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문장들
시가 돌아왔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시인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는 삶과 죽음, 그 사이에 선 인간을 다룬 신화이기도 하다. 서구 문명의 원천으로 불리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역시 신과 인간의 이야기를 담은 서사시다. 또한 『시경』은 중국 최초의 시가집으로 훗날 ‘경전’으로 숭상되면서 ‘경’經이라는 말이 붙었지만, 본래는 『시』로 불렸다. 『시경』에는 주나라 시기부터 춘추 시대까지 당시 백성의 여러 감정을 담은 노래부터 왕실의 조상과 역사를 찬송하는 노래까지 다양하게 실려 있다.
시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는 원초적인 도구이자 사상과 역사를 전하는 그릇으로서 지금까지 다양한 시험과 변화를 거쳐 왔다. 모든 문학 장르의 원형인 시는 무엇이라고 정의하기 이전에 인간의 본능에 내재된 무엇이 아닐까? 슬프게도, 그렇게 가깝지만 정의 내리기 어려운 것인 만큼, 시는 아주 실험적인 내용이나 난해한 형식 혹은 지나치게 학술적인 접근으로 독자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산문과 이야기가 주는 구체적인 서술의 시대에 이르러 시는 바야흐로 독자와는 다른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시의 시대는 끝난 것처럼 보였다.
최근에는 이러한 양상이 다소 바뀌었다. 트위터의 140자 제한이나 휴대전화의 문자 등 짧고 경제적이며 효율적인 언어 구사를 추구하기 때문일까. 한동안 보이지 않던 시구가 여기저기에서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다. 통속적이라 한들 지하철의 스크린도어에 걸린 시를 읽기도 하고, SNS에 짧게 올라온 시나 하이쿠에 무릎을 치기도 한다. 예전처럼 시집 한 권이 높은 부수를 기록하는 일은 흔치 않지만 여전히 어느 시인의 어떤 시구는 시대의 물결을 타고 사람들에게 회자된다. 시의 시대가 다시 온 것일까?
시를 왜 읽느냐 묻는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집을 쥐고 작정하고 앉아 시를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시 읽기에는 여유가 필요하다. 읽기 전과 읽은 후. 시가 길건 짧건, 시를 읽으려고 마음을 먹고 숨을 쉬고 시를 읽고 덮고 음미하고, 마음을 결정하는 시간. 압축되고 비약하는 시의 여백 사이를 내 것으로 만들기까지 소요되는 시간.
『시의 문장들』의 저자 김이경은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실패한 적도 없고 부족도 모르는 사람은 시를 읽을 필요가 없다. 아니 읽어도 아무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백석이 그랬듯,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고 믿는 상처 입은 영혼에게는 시가 무엇보다 좋은 벗이 된다. 시는 결핍이고 상처이고 눈물이기에.”
사춘기 시절부터 오랜 세월 시를 읽었던 저자는 알지도 못하면서 시를 읽으며, 그렇게 그 속을 헤아리려고 하다가 자기 자신을 헤아리게 되고, 또 그렇게 위로를 받으며 계속 시를 읽었다고 고백한다. 시 속의 여백에 자신을 비추고 자기 방식의 이해를 담고, 그렇게 위로를 받으며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시 읽기일까?
“시는 말수가 적다. …… 처음 만난 사람이 말이 없으면 불편하듯이 시도 그래서 서먹하고 친해지기 힘들다. 수수께끼와 비밀이 많은 시를 이해하려면 궁리를 해야 하는데 그게 성가실 때도 있다.
그런데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처럼 시도 그렇다. 안면을 트고 자주 만나면 친해지고 좋아진다. 물론 그러려면 너무 비밀이 많고 어려운 시보다 수다스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과묵하지도 않은 친절한 시부터 읽어 가는 게 좋다. 그래도 어렵고 낯설게 느껴진다고? 하지만 모든 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명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절친한 친구라고 해서 그 속을 다 알 수는 없듯이 시도 그냥 느낌으로 읽고 좋아하는 게 먼저다.”
시를 읽는 법
문득문득 들려오는 시 한 구절에 마음이 설레지만 어떻게 시를 읽을지 모르는 이들에게 저자 김이경은 이 책에서 다른 방법을 보여 준다. 그 한 구절에 비친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이 책 『시의 문장들』에는 저자가 시 전편에서 받은 인상보다 시의 어느 한 구절에서 받은 감정이 편안하게 적혀 있다. 그 글은 때로 내 마음을 달래 주기도 하고, 때로 고개를 갸웃하게 하기도 하고, 때로 울컥 눈물을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불러일으킨 시를 모두 읽고 싶게 만든다.
어떻게 시를 읽을까, 혹은 시로 다가드는 마음이 어떤 것일까 궁금한 독자에게 저자는 (시의) “그 문장이 있어 삶은 잠시 빛난다. 반딧불 같은 그 빛이, 스포트라이트 한 번 받은 적 없는 어둑한 인생을 살 만하게 만든다”라고 고즈넉이 읊조린다.
저자는 자신이 시를 읽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자신이 전한 시 한 줄이 독자들에게 “하나의 큰 세계로 이르는 길목이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한다. 독자들은 저자가 시 읽기를 통해 드러낸 개인의 이야기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감정과 이성으로 변하는 순간을 목도하며 이 보편의 감정과 이성이 오롯이 자신의 이야기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