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콘텐츠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이후6년 만에 찾아온 이원하 두번째 시집001033“나를 이해시킬 용기는 있나요?그 용기와 인사라도 하고 싶습니다”북(北)이라는 당신,‘너와 나’처럼 한 칸 띄어쓰기 된 사이들문학동네시인선의 249번째 시집으로 이원하 시인의 『이별이 올 때 봄도 오는 겁니다』를 펴낸다.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시집인 만큼 『이별이 올 때 봄도 오는 겁니다』에서는 그의 시세계에 일어난 뚜렷한 변화가 감지된다. 첫 시집이 따뜻한 ‘제주’에서의 삶과 사랑을 노래했다면, 두번째 시집은 시적 공간과 삶의 터전을 ‘파주’로 성큼 옮겨와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이번 시집에서는 실향민인 할아버지의 유서와도 같았던 독립 출판물을 마주한 것으로 시작된 시쓰기가, 그리움이라는 범상한 마음을 넘어 ‘현재라는 역사’를 다시 쓰는 작업으로 확장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이원하만이 보여줄 수 있는 발랄하고 독특한 서정성을 기다렸던 독자들에게는 어쩌면 낯설고도 놀라운 변화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기대에 부응하면서도 기대를 완전히 배반하는 매력적인 시를 써낸다는 점에서, “머리에서 나온 시보다 가슴에서 나온 시를”(‘사전 인터뷰’에서) 선보인다는 점에서 이원하만의 단단한 코어와 시적 태도는 여일하다.『이별이 올 때 봄도 오는 겁니다』는 남과 북의 경계와 그 위치성에 주목한다. 접경 지역인 ‘파주’를 시(詩)의 몸으로 삼아 화자의 정체성과 연결하려는 시편들은 최근의 한국문학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도발적 시도다. 무엇보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그 후세대로서 바라보는 분단 문제의 결합은, 시인 특유의 서정성-시적 에너지와 공명하며 다시 한번 시의 외연과 인식을 넓히는 참신한 장(場)이 된다.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가 한국 시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면, 『이별이 올 때 봄도 오는 겁니다』는 오직 이원하만이 선보일 수 있는 “분단시의 서정적 전유”(김보경 해설)를 통해 우리 시의 새로운 가능성과 그 도약이 통일(統一)되는 한 권의 장소가 될 것이다.
목차
시인의 말1부 한발세상이 나를 오려낸다/ 나를 열어보고 싶은데 창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하늘에 말라붙은 구름 오늘은 삼월입니다/ 내일보다 먼저 오는 것은 새벽입니다/ 벼락 맞은 소나무가 고개 숙여 인사합니다/ 과거는 쌀뜨물로 씻어도 씻기지 않습니다/ 눈앞에 거리와 시간이 묻어서 뿌옇습니다/ 한 칸 띄어쓰기 된 사이도 있습니다/ 내가 싫증을 무릅쓰면 세상이 나를 싫증냅니다/ 마을이 나를 떨군 채 달아납니다/ 원래 이별이 올 때 봄도 오는 겁니다/ 술이 뼈만 남게 됩니다2부 두발거울 앞에서 그대라는 명칭을 얻습니다/ 서툰 칼질은 징검다리를 완성시킵니다/ 힘차게 못질하면 칠월이 아픕니다/ 내일의 나를 미리 구상하면 안 돼요/ 사랑은 약용 사람은 관상용/ 바닥을 치면 땅이 입을 벌려요/ 아이가 책을 펼 때 아이는 토끼 가죽을 폅니다/ 정지된 하늘에서 씨가 쏟아집니다/ 이 밤은 나를 솎아내지 못합니다/ 기침을 재고 처리하듯이 합니다/ 몸은 몸뿐인데 벽은 벽뿐이고/ 감정은 남지 못하고 여름만 남습니다3부 고발괴로운 나무들이 한 대씩 태웁니다/ 빤빤한 이마를 갖고 태어나 스스로 몸에 꼭 맞게 포장한 채 공기조차 드나들 수 없도록 혈액을 괴롭히다 멍투성이가 된 신념을 전파하려 하지만 아무것도 번지지 않고 가면을 벗으니 평범한 맛뿐인 한 그릇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알알이 우박인데 먼 우주에서 보기엔 포말인 그 과일/ 기운 내라며 손 대신 털을 내미네요/ 또 말고 떠/ 당신 곁에선 바람도 익사합니다/ 이 진주의 이름은 파주입니다/ 시월의 속지/ 동쪽의 동족/ 미소가 덧칠될수록 얼굴은 일그러집니다/ 강 건너지 못하는 강/ 햇살은 촛불이 아닌데 왜 까매지나요/ 푸념은 헤엄칠 때 유유히/ 입이 열리자 철새가 끓어오릅니다/ 한 사람의 검열 속에서 한 번 울어줍니다4부 세발부화하지 않고 않을 한마디/ 본성의 불씨를 구경합니다/ 수초가 통뼈를 두드리는데 와닿는 게 있을까요/ 한 가지와 셋이 다투면 될까요/ 눈먼 소음이 나만 공격합니다/ 꽃을 쥔다는 건 취득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자멸은 아프지 않을 수 있나요/ 긴 여정의 끝/ 우리에 대해 떠드는 사람이 그쪽에 없나요/ 자유가 없어서 희망은 시한부입니다/ 혈연 자연 향연 다들 좋아하지 않나요해설 | 우리의 도래를 위한 서정의 가능성 | 김보경(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