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첫 번째 태양, 스페인
현지 한국인이 보내온 낯설고도 묘하게 흥미로운 스페인 뒷이야기
여행 책만으로는 알 수 없는 태양의 반도, 그 숨은 본모습
모스크와 대성당이 나란히 자리한 곳
역사와 이야기와 전설이 뒤섞여 있는 칵테일 같은 스페인사
대항해시대를 연 것을 비롯해서 유럽 역사, 나아가 세계사에서 빠질 수 없는 한 축을 담당했던 스페인은 그간 우리에게 그저 머나먼 유라시아 대륙 서쪽 끝의 나라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나마 스페인을 소개한 책들도 가우디와 같은 건축에 관한 이야기나 여행 서적이 주를 이루고 스페인의 역사와 전설을 다룬 책은 드문 편이다. 이 책은 단지 스페인이 좋아서 그곳에서 살기 시작한 한국인이 스페인 세비야대학 역사학부의 현지 친구를 만나 함께 역사적 유적지나 기념비적 장소 등을 방문하여 그곳에 얽힌 역사와 전설, 야사와 같은 뒷이야기를 함께 버무려 쓴 책이다. 서로 멀리 떨어진 유라시아 대륙의 두 끝, 이베리아 반도와 한반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이 책에는 한국인이 바라본 스페인과 스페인 사람이 바라본 또 하나의 스페인이 동시에 담겨 있다. 저자는 이를 통해 스페인 사람조차 몰랐던, 한국인의 눈을 통해서 새롭게 조명된 스페인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스페인은 우리와 달리 여러 민족이 칵테일처럼 섞이면서 성장해 온 나라이다. 따라서 스페인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그 땅을 거쳐 간 페니키아,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 게르만족, 무슬림의 역사를 안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모스크와 대성당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모습은 이러한 스페인의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운 역사를 잘 보여 주는 상징물이다. 또한 스페인은 대항해 시대를 열고, 역사상 처음으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만든 국가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약 4억 5천 만 명이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중국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숫자이며 언어가 사용되는 지역의 범위를 따져서는 사실상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언어가 바로 스페인어이다.
스페인의 역사를 살펴보면 유럽의 여는 국가 못지않게 역동적이면서도 신비롭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페인의 세비야 사람들은 헤라클레스와 자신의 지역이 연관이 있다고 믿는다. 헤라클레스의 열두 가지 과업 중 열 번째 과업은 에리테이아 섬에서 게리온의 황소 떼를 몰고 오는 것이었는데 여기서 세상의 끝에 있다고 믿어지던 에리테이아 섬이 바로 오늘날의 세비야 지방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스페인에서는 카람볼로 지역에서 기원전의 고대 보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스페인 지역에서 재무관으로 근무하던 카이사르와 얽힌 전설도 남아 있다. 카이사르는 성벽이 적에게 침범당하지 않고 영원히 굳건하길 바라며 마카레나 성벽 밑에 자신의 애인에게서 낳은 쌍둥이 중 한 명을 죽여서 묻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서고트 왕국의 최후와 관련된 금지된 방과 횃불을 입에 문 독수리에 관한 전설, 스페인 세비야의 상징인 NO&DO에 얽힌 이야기 등이 흥미롭게 소개된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기원전의 카람볼로 왕국이나 이베리아 반도에서 시작되었던 카르타고와 로마의 제2차 포에니 전쟁, 서고트 왕국의 성립과 이슬람 세력의 침입과 같은 역사적 사실들과 아울러 소개되고 있어 정사와 야사가 적절히 뒤섞인 흥미진진한 스페인 역사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스페인 역사 속 미스터리한 사건·사고》
촛불의 저녁 식사 - 스페인의 서고트 왕국은 왕의 아들이 왕위를 물려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 귀족들의 투표로 왕을 선출했다. 다만 왕을 죽인 자는 왕을 선출하는 선거에 후보자로 나갈 수 없었다. 서고트 왕국에서는 왕에 대한 불만이 있을 때 왕을 암살하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고 싶었던 아힐라는 과연 어떻게 했을까?
페드로 왕의 머리 전설 - 잔혹왕 또는 정의왕이라고 알려진 페드로 왕은 어느 날 구스만 가문의 한 청년과 결투를 벌이고 그를 죽이게 된다. 그런데 가문의 힘이 세던 구스만 가문은 페드로 왕에게 범인을 잡아서 죽여 달라고 청한다. 페드로 왕은 차마 자신이 죽였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대신 살인자의 목을 잘라 범죄 현장에 걸어 놓겠다고 말한다. 왕은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헤라클레스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살아 숨 쉬는 땅
신화시대부터 대항해시대까지
스페인은 역사 이전에 이미 역사였다
대항해시대를 열며 유럽의 첫 번째 태양이라 부를 만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했던 스페인은 역사 이전에 이미 역사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일찍이 이베리아 반도는 유럽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벌어졌던 장소였다. 로마와 카르타고의 운명을 실질적으로 갈랐다고 평가받던 제2차 포에니 전쟁은 한니발이 이베리아 반도의 로마 도시에 속하던 사군툼을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또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자신의 정적인 폼페이우스 잔당들을 물리치고 마침내 황제와 다름없는 권력을 지니게 된 문다 전투가 벌어진 곳도 스페인이었다. 유럽으로 세력을 뻗치던 이슬람 세력들과 가톨릭 세력들이 충돌한 지역 역시 스페인이었다. 이슬람 세력은 한때 이베리아 반도 북부 지역을 제외한 거의 전역을 석권했으나 나중에는 스페인의 가톨릭 왕국들로부터 보호비인 파리아를 내는 신세로 전락했다. 스페인이 유럽사, 나아가 세계사에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사건은 뭐니 뭐니 해도 대항해시대를 연 것이다. 스페인은 그동안 외면 받아 오던 대서양 루트를 개척하고 신대륙을 발견함으로써 사실상 오늘날의 세계를 만드는 초석을 놓았다. 유럽의 역사를 뒤바꾼 대항해시대를 연 스페인의 역사는 곧 유럽의 성장사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책은 기원전 스페인의 고대 문명인 타르테소스 왕국부터 시작해서 스페인 반도에 정착한 서고트 왕국, 이슬람 지배 시대를 거쳐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의 결혼으로 결실을 맺은 스페인 통일, 나아가 해가 지지 않는 스페인의 전성 시기를 구가한 펠리페 2세와 그 이후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몰락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한 권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와 닮은 듯하지만 닮지 않은 스페인의 역사를 통해 새로운 유럽을 바라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