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구를 베꼈을까?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달의 책 (2015년 4월) ***
이 세상에 완전한 창작이란 없다!
“창작은 기득권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사라지는 것이며,
정해진 수명 같은 것을 지니고 있다.” - 모리스 메를로퐁티
전시회에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 그림 그 그림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이 그림 보니까 그 그림 생각나는데….” 물론 이 말을 하는 사람은 혹시라도 웃음거리가 될까 봐 대개는 작게 얼버무리듯 말한다.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는 거장들의 작품을 비교하는 얘기를 큰소리로 늘어놓기가 어렵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림과 그림 사이에는 실제로 그 같은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가령 미켈란젤로는 젊은 시절 데생을 그릴 때 지오토의 벽화를 본보기로 삼았으며, 렘브란트는 제자들을 가르칠 때 다른 작품을 베껴 그리는 작업을 그림 공부의 중요한 기초로 놓았다. 따라서 작품들 사이의 유사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그 작품들을 모욕하는 행위는 아닐 것이다. 천재적인 인물이 과거 작품에서 힌트를 얻었음을 인정하기가 때로는 힘들긴 하지만 말이다.
누가 누구를 베꼈을까? 이는 기존 관념을 흔들어놓는 동시에 모든 가식을 벗어던지게 만드는 질문이다. 주제나 기법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작품을 놓고 독창성을 논할 수 있을까? 다른 작품과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이 가능할까? 이러한 의문에 대해 이 책의 저자 카롤린 라로슈는 박식하면서도 감성적이고 유머까지 겸비한 분석을 통해 답을 제시한다. 라로슈의 목적은 미술계에 존재하는 모사 행위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른 작품에서 영감을 얻고 모방하는 식의 작업을 비난하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라로슈는 수백 점의 작품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 같은 상관관계가 수십 년 혹은 수 세기를 사이에 둔 작품들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들 간의 상관관계를 세 작품씩 묶어 알아보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미술사의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독창성의 대명사 피카소가 실은 수많은 선대 작가들을 모방하고 재창조 하였다는 사실이나 고흐가 밀레의 작품들을 모사하려 애썼다는 사실 등을 비롯하여 최초의 자화상은 어느 화가로부터 시작되었는지, ‘누워 있는 나체의 여인’은 회화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미술사의 아이콘인 ‘모나리자’가 왜 풍자의 대상이 되었는지 등 흥미진진하면서 깊이 있는 미술사의 이야기들이 200여 점의 화보와 함께 소개되고 있다.
누가 누구를 베꼈을까? 어떻게 보면 모두가 베끼고 베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카롤린 라로슈의 표현대로 이 지속적인 ‘재해석’은 그 자체로 귀중하다.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면서 창작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생각할수록 분명해지는 것은 내가 밀레의 작품들을 모사하려고 애쓰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야. 이것은 단순히 베껴 그리는 작업이 아니야. 그보다는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가까워. 흑백의 명암에서 느껴지는 인상을 색채의 언어로 풀어내는 거지.” – 빈센트 반 고흐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