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없는 나의 여인은 노래한다 (문학동네시인선 156)
“그는 내게 시 안으로 들어가라 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앞선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새로이 내며 걷는 일,
‘쓰다’와 ‘기억하다’를 양손에 가만히 쥔 채
장혜령 시인의 첫 시집을 문학동네시인선 156번으로 펴낸다. 작가는 2017년 문학동네신인상 시 부문에 선정돼 등단했으며, 이후 산문집과 소설을 먼저 펴냈다. “앞으로도 특정 장르에 속하기보다 새로운 공간을 개척하는 글을 쓰고자 한다”라는 작가 프로필의 마지막 문장을 독자에게, 작가 스스로에게 하는 약속처럼 되새기며 마침내 첫 시집을 선보인다. 40편의 시를 5부로 나누어 묶었으며, 각 부 제목에서 시인이 깊이 천착한 지점을 엿볼 수 있다.
“무수한 생들이 무한히 손을 맞잡은 실루엣”(「후쿠시마에서 인간은 기차처럼 긴 심연 모를 그림자다」)을 돌아보는 일, 자신이 그 역사의 매개자가 되어 묵묵히 써내려가는 일이 그 존재들에 대한, 삶에 대한, 벌어진 일과 흘러버린 시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이며, 그 작업을 통해 사적 감각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의미를 창안해내고자 하는 노력임을, 시인은 이렇게 40편의 시편으로 또 한번 두고두고 남긴다.
1984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했다. 2017년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했다. 산문집 『사랑의 잔상들』과 소설 『진주』를 펴냈다. 앞으로도 특정 장르에 속하기보다 새로운 공간을 개척하는 글을 쓰고자 한다.
시인의 말
1부 받아쓰다, 눈의 언어
눈의 손등 / 백 / 백지는 구두점의 무덤이다 / 눈 한 송이와 눈 한 송이 사이 / 검은 돌은 걷는다 / 모래의 책 / 천 하룻밤의 꿈 / 토성의 고리
2부 번역하다, 새의 울음
번역자 / 비유는 흐르지 않는다 / 새벽의 창은 얇은 얼음처럼 투명해서 1 / 새벽의 창은 얇은 얼음처럼 투명해서 2 / 휘파람새 / 앵무 / 불법승 / 이별하는 정오
3부 바라보다, 늙은 숲의 심장
물의 언어 / 물결의 말 / 정원사 / 흰 불 / 청량리 / 쥐불놀이 / 교향시 / 불새의 춤
4부 꿈을 꾸다, 아버지를 토하는
이방인 / 폴림니아 성시 / 파도가 묻다 / 낙하하는 온점 / 어두운 숲의 서커스 / 고해(呱咳) / 겨울밤의 연인 / 은영에게
5부 노래하다, 발이 없는 나의 여인
기도하는 저 손을 / 사과를 그리는 법 / 죽은 꽃이 우리를 지켜본다 / 시리아의 유령들 / 후쿠시마에서 인간은 기차처럼 긴 심연 모를 그림자다 / 나라 없는 사람 / 버려진 여자들이 박쥐가 되어 다시 태어났다 / 세이렌의 노래
해설_당신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내며 걸었다
박상수(시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