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아내가 있다
아내에게 고백하기 좋은 날,
바로 오늘입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당신…사랑합니다.”
그녀는,
내 마음을 훔쳐간 여자입니다.
한여름 땡볕 같은 시간들을 함께한 여자입니다.
참고 기다림에 수백, 수천 번을 울었을 여자입니다.
못난 나보다 마음이 열 배는 더 깊은 여자입니다.
그런 그녀가 내 말 한마디에 봄꽃처럼 수줍게 웃습니다.
그녀는…… 아내입니다.
오늘, 연애 시절의 그 어떤 키스보다도 뜨겁게
아내를 안아주고 싶습니다.
소소해서 더 특별한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
바로 내 아내, 내 남편의 이야기입니다.
『접시꽃 당신』이후 29년,
대한민국 아내들의 가슴이 다시 먹먹해진다
못난 남편 전윤호 시인의 “소소해서 더 특별한 사랑 고백”
1986년 『접시꽃 당신』이 출간된 후, 29년이 지났다. 오늘을 살아가는 남편과 아내들 가슴에 또 하나의 큰 울림을 가져다줄, 전윤호 시인의 아내를 위한 시산문집이다. ‘세상에 내 편인 오직 한 사람, 마녀 아내에게 바치는 시인 남편의 미련한 고백’이라는 부제에서 보이듯, 저자에게는 자신의 상처와 못난 결점들을 무한히 감싸준, 그래서 그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 아내가 있다. 그동안 출간된 저자의 시집들에서 아내를 위해 쓴 시 53편을 모아 각각의 작품에 남편으로서 가지는 애잔하고 애틋한 마음을 산문으로 덧붙였다.
저자에게는 어린 시절 일찍 엄마와 이별을 한 상처가 있다. 아내를 바라보는 시선에 엄마의 부재에서 오는 근원적인 외로움과 쓸쓸함이 묻어난다. 그의 특별한 사연이기는 하나 절대 우리와 이질적인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일상의 모습에서 예리하게, 그리고 예민하게 잡아낸 아내에 대한 애잔함과 애틋함이 더 깊이 와닿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시인이기 이전에 남편이었다.
함께 살아가는 주변의 부부들을 보면, 제각각 나름의 사연이 한둘은 있으며 ‘우리 부부는 이렇다 저렇다’ 특별한 듯 이야기하지만,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결국 소소한 일상을 켜켜이 쌓아가며 희로애락을 버무리는 과정은 다들 비슷하다. 일상의 현장 곳곳에 아내와 남편의 마음이 묻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활비와 집세 벌이에 빠듯하게 보내는 하루하루, 남편만큼이나 수십 번 사직서를 던지고 싶었을 아내, 지친 하루를 따뜻하게 위로해준 아내의 나비매듭, 생활의 무게를 짊어지는 아내와 남편, 아픈 남편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아내, 자식 문제로 티격태격하는 남편과 아내 등 시인 특유의 예리한 시선으로 잡아 묘사한 시 작품들은 평범한 아내들과 남편들의 큰 공감과 감동을 끌어낸다. 시와 산문에서 저자는 아내의 고된 삶을 투박하지만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있으며,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부끄럽게 내비치고 있다. 온갖 화려한 미사여구로 치장한 연애편지보다 진한 애정이 배어 있어 그 울림이 더 깊다.
“요즘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 ‘사랑은 이별함으로써 완성된다’는 말인데, 고로 아내와 나는 아직 진행 중이고 발전 중인 사랑을 하는 셈이다. 같이 누워 연속극을 보다가 하나는 등 돌리고 자고 하나는 불면의 밤을 지새우는 요즘도 우리는 틀림없는 연인이다.”(‘작가의 말’ 중에서)
“진짜 말 걸기를 시작할 때”
남편과 아내가 마음으로 마주하게 하는 책
부모 자식 간의 소통, 직장 내의 소통, 세대 간의 소통 등 ‘소통’이라는 말이 시대의 키워드가 된 지 오래다. 각자가 놓인 형편과 처한 상황의 차이로 생각이나 감정의 충돌이 생기기도 하지만 매우 원초적인 생물학적 차이로 미묘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나 『냉정과 열정 사이』가 한때 서점가에서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것도 이러한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이해하고픈 갈증 때문이 아니었을까?
남자와 여자, 그 연장선에 남편과 아내가 있다. 남편은 아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내는 남편의 행동을 참을 수 없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는 법칙으로 설명되는 연애교과서나 문학작품의 감성 그 어느 하나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감성과 현실을 함께 가지고 가는 연인이자 친구이자 생활동반자이다. 이렇게 함께하는 시간, 경험, 감정들이 있기에 그 이해의 거리는 단순히 상대의 마음을 보아주는 것만으로도 좁혀질 수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부부들의 모습은 어떠할까. 제 마음 먼저 챙기느라, 경제생활을 꾸려가느라, 대외적인 성공만을 고집하느라 지금 옆에 있는 나의 아내가, 나의 남편이 어떤 마음을 내비치고 있는지 눈여겨보지 못한다. ‘소통’을 한답시고 정작 등은 돌리고서, 자신의 이야기만 풀어내고 자신의 감정만 쏟아내고 있다. 눈을 보지 않으니 이해할 수 없고, 마음을 마주하지 않으니 보듬어줄 수 없다. 남편과 아내는 복잡한 듯 단순한 남자와 여자의 관계다.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다시 둘의 연애는 시작될 수 있다.
이 책이 남편과 아내가 마음으로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것이며, 그리하여 남편은 아내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아내는 남편의 뻣뻣한 손을 잡아주는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시에 소리를 얹는 순간,
감동의 파장이 다시 온몸으로 퍼져간다
책 속에 실린 53편의 시는 마치 부부의 삶을 짧은 단편영화로 하나하나 보는 듯하다. 어제, 오늘 또는 몇 년 전에 보고 느꼈던 장면들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 머릿속에, 가슴속에 영화가 펼쳐질 수 있는 것이다. 저자의 작품들을 통해 무심히 지나쳤거나 잠시 잊고 지냈던 아내와 남편의 마음들을 재발견한다. 특히 ‘시’는 참으로 특별하여 낭송을 통해 소리로 되새김질하면 눈으로 느꼈던 감동 이상의 전율이 온몸에 퍼진다.
‘역전으로 가는 거리’, ‘아라리 한 소절_ 뗏목꾼’ 같은 시들은 특히 한 편의 드라마다. 눈을 감고 목소리로 감상을 하노라면 아내들의 그 뜨거운 아픔이 더욱 깊어지면서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이다. 이 책을 선물하면서 아내에게, 남편에게 서로 읽어준다면 더 진한 감동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스토리와 감정들을 줄줄이 쏟아내는 그림의 힘
아내로 남편으로 많은 시간들을 함께하다보면 밤을 지새워도 풀어내기 힘든 수많은 이야기와 극적인 사연들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전윤호 시인은 이를 결코 과장됨 없이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 와중에 미세한 떨림과 깊은 진심을 놓치지 않는다. 책 속의 그림 또한 그 글을 닮았다. 흑백의 연필화가 그 느낌을 극대화시켜준다. 잔잔하면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그 느낌이 바로 부부의 모습이 아닐까. 두세 가지로 절제하여 들어간 색에서는 부부 사이의 설렘과 갈등을 느껴진다.
따뜻하기도, 쓸쓸하기도, 설레기도, 뜨겁기도, 차분해지기도 하는 다양한 감정들을 절묘하게 보여주는 그림들은 보는 사람에 따라, 보는 남편과 아내의 심정에 따라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듯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