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의 위로
“하는 일마다 잘 안 되는 그런 날이 있지.”
“그렇지, 그런 날이 있지.”
나란히 앉아 말없이 차 한잔을 함께할 누군가가 필요할 때
『고슴도치의 소원』 톤 텔레헨이 전하는 고요한 위로의 이야기
“너도 넘어져본 적 있니?”
“응, 꽤 자주. 다들 넘어지니까 괜찮아.”
하는 일마다 모두 안 되는 그런 날들,
괜히 울적하고 의기소침해지는 순간들……
그럴 때마다 가만히 귀 기울여주는 조그만 우리 친구 다람쥐
“우리 친구 맞지, 다람쥐야?“ 고슴도치가 물었다.
“응.” 다람쥐가 대답했다.
다람쥐와 고슴도치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집 앞 나뭇가지에 떠오르는 태양 빛을 바라봤다.
숲에서는 소나무향이 풍기고 개똥지빠귀가 노래를 했다.
◎ 도서 소개
톤 텔레헨이 열어 보이는 포근한 동화의 세계, 다섯 번째 이야기
고슴도치와 코끼리의 조그만 친구, 위로 천재 다람쥐 등장!
『고슴도치의 소원』, 『코끼리의 마음』으로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톤 텔레헨의 신작 『다람쥐의 위로』가 아르테에서 출간되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작품의 주요 캐릭터는 다람쥐로, 고슴도치와 코끼리처럼 현대인의 각종 불안과 걱정을 상징하는 동물들에게 숲속 친구 다람쥐가 말없이 따뜻한 위로를 보내는 이야기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원서에는 없는 RASO 작가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일러스트가 다수 수록되어 있다.
톤 텔레헨이 다람쥐를 통해 들려주는 위로는 조금 특이하다. 다람쥐는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해주지도 않고, 도움되는 조언이나 뻔한 충고를 해주지도 않는다. 언제나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진심으로 표현할 뿐이지만, 그럼에도 그 진심은 절대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하는 일마다 잘 안 되고 눈앞에 펼쳐진 문제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을 때, 괜히 울적하고 의기소침해져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는 순간 다람쥐는 아무 말 없이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밀고 가만히 곁에 있어준다.
세상엔 너무 많은 ‘좋은 말’들과 유용한 ‘충고’가 넘쳐나지만 지쳐버린 우리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날 인정하며 미소 지어주는 친구, 가만히 어깨를 맞대고 온기는 나눠주는 친구가 간절한 것이다. 힘든 하루를 보냈다면, 말 한마디 할 기운조차 없다면, 다람쥐와 봄날의 티타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위로 천재인 조그마한 친구 다람쥐가 추운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줄 것이다. 오랜 겨울 뒤에 찾아온 봄 햇볕처럼.
“우리 친구 맞지, 다람쥐야?”
“응.”
“각별한 친구?”
“각별한 친구.”
온갖 고민과 근심으로 잠 못 드는 날들,
그런 우리들에게 건네는 다람쥐만의 독특한 위로
다람쥐의 이웃인 숲속 동물 친구들에게는 각양각색의 걱정거리가 있다. 언뜻 보기에는 고민할 가치조차 없는 사소한 문제도 있고, 왜 고민하는지 알 수 없는 이상한 문제도 있다. 하지만 본인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일이다.
이를 테면 거북이는 우울해지고 싶어 한다. 그래서 등딱지에 비가 샐까, 갑자기 땅이 꺼질까 내내 걱정을 한다. 그러다 다람쥐에게 묻는다. “나 지금 우울한 거 맞지, 다람쥐야?” 다람쥐는 “응, 너 좀 우울한 것 같아.”라고 대답해준다. 우울함을 인정받은 거북이가 뿌듯해하며 신나하면 “그런데 너 지금은 더 이상 우울한 것 같지 않아.” 하고 덧붙인다. 그러면서도 우울해졌다 기뻐졌다 하며 오락가락하는 거북이 옆을 떠나지 않고 아무런 평가도, 충고도 없이 가만히 바라봐준다.
세상 모든 걸 알아버려서 머리가 무거워졌다고 믿는 개미도 다람쥐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위로한다. 개미가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고 해도, 다람쥐는 코웃음 한번 치지 않고 그 말을 진심으로 믿어준다. 그리고 무거운 머리를 가볍게 하기 위해 “어쩌면 나를 잊어야 할지도 몰라.”라며 상냥하게 제안한다. 재미있게도 개미는 다람쥐를 잊으려고 노력하다가 ‘세상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다. 그런 개미에게 다람쥐는 너도밤나무 꿀단지가 집에 있다며 아무렇지 않게 초대할 뿐이다.
“다람쥐야, 만약 내 등딱지에 비가 새면 어떡하지?” 거북이가 물었다.
“글쎄…… 그럼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보지 뭐. 그런데 지금은 비가 안 오잖아?”
완벽하지 않으면 어때?
불완전한 그대로 멋지고 근사한 내 모습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로 고민이 많다. 왜가리는 넘어져보고 싶지만 다리가 구부러지지 않아 슬프고, 문어는 빨판 달린 여러 개의 다리가 이상해 보여 속상하고, 사자는 문득 자기 자신이 무서워져 ‘어흥’ 대신 ‘삐약’이라고 울고 싶어 한다. 다람쥐는 그런 친구들을 섣불리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상대가 자신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별개의 존재이며, 그렇기에 그 생각을 완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다만 친구의 고민하는 마음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뿐이다.
이런 다람쥐의 모습은 전작 『고슴도치의 소원』에서도 살짝 드러난 바 있다. 소심한 고슴도치가 초대장을 보내지 못하고 전전긍긍할 때, 유일하게 그를 먼저 찾아가 ‘만남’이 두렵지 않다는 걸 몸소 보여준 친구가 바로 다람쥐였다. 다람쥐는 그저 “여기 오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방문했다고 말함으로써 고슴도치의 오랜 걱정을 가볍게 날려버린다.
온갖 걱정으로 고민하는 동물들의 모습은 현대인을 꼭 닮았다. 회사에서, 가정에서, 심지어 친구 관계에서조차 우리는 끊임없이 더 ‘잘 해낼 것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수많은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나서 결국 돌아오는 것은 불완전한 스스로에 대한 책망뿐이다. 넘어져 다신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을 때, 다람쥐의 말에 가만히 귀 기울여보자. 그럼 지금 내 모습 이대로도 충분하다는 목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그러고 나면 삶과 마주할 용기가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다시금 샘솟을 것이다.
“있잖아, 다람쥐야. 나한테 씩씩하다고 말해주지 않을래?”
“응, 너 정말 씩씩해, 개미야. 아주아주 씩씩하게 잘 견디고 있어.”
◎ 책 속에서
친애하는 개미에게,
내가 할 말이 좀 있는데, 그냥 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편지를 써.
그런데 어쩌면 그냥 말로 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어. ?다람쥐가
_13쪽
“나 지금 우울한 거 맞지, 다람쥐야?” 거북이가 물었다.
“응, 내 생각에 너 좀 우울한 것 같아.” 다람쥐가 대답했다.
“오, 그래?” 거북이가 말했다. 그리고 놀라움에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에구 난 내가 우울해질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 그래그래. 그러니까 지금 내가 우울한 거구나.”
_38쪽
“어쩌면 나를 잊어야 할지도 몰라.” 마지막에 다람쥐가 조심스레 말했다.
“너를?” 개미가 말했다.
“그렇게 할 수 있겠지?” 다람쥐가 물었다.
개미는 끄덕였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갑자기 개미가 마치 강풍 속 깃털처럼 높이 날아올랐다. _42쪽
“다들 어디 있는 거니?”
그렇지만 속으로만 생각할 뿐, 막상 외칠 수는 없었다.
나는 항상 생각만 해, 항상. 한 번쯤은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외쳐본다면 어떻게 될까. 다들 대답해주겠지.
“여기야! 우리 여기 있어!”
그러고는 모두 아래로 내려올 거야. 어쩌면 같이 춤을 출 수 있을지도 몰라. _51쪽
다람쥐는 이따금씩 자기 안에서 느끼는 아픔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콕 집어 어디가 아픈지는 절대 알 수 없었다. 뭔가 울적한 아픔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아픔도 터무니없는 것일까? _58쪽
“나는 나 자신이 지겨워질 때가 있어. 넌 그럴 때 없니?” 그때 개미가 물었다.
“도대체 왜 지겨워진다는 거니?” 다람쥐도 물었다.
“그건 모르지. 그냥 말 그대로 지겨워지는 거야. 전반적으로 말이야.” 개미가 대답했다.
다람쥐는 들어본 적도 없는 말이었다. 귀 뒤를 긁적이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렇게 한참 스스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니 놀랍게도 점점 자신이 지겨워졌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이제 나도 나 자신이 지겨워졌어.” 다람쥐가 말했다. _72쪽
“우리도 언젠가는 끝날 거라고 생각하니, 다람쥐야?” 한 번은 개미가 이렇게 물었다.
다람쥐는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파티가 끝나거나 여행이 끝나는 것처럼 말이야.” _85쪽
밤새 옆으로 누워 자신의 고단함에 대해 생각했다. 너무 피곤해서 잠도 잘 수 없었다.
어느새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돌이 미끄러져 딱정벌레를 덮쳤다. 아, 이것까지……
다음 날은 날씨가 더 나빴다. 폭풍이 몰아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딱정벌레는 비에 씻겨 떠내려갔다. 더 이상 나빠질 게 없었다. 왜 또……
그러다 바위에 부딪혀 거꾸로 진창에 떨어졌다. 그럼 그렇지.
그때 “딱정벌레야! 딱정벌레!”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_110쪽
‘나는 불행해.’ 어느 날 아침 무심코 거북이는 생각했다. 순간 놀라서 머리를 등딱지 밑으로 쏙 집어넣었다. ‘아니 왜 그런 생각까지 하는 거야? 내가 불행하다고? 나는 전혀 불행하지 않아. 난 틀림없이 아주 행복해.’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해도 뭔가 양심에 찔리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의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_112쪽
“안녕, 개미야.” 다람쥐도 대답했다.
“지금 뭐 하고 있니?”
“나 편지 쓰는 중이야.”
“누구에게?”
“너에게.”
“나에게 쓴다고? 뭐라고 쓰는데?” 개미가 놀라 물었다.
“이제 막 쓰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지내니?’” 다람쥐는 편지를 읽다가 개미에게 물었다.
“너 정말 어떻게 지내니?”
“그건 편지로 써서 보낼게.” 개미가 대답했다. _156쪽
“우리 친구 맞지, 다람쥐야?” 코끼리가 이따금씩 물었다.
“응.” 다람쥐가 대답했다.
“각별한 친구?”
“각별한 친구.” _1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