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사막 -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의 남미 여행기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사람,
김영희가
그리고 찍고 쓰다
<나는 가수다>를 탄생시키고, 그 자리를 떠난 김영희 PD
김영희가 찾아간 남미, 그 60일간의 기록!
김영희 PD는 이른바 ‘스타 PD’다. 대중의 인기는 물론 업계의 상을 거의 휩쓸 정도로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그가 스타 PD인 이유에는 단지 인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데만 있지 않다. 그가 만든 예능 프로그램들은 이 시대 대중의 슬픔과 아픔을 예능으로 승화시킨 희극성이 보이며, 그 속에는 재미와 함께 ‘공익성’이 담지되어 있다. 또한 ‘사회적인 현상’을 끌어내어 반향을 얻는 프로그램의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다. 그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감동을 만들어내는 순간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를 넘어 진정한 ‘매체’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 김영희가 책을 썼다. 올해 초 누구보다 현장을 사랑하는 그가 6년 만에 다시 PD로 돌아와 <나는 가수다>를 만들었다. 7명의 진짜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청중평가단의 투표로 순위를 매기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그는 이 책의 본문에서 <나는 가수다>를 만든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이렌의 노래를 들은 뱃사람들은 바다로 뛰어들어 목숨을 잃게 됩니다. 노랫가락이 너무나 아름다워 그 선율을 따라 물에 뛰어드는 것이지요. 세상을 향한 복수의 방법으로 사이렌 자매들이 선택한 것이 노래였거든요. 진짜 노래엔 누구나 홀릴 수밖에 없는 것이죠.
오디세우스는 그런 사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기에 목숨까지 바치는 것일까? 자신을 돛대 기둥에 묶도록 했습니다. 어떤 말을 해도 밧줄을 풀어서는 안 된다고 명령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모든 부하들의 귀를 막도록 한 후, 배를 출발시킵니다. 드디어 사이렌의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하고 애절한 가락은 오디세우스의 애간장을 녹이며 유혹합니다. 황홀한 선율을 따라가고 싶으나 몸이 묶여 말을 듣지 않습니다. “밧줄을 풀어라! 어서!” 포효하는 장군의 모습에 갈등하지만, 절대로 밧줄을 풀지 말라는 명령을 부하들은 지켜냅니다. 점점 사이렌의 노랫소리는 멀어져가고 부하들은 그제야 굵은 밧줄을 풀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갑판에 주저앉아 하늘을 쳐다봅니다. 조금 전의 그 노랫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 … 장군은 목숨을 바쳐도 좋을 만한 … 진짜 노래를 들은 것입니다! 진짜 노래를 들은 세상의 단 한 사람이 된 것이지요. 이런 진짜 노래를 누구에게나 들려줄 수 있다면…
<나는 가수다>를 만든 이유입니다.”
그런데 처음 탈락한 가수 김건모에게 다시 한 번 더 도전할 기회를 주자는 참여 가수들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이런 결정이 프로그램의 공정성과 원칙을 저버린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 모든 사태의 책임을 지고 책임PD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럼에도 <나는 가수다>는 성공작이었다. 대중에게 큰 감동을 준 음악을 선물한 것은 물론이고, 올해 <나는 가수다>를 통해 벌어들일 수익금도 대단한 액수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음원 수익금만도 500억을 넘을 것이라는 추산과 더불어, 프로그램 포맷에 대해 전 세계 판권을 요구하는 굴지의 제작사가 나서고 있는 등 해외에서의 관심도 뜨겁다. 이런 성공을 뒤로 하고 공들여 만든 프로그램을 3회까지 진행하고 손을 떼게 된 김영희는 그 모든 것을 놓고 연수라는 명목으로 홀연히 남미로 떠났다.
혼자 떠난 여행이다. 떠나는 마음 역시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으리라. 60일 동안 29번이나 비행기를 탔다. 얼마나 부지런하게 쉬지 않고 남미 곳곳을 돌아다녔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숫자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서, 철저하게 홀로 다녀왔다. 그래서 그는 “뭐든 괜찮았습니다. 외로워서 좋았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곁에는 남미의 대자연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들고 간 스케치북 한 권에 70여 컷이나 되는 그림을 매일 아이가 숙제를 하듯 그림을 그렸으며, 27만 원짜리 디지털카메라로 남미의 풍광과 사람들을 찍었다. 그리고 글을 썼다.
이 책 《소금사막》은 김영희 PD가 남미를 여행하며 그리고 찍고 쓴 것들을 모아 묶은 것이다. 흔히 떠올리는 ‘여행서’의 형식이 아니다. 그래서 ‘여행서’라고 한정 지을 수 없다. 책에는 여행 루트나 그곳에서 먹어본 음식, 또는 가볼 만한 곳에 대한 친절한 정보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 장소에 대한 설명이나 감상 위주의 글도 아니다. 텅 비어 있는 여백이 오히려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이 책에는 ‘김영희’가 나온다. 남미라는 장소성이 중요하다기보다 그 장소에 있는 인간 ‘김영희’가 보인다. 이 책을 보면, 그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프로그램들이 왜 인기를 얻었는지, <나는 가수다>를 어떤 생각에서 만들었는지를 읽을 수 있다. 김영희가 사람을 대하는 마음, 세상을 보는 눈,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 걸어온 삶에 대한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갈 시간에 대한 기대를 글과 그림과 사진을 통해 볼 수 있다.
김영희는 ‘시간’이라는 화두를 짊어지고 길을 떠났다. 그래서 “어찌 됐든 시간은 흐르고 있고, 인생 허투루 살 일이 아니며, 지금이 전부이고 가장 행복한 시간은 언제나 지금”이라고 말한다. 그는 쉰한 살, 중년의 남성이다. 현장을 떠나서는 의미를 찾기 어려운 PD로서 치열하게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성공’이란 수식어가 붙은 위치에 올라섰다. 그런 그가 머나먼 남미의 공간에서 느낀 ‘시간’이란 무엇일까? 이 책에서 그는 글로 그림으로 사진으로, 그 의미를 풀어내고 있다.
<나는 가수다>의 청중평가단은 연령대별로 구성되어 있다. 가끔씩 카메라가 방청석을 비출 때,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잡힌다. 젊은 층도 눈에 띄지만, 대부분이 중년이다. 신나는 노래가 나올 때 조금은 어색한 몸짓으로, 달뜬 표정으로 일어나 환호하고 엄지를 치켜드는 사람이 잡힌다. 그들 역시 중년이다. 이 프로그램은 아이돌 위주로 돌아가던 음악방송에 소외되어 있던 중장년층을 시청자로 끌어안았다는 데도 그 의미가 클 것이다. 청춘들만 ‘위로’가 필요한 시대는 아닌 것 같다. 인생이 무엇인지, 시간의 속절없음과 그래서 남은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나이의 독자들에게, 김영희가 풀어낸 ‘시간’과 ‘인생’의 의미가 묵직한 느낌으로, 공감의 끄덕임으로 다가갈 것이다. 그보다 어린 독자들에게는 열정적으로 살아낸 선배의 귀중한 조언이 담긴 책이 될 것이다.
김영희는 “요즘 사람들은 너무 지쳐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위로가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이 책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책 속에서 김영희는 다정하고 친근하다. ‘쌀집 아저씨’라는 별명처럼 푸근하다. 뭔가 마구 퍼줄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삶의 정수를 날카롭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잡아내는 모습은 능력 있는 프로듀서답게 날이 서 있다. 그의 글에서, 그림에서 그리고 사진에서, 독자들은 그의 기획력과 창의력, 그리고 감수성까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대목에서는 뭉클하고 어느 대목에 가서는 큭큭 웃음이 나오게 하는 글과 그림과 사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김영희는 이렇게 말한다. “까짓 거! 웃지 못할 일 있나?” 또 이런 말도 한다. “그래, 다시 시작하자!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살아 있다는 것, 감사할 일이다.”
이 말은 독자에게, 그리고 그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와 다짐이 아닐까.
편집자 제작 노트
1. 본문
*구성: 현지에서 그린 스케치북의 그림과 사진을 꼭지 별로 모아 구성했으며, 소제목을 넣어 짧은 에세이의 주제가 드러나게 편집했다.
*인쇄: 스케치북 원고에 담긴 볼펜의 질감과 농도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고농도 먹과 푸른색 잉크 사이언 30%를 섞어 인쇄했으며, 사진 또한 고농도 먹을 이용한 컬러 인쇄를 했다.
*삽지: 그림 가운데 특히 주제성이 뛰어난 것은 별도 색지를 삽지하여 수작업 과정을 거쳐 제본했다. 삽지의 인쇄는 실크스크린 기법을 통해 입체감을 최대한 살렸다.
*제본: 그림이나 사진을 펼침 면으로 전체를 볼 수 있도록 사철 제본을 했다.
2. 표지
*형태: 날개가 없는 이중의 표지 용지를 사용했으며, 속지 위에 일일이 색지를 배접하여 붙였다.
*인쇄: 실크스크린 기법을 이용하여 질감을 최대한 살려 인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