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세븐틴
“이제는 더 이상 약하지 않다.
행복해지기 위해, 우리는 말해야 한다.”
‘여성’이 상처받는 시대… 그녀는 침묵 대신 복수를 택했다!
최근 ‘OO(계) 내 성폭력’ ‘MeToo’ 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폭로되는 여성들의 발언은 우리 사회에 성폭력이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에이, 내가 있는 데는 안 그래.” “내 주변에선 성폭력 피해자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하는 말들은 스스로가 지독하게 무신경한 사람이고 성폭력의 방관자이자 동조자라는 자백이 될 뿐이다. 성폭력의 본질은 성별 문제가 아니라 권력 문제다. 자신이 한 번도 피해자가 되어본 경험이 없다면 그건 권력을 지녔다는 근거에 다름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자들은 횟수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성폭력을 경험한다. 누군가는 성폭력의 가해자가 되고 또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는 동안 가혹하리만큼 무심했던 세상은 이제야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기에 등장한 한 권의 소설을 반가운 마음으로 소개한다.
최형아 장편소설 『굿바이, 세븐틴』에는 두 여자가 등장한다. 한 여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죽은 이는 말이 없고, 살아남은 이는 그 죽음의 이유를 파헤친다. 두 사람을 필연적으로 만나게 한 남자는 누구인가? 그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염치와 반성을 모른 채 여전히 뻔뻔하게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남은 여자는 떠난 여자에 대한 미안함과 더불어, 불안과 분노를 감추며 살아온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 그를 찾아나선다.
폭력의 잔인함은 그것이 육체를 넘어 영혼까지 파괴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영혼이 상처 입은 피해자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자책하면서 울지만은 않는다. 더 이상 어리고 약하고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고통받았지만 자신의 힘을 키워서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복수를 실행한다. 피해자로만 규정당하기를 거부하는 한 여자의 용기와 노력이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카타르시스를 전할 수도 있으리라.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고 스스로를 격려할 수 있을 때부터 치유가 시작되고, 누군가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 수도 있을 것이다.
“발언과 연대를 택한 여성들을 응원하고 싶었다.”
등단 후 13년 만의 첫 장편…
여성 전문 성형외과를 배경으로 ‘성폭력’ 정면으로 다뤄
작가는 자신이 여성이면서도 여성에 대해 말하는 일은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또한 ‘성폭력’이라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루면서 부주의하게 놓친 부분은 없었는지 염려한다.
여성에 대해 말하는 게 꺼려지고 말을 해도 조심스럽다. 어느 정도는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공격을 당할까 봐 불안하고 그러느니 차라리 입을 다물고만 싶어진다. 그렇잖아도 너무나 피곤한 세상이잖아, 하고 스스로 최면을 걸며 얼마간은 아무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을 때의 고요한 평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경험상 그런 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나는 곧 다시 책상에 앉아 생각한다. (…) 앞서 발언하며 튼튼한 연대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많은 여성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면서, 속을 알 수 없어 애를 태우는 애인을 만나듯, 매일 밤 내 소설 속의 그녀를 불러내어 말을 걸고 질문을 던져보았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아주 느리고도 조심스럽게,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_‘작가의 말’에서
조심스러운 태도로 세상에 내놓는 『굿바이, 세븐틴』은 2005년 문학잡지를 통해 등단한 작가가 13년 만에 발표하는 첫 장편소설이다. 다양한 문학 공모전에 도전했지만, 최종심에 오르면서도 아쉽게 고배만 마시기를 여러 번. 마침내 공모전 욕심을 접고 작품에 매달렸고, 초고 탈고 후 3년간 여러 번 고쳐 쓴 이 소설을 선보이게 되었다.
‘여성의 성폭력 경험과 상처의 극복’을 담아내기 위해 작가가 택한 장소는 여성 성형 전문 병원이다. 취업, 결혼, 사랑, 콤플렉스 등 여러 이유로 자신의 얼굴과 가슴, 심지어 성기까지 성형하려는 환자들로 북적이는 곳. 탄탄한 취재를 바탕으로 그려낸 성형외과와 환자들의 풍경은 생생한 현실감을 획득하며, ‘성형’이라는 현대인의 욕망이 어떻게 여성들의 절망적 상황과 맞닿아 있는지를 씁쓸하게 보여준다. “자기 안의 소중한 뭔가를 잃어버린 사람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 뭔 줄 아세요? 그것을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것은 소설 속 여자만의 목소리가 아니다. 여성으로 태어난 삶. 그 고된 여정은 때로 많은 여자들의 목소리와 표정을 닮게 만든다.
“무언가를 바라본다는 건 단지 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이 주는 어떤 고통이나 반작용까지도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다. 나아가 다시는 눈을 감지 않겠다는 다짐일 수도 있다(본문 131쪽)”. 무관심이 미덕처럼 포장되는 이 시대에 『굿바이, 세븐틴』은 두 눈 부릅뜨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아픔을 외면하지 말라고 말한다.
더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말해야 한다. 그저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잊어버려도 되는 체험 따윈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한 개인의 체험은 우리 모두의 체험이기도 하다. 내가 곧 타인이고 타인이 곧 나다. 이런 생각들이 우리를 연결해줄 것이다. _‘작가의 말’에서
소설 속 인물은 지나간 과거에 잡아먹히지 않고, 한 발짝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더 이상 자신의 잘못이 아닌 어두운 상처에 삶이 지배당하는 상황을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다. 『굿바이, 세븐틴』은 열일곱 살의 끔찍한 상처를 괄호 속에 감춘 채 표면적으로만 잘 살아가던 여자가, 마침내 진심으로 ‘괜찮아’ 말할 수 있게 되는 이야기다. 꽤 긴 시간 끝에 장편소설을 내보내는 작가의 첫 발걸음으로도 손색이 없다.