로운 전개를 선보인다. 도플갱어는 어디에서 왔는지, 왜 ‘나’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는지, 각종 정보를 캐내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낱낱이 밝혀지는 과정이 기괴하고 섬뜩하다. 빚에 허덕이면서도 집을 구하려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영끌’이 존재하는 현실에 기시감이 들기도 한다.
박해수 작가는 데뷔작이자 첫 소설집 『나의 집이 점잖게 피를 마실 때』에서 기괴한 이야기들을 과감하게 선보인다. 표제작 「나의 집이 점잖게 피를 마실 때」를 포함하여, 601호에 괴물이 산다는 설정으로 기괴함을 보여주는 「블랙홀 오피스텔 601호」, 끝없는 지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세컨드 헤븐, 천삼백하우스」, 사람의 몸에서 갑자기 자라기 시작한 뼈로 인해 정상인과 비정상인으로 나뉜 세계를 그린 「몰락한 나무들의 거리」, 로봇의 오작동으로 인해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다룬 「범인은 로봇이 분명하다」, 죽음이 사라진 세계를 상상하는 「신의 사자와 사냥꾼」, 코로나 이후 막강한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아비규환이 되어 인간의 폭력성과 이기심에 대해 이야기하는 「한때 홍대라고 불리던 곳에서」까지 총 일곱 편의 디스토피아가 수록되어 있다.
한때는 미친 듯이 영화에 몰입했지만 지금은 텍스트가 영상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고 믿는다. 좋은 문장을 음미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를, 그 뒤에 작가만의 깊은 세계가 숨겨져 있음을 한창 알아가고 있다. 르 클레지오를 비롯한 프랑스 소설과 이토 준지의 공포 만화, 백진스키의 그림을 좋아하는데 거기에 타고난 멜랑콜리가 더해지다 보니 지금과 같은 글을 쓰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재즈와 데스메탈, 카레, 홍차, 울적한 기분으로 산책하기를 사랑한다. 소설을 통해 자신만의 거대하고 괴기한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블랙홀 오피스텔 601호
세컨드 헤븐, 천삼백하우스
나의 집이 점잖게 피를 마실 때
범인은 로봇이 분명하다
몰락한 나무들의 거리
신의 사자와 사냥꾼
한때 홍대라고 불리던 곳에서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